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 씨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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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한호일보 X JOB화점 / 도전하는 사람들] 한국 최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 씨


여성 야구팬은 많은데, 왜 야구 여성리그는 없을까.


2019년 750만 명을 기록한 프로야구 관중의 48%, 한국야구위원회(KBO) MD 상품(텀블러) 구매자의78.8%(2015)는 여성이지만 4대 구기종목(야구, 축구, 배구, 농구)중 유일하게 여성 리그가 없는 종목이 바로 야구다. 응원석과 관중석에는 여성이 많지만 직접 뛰는 마운드에는 여성이 없다.


최근 크라우드펀딩으로 선공개된 책 ‘외인구단 리부팅: 운동장 속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추적하는 국내 최초의 여자 야구 연구집이다. 한국 최초의 여자 선수 안향미, 대학리그 최초의 여자 선수 김라경, 한국 야구사의 산 증인인 MBC 스포츠 해설위원 허구연 등 여자 야구를 둘러싼 당사자와 관찰자 21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국 최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 씨는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20여 년 야구 경력을 정리한 안 씨는 현재 호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화 ‘야구소녀’ 실제 모델 

2019년 개봉한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 ‘주수인’은 최고 구속 134km, 볼 회전력의 강점으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하던 수인은 야구부에 새로운 코치 ‘진태’(이준혁)가 부임한 이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최윤태 감독은 ‘주수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 안향미 선수라고 밝혔다. 안 선수는 1997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학했으며 KBO에서 주최하는 공식 경기에 선발 등판한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였다.

사진=스포츠동아 DB

안향미 씨의 야구 이력


▲ 1991년 경원 중학교 졸업

▲ 1997 덕수정보산업고 야구특기생 입학

▲ 1999년 여자 야구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경기(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 4강)에 출전

▲ 2002~2004년 2월 일본 여자야구팀 ‘드림윙스’ 투수 및 3루수

▲ 2004년 3월 한국 최초 여자야구팀 ‘비밀리에’ 감독으로 활동 

“배트에 딱! 하고 맞은 공이 

하늘을 향해 쭉~ 날아가는 느낌이 좋았어요” 

안 씨는 “최초의 여성 야구 선수로서의 삶은 영화에서 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배트에 공이 딱! 하고 맞은 타구가 하늘을 향해 쭉 날아가는 느낌이 좋아서 야구를 시작했다는 안 씨.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20여 년 간 야구를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영화와 현실이 많이 달랐나요.


“영화 속 주수인에게는 변화구를 가르쳐 주는 ‘진태(이준혁 분)’ 코치가 있지만 현실의 저에게는 그런 스승이 없었어요. 아무도 연습 상대를 해 주지 않았기에 집 앞 큰 나무에 네트를 걸고 홀로 연습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야구부가 있는 경원중학교에서 3년, 야구 명문인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3년을 남학생과 똑같이 훈련 받으며 이 악물고 버텨냈습니다. 1999년 5월 1일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전에서는 국내 유일 여고생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죠.”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프로 입단의 꿈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2년 4월에는 일본팀에 진출해 투수와 3루수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생활을 해야 했기에 주중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야구 선수의 삶을 이어나갔다. 일본에 자리를 잡아야 되는지 고민을 하다 한국으로 다시 귀국해 2004년 3월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팀을 창단했다. 처음 볼을 잡아봤거나 야구의 룰도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였지만 훈련을 거듭해7월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다. 당시 홍콩과의 경기에서 16:6, 일본과의 경기에서 53:0으로 대패했지만 첫 시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선수가 아니어도 다른 방식으로 야구계에 남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여성 야구팀이 생기고 여자야구연맹도 출범하면서 야구 지도자로서의 삶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다 뿐이지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더라고요. 야구 관련한 이론 지식이 없어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충분히 야구에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야구선수 안향미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에 2011년 3월 호주로 떠났습니다.” 

호주에서의 삶, 새로운 기쁨 

호주에서도 야구를 하셨나요.


“세계대회에 나갔을 때 호주 팀 코치와 인사를 나눈 적 있어요. 호주행이 결정된 뒤 SNS를 통해서 그 코치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시드니로 가게 됐는데 야구팀을 소개해 줄 수 있겠냐고요. 그렇게 연이 닿아 버컴힐 팀에서 1년 간 활동했습니다. 팀원은 10대~20대 중반이 대부분이었고 30대 이상은 몇 명 없었어요. 저는 신입이었지만 팀 내에서는 최고령 선수였고요. 실력을 인정받아 4번 타자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체급 차이도 있고 체력 한계도 있고 해서 야구 배트를 놓게 됐습니다.”


호주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골프장에서 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에 많이 맞기도 하고, 영어로 소통하기가 어려워서 고생도 했어요. 하지만 모든 게 새로웠고, 열심히 하면 나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인정받는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지금은 치킨 공급업체에서 4년째 일하고 있고, 한 파트를 전체 관리하는 매니저예요.”

사진=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만 후회는 없다 

영화와 달리 현실의 안향미는 프로선수가 되지 못 했다. 안 씨는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닌데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많이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야구소녀’ 영화가 나왔을 때 관객 입장에서 주인공을 보니 참 답답했어요. 모두가 어렵다, 안된다, 포기하라고 말리는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야구를 고집했을까… 아마 제가 느낀 답답함을 제 주변 사람들도 느꼈겠죠. 묵묵히 저를 응원해 준 가족들 덕에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정말 좋아했던 야구에 최선을 다 해 봤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는 항상 바뀔 수 있지만 ‘최초’는 단 한 명 뿐이다. ‘한국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 로서 기록을 남긴 안향미 씨는 호주라는 새 삶의 터전에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비록 프로 입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인간 안향미의 삶은 충분히 성공한 삶이 아닐까.


호주한호일보 양다영 기자 yang@hanhodaily.com

JOB화점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2021.11.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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