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스마트워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테크]by 김국현

본 연재 만평줌의 첫 꼭지는 스마트워치의 삼원칙에 대한 것이었다. 이 중 ①알림을 놓칠 자유와 ③패션이 브랜드에 의해 규정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유로움은 지켜냈을지 모르지만, 결국 ②나를 측정하고자 하는 욕구에는 나도 이기지 못했고 지금도 워치를 차고 있다.


많은 이들이 스마트워치를 차면서 요긴한 것이 알림 기능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이는 가능하면 설정에서 다 꺼버리는 것이 좋다. 시도 때도 없이 타인과 시스템의 사정에 의해 내 일상을 침해하는 노티 알림. 이들을 내 손목에까지 허락하는 것에는 신중한 편이 평온한 삶에 좋다.


그렇다면 스마트워치의 존재 의미란 무엇일까? 초반의 기대와 또 그간의 걱정을 벗어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확실한 하나의 상품 범주를 차지하게 된 스마트워치. 그 비결이랄까, 상품성의 본질은 무엇인지 회고해 보자.

건강

아무래도 때가 때이니만큼 우선 피트니스와 헬스케어 보조장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스마트워치는 그간 눈에 보이지 않았거나 측정하기 힘들었던 내 몸의 수치들을 보이게 해 준다. 얼마나 움직였고, 일어섰고, 운동했는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코로나19로 활동량이 줄어든 지금 내 한 몸을 움직이기 위한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신형 단말에는 새로운 건강 기능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의료용이 아니라 참조용이라고 주의는 써놓았지만 헬스케어 단말이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못한다.


애플워치에 새로 등장한 혈중 산소 포화도의 경우,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저산소증이 보인다는 뉴스 이래 환영을 받고 있다. 워치와 함께 운동하기 위한 구독형 서비스 피트니스 플러스도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가상 헬스클럽인 피트니스 플러스도 한국에서는 개시가 미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워치OS 7.1부터 심전도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런 핵심적 킬러앱이 빠진 상태에서도 그간 참, 사람들은 잘도 정가에 사갔다.

페이

전 세계적으로는 활용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으나, 한국에서 유난히 더딘 분야다. 손에서 가까운 곳이니만큼 오프라인에서 돈을 쓰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구현해 낼 수 있다. 그런 만큼 장래는 밝다.


국내에서는 갤럭시 워치 일부 모델 정도가 어찌어찌 삼성 페이나 티머니 등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는 상태다. 손목 페이 트렌드를 주도한 애플 페이 등이 한국에서 도입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혁신은 더딘 상태다. 애플 페이를 가게에서 쓰는 빈도는 Z세대일수록, 여성일수록, 고소득일수록 많았다고 한다.


전철 개찰구에서도 손목만 대면 되니 편했고(화면을 꼭 대지 않아도 인식), 폰과 워치에 서로 다른 카드를 등록해 놓을 수 있기에 용도별로 바꿔 쓰는 등 소비자 만족도는 꽤 높다. 물론 모두 우리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생활의 리듬

폰은 삶의 리듬과 맥박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정말 말그대로의 맥박도 물론 관리한다). 특히 자발적 타이머 기능이나 리마인더 기능은 꽤 유용하다. 수면 앱으로 잘 시간에 자라고 격려를 받고, 또 파트너를 깨우지 않고도 아침에 조용히 일어날 수 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채근하기도 한다. BeFocused와 같은 앱으로 25분 포모도로 테크닉을 하며 집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집사나 비서처럼 내 생활의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잔소리를 해 주는 역할에는 고맙게 의존할만하다.

AI 인터페이스

스마트폰이 아무리 소중해도 언제까지나 꾸부정한 자세로 ‘스몸비(스마트폰 좀비)’ 생활을 할 수만은 없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져도 언젠가는 우리도 지치고 사회도 지칠 수 있다.

손목 위의 단말에는 비좁은 화면밖에 없지만 보지 않고 말하고 듣는다면, 인공지능 음성에 의해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되어줄 수 있다.


다만 아직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 어느 쪽도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 애플은 특히 시리가 워낙 멍청하고, 구글은 그나마 낫지만, 각종 워치 제품에서의 구현 상태가 들쭉날쭉하다.


워치는 이름과 달리 이제 사실 보기 위해서만 차는 것이 아니다. 아마존의 헤일로는 아예 디스플레이가 없다. 보이지 않아도 시계의 효용은 크다고 증명하는 듯하다. 시계 메이커 세이코는 1966년부터 시각장애인용 음성 디지털 워치를 만들어왔는데, 올해 11년 만에 신제품이 나왔다. 우리 손목에서 말을 걸어주고 들어 주는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많을 터다.


언젠가 스마트폰이 혹은 비슷한 모양의 개인용 전산 장비가 주머니나 가방 속에서 ‘센트럴 프로세싱 유닛’으로 기능하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우리 몸이 하나의 유기체이자 기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몸을 덮은 웨어러블 중 하나가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고, 우리 손목은 그 훌륭한 후보 중 하나다.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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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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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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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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