우리 회사에서 스마트워크가 여전히 잘 안되는 이유

[테크]by 김국현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은 미증유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금주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권고가 곳곳에서 들리다 보니 재택근무 따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기업과 업장에서도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이기에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이 돌봐줄 수도 없는 사정. 회사에 출근하더라도 마음이 평온할 리 없다. 한 달의 휴교를 선언한 일본에서는 재택이 여의치 않다면 ‘아이 동반 출근’도 권장했는데, 학교를 피해 회사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태워야 하는 난센스를 하라는 것이냐며 민심이 흉흉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만원 지하철이라니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피하고 싶은 노릇이지만 대개의 노동자는 출근할 수밖에 없다. 고객과 설비가 있는 현장을 몸소 지켜야만 하는 직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계약직, 하청 또는 파견 노동. 원청 대신 가기로 약속하고 얻은 일자리이기에 계약에 따라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


그런데 굳이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상당수 대기업 사무직도 만원 버스에서 시달리곤 한다. 그들에게 현장은 고객과 설비 대신 직장 상사가 있는 현장이다.

한국의 반 스마트워크적 으쌰으쌰 문화.

성공 체험은 습관이 된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비결도 마찬가지다. 다 함께 몰려가서 ‘으쌰으쌰’ 멋들어지게 일을 해내던 문화는 따라갈 대상이 있던 추격전에 효과적이었다. 앞서 뛰던 선진국의 선진기업이 진로를 변경할 때 급선회하여 가속하는 능력이 중요해서였다.


따라서 인재를 뽑을 때도 다른 나라들처럼 명확한 JD( Job Description, 직무 명세)를 공지하고 이에 맞는 인력을 뽑는 대신, 일단 학습 능력이 왕성한 싱싱하고 저렴한 신입을 매년 공채로 대거 뽑아 두곤 했다. 일이란 언제 어떻게 결정되어 내려올지 모르는 일, 업무 내용이란 어차피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라서다.


이렇다 보니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준비하고 있는 일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일단 일이 떨어지면 전원 의기투합 전력투구의 태세로 야근도 특근도 불사해야 한다.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저 멀리 보이니 동기부여도 쉬웠다. 조회에서 시작하여 회식으로 끝나는 고도성장기 한국식 노동 문화의 전통은 유서가 깊다.


개개인 입장에서도 온갖 일은 다 맡아 해보니 여러 경험을 두루두루 겸비할 수 있어 보람도 있다. 이렇게 유연한 참모를 길러낼 수 있어 사세 확장 시 하청을 다루는 역할을 맡길 수 있었다. 한국 대기업에서 많이 목격되는 ‘매니저’라는 호칭에는 그런 뜻이 함축되어 있다.


어느 하나의 직무로 규정되지 않고, 주어진 일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종합 인재. 이들이 다 함께 매년 반복하는 일상이 바로 우리의 영속 기업이었다. 서로서로 비슷한 일을 하니 고과도 다른 멤버 들을 배려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연봉은 그 의리의 햇수에 대해 더해 준다. 연공서열이다.


담당이 명확하지 않고 떼 지어 일하다 보니 성과 측정도 딱히 없어 인사 평가도 정성적이 되기 쉽고, 결국 승진은 눈에 잘 띄는 살가운 비서 성향이 중용된다. 리더의 주위에서 맴도는 일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자기 일을 잘해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피곤한 일이다.


직무 명세가 확정적이라면, 그러니까 타인과 구분되는 자기 일로 내 존재가 조직에서 이해된다면,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내 일을 하고 집에 가면 된다. 누가 먼저 집에 간다고 샘을 낸다거나 그럴 일 없이, 자기 일을 하면 그만이다. 누가 좀 더 받더라도 일이 다르니까 그런 것이고, 받은 만큼 일하는 명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명확히 쪼개고 예측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그렇게 안 해도 굴러갈 수 있다면 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사무실에 모여 으쌰으쌰 잘 해보자고 질타 격려하는 일이 리더의 역할이 된다. 어느 한 명이 좀 잘 못 한다고 '가족 같은 회사’에서 그이를 당장 내보낼 수도 없으니 더 잘하는 이들이 좀 더 하게 만드는 일도 리더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게 하는 일 역시 리더의 일이었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이런 자신의 사정을 알아주는 이에게 정이 가기 마련이다. 이러다 보니 연차나 육아휴직 쓰는 일조차도 눈치가 보이게 된다. 굳이 위에서가 아니더라도 옆 동료들은 동조압력으로 튀는 이들을 말린다. 팀원 중 누가 재택근무라도 하면 정말 일하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태연한 척하는 식이다.


다 함께 몰려가 밤새우며 청춘을 구가하던 풍경의 추억들. 그런데 다 지난 일이다. 고도성장이 끝난 이제는 따라갈 대상이 모호해져 미지의 미래로 스스로 항해해 나가야 할 때. 또 왕년의 무용담에 감동할 만큼 신입 사원들이 순진하지도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고도성장의 열매가 쉽게는 나누어지지 않음을 깨달은 지금 우리 모두 각자와 사회를 위해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볼 때다.


최근 각종 스마트워크 업체들은 물들어 올 때 노 젓기 위해 각자의 스마트워크 솔루션들을 3~6개월 등 한시적 무료로 풀어주고 있다. 하지만 굳이 모두 이런 솔루션을 꼭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과 메신저, 그리고 공짜로 애플, 구글, MS가 각각 제공하는 페이스타임, 행아웃, 스카이프만으로도 어지간한 기업은 스마트워크쯤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의사결정과 확인은 결국 얼굴을 알현해야 하고, 그편이 여러모로 마음이 놓이며, 정작 이러한 IT 도구들은 이미 결정된 일을 종용하고 근태를 확인하는 용도로나 쓰인다면, 스마트워크는 늘지 않고 스트레스만 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모두 싫어하는 스마트워크만 남게 된다.


스마트해져야 할 것은 도구가 아닌 우리 마음속의 ‘으쌰으쌰’적 문화라서다.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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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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