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과 자치와 자립의 나라. 스위스식 4차 산업혁명.

[테크]by 김국현

한국 사회는 경쟁적인 탓인지 유독 순위에 민감하다. 국가 자체를 남과 비교하는 일에도 민감한데, 세계 경제 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가 발표되면 기획재정부가 대응 문건을 만들어 국민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곤 한다. 한국은 3년 연속 26위였는데, 8년 연속 1위를 한 국가가 있다. 바로 스위스다.

 

한국은 한참 쳐져 말레이시아 다음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는 바로 노동·금융 등에 있어서의 각종 규제와 기업 혁신성 부족이 꼽힌다. 그런데 왜 작은 나라 스위스는 그리 강한 것일까? 최근의 움직임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자신감과 자치와 자립의 나라. 스위스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쓰이는 나라는 지구 상에 그리 많지 않은데, 스위스는 예외다. 물론 ‘Industry 4.0’과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섞여 쓰이고 내부에서도 반론은 많지만, 생산성 향상과 실물 경제의 자동화라는 가치가 스위스의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공감대가 강하니 이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실제로 스위스 경제학자들은 설문조사에서 4차산업혁명의 변혁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스위스는 노동의 양보다는 기술의 질에, 대량 생산보다는 브랜드에 의존한 국가이고, 세계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상 유연성을 중시하게 된다.

 

세밀하게 국가 전략을 입안하고 리드하려 애쓰는 한국과는 달리, 스위스는 민간의 자율과 자치를 존중하여 실제 전략의 계획과 집행은 모두 현장의 기업에게 일임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투하하여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한 경쟁 속으로 기업을 가차 없이 밀어 넣어 버린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철학이란 스위스적인 것이었다.

 

경직된 사회는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부러지지만 유연한 사회는 반동을 얻는다. 특히 노동 유연성과 같이 한국 사회에서는 터부시되는 항목이 스위스의 국가경쟁력을 끌어 올리고 있다. 노동의 종류가 바뀌는 산업혁명기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 조율 정도, 혹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스위스식 컨센서스다. ‘4차산업혁명’을 맞아 정부 주도의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우리와는 꽤 다르다.

 

스위스의 작년 수출은 1할이나 줄어들었다. 시계 산업이 망가져서다. 70~80년대 스위스가 겪었던 ‘쿼츠 위기’, 그러니까 일본산 전지 쿼츠 시계 덕에 스위스 시계의 인기가 급락했었던 암흑기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결국 스위스는 쿼츠 위기를 극복했다. 패션이 꼭 허세일 필요는 없다는 스와치가 등장 오메가나 라도 등 명품 브랜드를 역으로 인수하며 스위스 시계 산업을 재건한 것이다.

 

이러한 절차탁마를 통해 ‘SWISS MADE’라는 표기가 주는 원산지 브랜드 효과는 더 연마되며 더 강해졌다. 스위스의 신뢰는 역경이 만든 것이었다. 스위스 바젤에는 국제결제은행이 있고 IOC, FIFA도 스위스에 있는 등 신뢰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역경의 문화 덕이다.

 

스위스는 ‘SWISS MADE SOFTWARE’라는 라벨을 만들고, 구글이나 IBM이 연구 개발 센터를 유치하는 등 스위스식 성공의 과정을 공식화하려는 듯해 보인다. 스위스의 로지텍이 자랑하는 ‘SWISS TECHNOLOGY’ 마크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변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고, 아니 더 번창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감, 자립, 자치의 정신이다. 이 때문일까?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찬반 국민투표가 77%의 압도적 차로 부결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신 반이민 여론이 유럽을 이민 배척 운동으로 몰아가는 와중에도, 귀화를 다소 편하게 하는 법안이 국민 투표로 가결되었다. 이민이 배제된 기본소득 대신, 이민이 창업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마치 스와치와 네슬레를 이민자가 세운 것처럼.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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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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