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플래시: 마크로미디어, 스티브잡스, 그리고 플러터와 웹어셈블리

[테크]by 김국현

한 시절 인터넷 생활을 풍성하게 했던 플래시가 이제 정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어도비는 그간 사랑해줘서 고맙다며 이제는 정말 안녕이라며 마지막 업데이트와 함께 공지했다. 이미 우리에게 깔린 플래시에는 킬 스위치가 들어 있다. 이번 업데이트를 피하더라도 1월 12일 이후에는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플래시의 역사는 깊다. 플래시는 어도비가 2005년에 인수한 멀티미디어계의 기린아 마크로미디어사의 제품이었는데, 플래시 역시 마크로미디어가 퓨처스플래시라는 잠재적 경쟁자를 인수해 내놓은 제품이었다. 마크로미디어에게는 이미 90년대 CD-ROM 시절 저작(著作)도구로부터 이어진 쇼크웨이브(Shockwave)라는 기술의 전통 또한 있었지만, 그 한계를 알았는지 대안을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 마크로미디어는 그렇게 20세기의 쇼크웨이브에서 21세기의 플래시로 이양되는 멀티미디어 인터넷의 장기집권계획을 세웠고, 정말 화려하게 움직이는 인터넷을 통치하게 된다.


어도비에게 인수될 무렵까지 마크로미디어 플래시 시절은 플래시의 황금기였다. 특히 답답하리만큼 무미건조했던 당대의 웹기술과는 달리 나름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도 만들 수 있었기에 각종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해방구가 되어주었다. 추억의 오인용이나 마시마로 토끼같이 한때를 풍미한 히트작들도 모두 플래시 덕분에 가능했다. 뿌까처럼 대박이 나서 지금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등 문화산업에 끼친 영향도 크다. 한게임 역시 플래시의 산실이 되었다. 유튜브조차도 처음에는 플래시로 만들어졌었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플래시였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도비는 그리 엔지니어링에 강하거나 관심 있었던 회사가 아니었고, 플래시는 각종 보안 문제 등 그 구조적 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크로미디어 핵심 인력 일부는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적해 실버라이트를 개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 이후의 세계에서, 윈도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웹 안에 박아넣고 싶어 했다.

플래시는 웹 페이지에 구멍을 내고 그 위에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박아 놓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초창기 자바 역시 브라우저에 구멍을 뚫는 자바 어플렛에서 시작했음을 고려할 때 무리한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업계의 전개는 단 한 명의 인물에 의해 무의미해진다.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는 2010년의 공개서한 “플래시에 대한 생각(Thoughts on Flash)"을 통해 왜 아이폰의 iOS가 플래시를 지원할 수 없는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까지 윈도든 리눅스든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란 기본적으로 개방형이어서 고객과 소비자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은 어떻게든 컴퓨터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내가 컴퓨터를 샀는데 내가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 못 하는 일이란 상상 밖의 일이었던 셈이었다.


그런데도 스티브 잡스의 주장이 가능했던 비결은 통신사가 지배해 온 폰의 문화에서는 설치될 프로그램을 취사선택하는 역할이 최종사용자에게 없는 것이 당연했었기 때문이었고, 그러다보니 아이폰 역시 그렇게 닫힌 플랫폼이라는 데 거부감이 덜했던 덕이다.


아이폰의 지배적 인기는 전체 소프트웨어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였다. 미국 공정위가 개입하는 등 소동이 일어나서 후일 애플이 약간 물러나기는 했지만, 플래시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웹 속에 독자적 앱을 위해 구멍 뚫는 일 따위는 이제 피해야 하고, 모든 웹브라우저가 공통의 플랫폼 HTML5로 통일된 채 보호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굳어지게 된다. 돌이켜 보면 스티브 잡스의 주장은 옳았다. 결국, 모두 HTML5로 착실히 이행하게 되었고, 우리는 매번 뭘 설치하지 않아도 웹을 편하게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웹과 앱은 깨끗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애플의 철학은 승리했다.


그러나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웹은 늘 앱을 꿈꾸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웹을 넘는 앱을 꿈꾸고, 웹과 앱의 통합을 꿈꾸고, 웹을 삼킨 앱을 꿈꾸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점진적으로 돌고 도는 법, 마치 우리 DNA 속에 고대의 생명체 그 역사가 녹아 있는 것처럼 기술을 만든 아이디어는 통합과 붕괴를 계속 이어 간다. 예를 들자면 구글의 크로스플랫폼 기술 플러터(Flutter)의 프로덕트 매니저는 실버라이트의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이다.


최근 미디어 아트계에서도 플러터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이처럼 어떤 플랫폼에서든 똑같은 빈 캔버스를 그려주는 일에 대한 열망은 지난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다만 플래시처럼 웹에 구멍을 내는 일은 실패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패한 플랫폼에 대한 미련과 추억은 계속 이어진다. 일부 독지가들이 플래시를 웹어셈블리로 에뮬레이션하려는 시도가 멈추고 있지 않아서다. 플래시는 사라지지만 약간의 수고만 있다면 우리 추억을 재생하는 일쯤은 앞으로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웹에 구멍을 내고 소프트웨어를 박아 넣지 않아도, 진화한 자바스크립트와 웹어셈블리 덕에 웹 자신이 강인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된 덕이다.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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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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