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빌려 비춘 조경가의 집, 화순별장

[라이프]by 전원속의 내집

SPECIAL THEME. 건축가의 집+조경가의 집+디자이너의 집

정원을 만들며, 꽃을 엮으며 행복을 선사해왔던 부부. 

이제는 자신의 정원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와 풍경을 가득 담은 집을 지었다.


집 뒤편 일부에는 존중을 담아 옛집의 돌담을 남겨뒀다.

SECTION

산세가 주변을 병풍처럼 감싸고 호수를 지척에 둔 배산임수의 오랜 역사를 품은 마을. 어린 시절에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일에 치여 살다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조경에 발을 내디뎠던 조경가 박병철 씨는 25년 활동의 마무리로, 이제 고향에서 나무를 심는다. 그런 그가 동네에 마음을 붙들고 지어 올린 작은 집. 조경의 힘이라기보다 고향의 풍경을 빌렸을 뿐이라는 그와 남편을 따라 종종 들른다는 아내이자 플로리스트 이분 씨의 집 이야기를 들었다.


(위, 아래) 뷰를 자연스럽게 들이기 위해 조경은 보완하는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마을에서부터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박병철(이하 박) : 여기는 350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마을을 이룬 지역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풍광에서 살아간다. 여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살았다. 나가서 산 기간이 더 길었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새댁이던 뒷집 아주머니는 어느새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셨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돌아왔다.


왜 지금, 여기에 집을 지었나


박 : 아이들 둘 결혼시키고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조경가라는 일 이후에는 나무를 키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화순과 서울을 오가며 7년을 준비했다. 서둘러 집을 짓기보다는 먼저 아버지의 옛집에 머물며 매년 계획한 조경수 농사를 짓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내며 땅을 익혔다. 그러다 이 자리가 매물로 나왔다. 그리고 작년에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내로서는 집짓기를 어떻게 보았나


이분(이하 이) : 사실 이번 집은 가족의 주생활 공간보다는 남편에게 조금 더 활용도가 높은 주말주택이자 농막의 성격이다. 그래서 화순‘별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나도 서울에서 꽃꽂이 등 대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자주 들르긴 어렵다. 주택의 전반적인 콘셉트도 남편의 의중을 많이 따라갔다. 하지만 올 때마다 이곳의 자연에서 재충전하며 작품에 필요한 영감을 얻곤 한다. 처음에는 반대도 했지만, 이젠 나도 이 공간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주택의 구조에서 뻗어나와 마당으로까지 이어지는 콘크리트 벽은 외부 시선을 적절히 걸러주면서 열린 틈으로 갑갑함을 덜어낸다.


복도와 돌벽. 북향임에도 천창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볕으로 집 안이 밝다.

집 안에 쌓은 듯한 돌벽이 있는데


박 : 돌벽은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중 하나다. 아들인 건축가에게 이 집의 주요 테마로 ‘소통할 수 있는 집’을 요구했고, 이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이 돌은 부모님이 우리를 키우며 일궈낸 밭에서 나온 돌로, 그 자체로 부모님의 노고와 가족의 역사를 상징한다. 이 벽을 보며 과거와 소통하고 또 명상하곤 한다.


이 : 처음 개념으로는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운 요소였지만, 완성되고 실제로 마주하니 그 감정이 밀려들어 신기했다.


그 외에 어떤 식으로 이 집에 ‘소통’을 구현했나


박 : 집 안과 밖에, 마을과 집 사이에 가로막는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실은 기둥을 빼고는 벽을 없애 마을의 풍경이 만드는 경관을 그대로 집 안에 들이고자 했다. 침실과 욕실에도 큰 창을 내고 정원을 들였다. 내부에 불필요한 공간의 구별을 많이 두고 싶지 않았다. 건축가의 과감한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생각보다 재미난 구조가 나와서 흡족했다.


북향으로 알고 있는데, 집이 전혀 어둡지 않다


박 : 천창이 큰 역할을 했다. 북향이어서 채광이 부족할 수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면서 돌벽이 있는 복도에서의 극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비가 오면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밤이 되면 별을 즐긴다. 천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돌벽의 자연석과 만나 불규칙하고 우연한 그림자들을 만들기도 한다. 보기엔 현대적이지만, 어느 집보다도 ‘자연’이 풍성한 집이다.


식탁을 겸하는 아일랜드에서 한창 작업 중인 아내 이분 씨. 키 큰 수납장에는 시멘트를 붙여 만든 보드를 활용해 색감뿐 아니라 질감까지 노출 콘크리트에 맞췄다.


(위, 아래) 욕실은 병철 씨의 주문으로 큰 창을 냈다. 과감했지만, 적절한 식재로 시선을 차단해 큰 문제는 없다고. 노각나무, 제주산수국 등을 심었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전라남도 화순군

대지면적 ≫ 384㎡(116.16평) | 건물규모 ≫ 지상 1층 | 거주인원 ≫ 2명(부부)

건축면적 ≫ 142.6㎡(43.13평) | 연면적 ≫ 93.96㎡(28.42평)

건폐율 ≫ 37.14%(법정 40% 이하) | 용적률 ≫ 24.47%(법정 100% 이하)

주차대수 ≫ 1대 | 최고높이 ≫ 3.8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 비드법단열재 2종1호 100㎜, 200㎜, 압출법단열재 특호 140㎜

외부마감재 ≫ 외벽 - 노출콘크리트 / 지붕 - 컬러강판

창호재 ≫ 윈센 알루미늄 창호 | 에너지원 ≫ 기름보일러


내부마감재 ≫ 벽 - 기린벽지 / 바닥 – HS세라믹(celian gris)

욕실 및 주방 타일 ≫ HS세라믹(celian gris)

수전 등 욕실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HS세라믹

주방 가구 ≫ 픽리드 홈바의자 | 거실 가구 ≫ 위븐라운지체어(르위켄)

조명 ≫ 필립스 다운라이트, 제작 펜던트등 | 현관문 ≫ 윈센 알루미늄 도어

방문 ≫ 제작 목문

시공 ≫ 반도건설

설계·감리 ≫ 플라노 건축사사무소 010-2042-5900 www.plano.kr

PLAN

위에서 내려다 본 주택.


전지 작업 중인 박병철 씨. 뒤에 선 키 큰 나무는 병철 씨가 1985년 조경 일을 시작하며 아버님 댁에 심었던 10주의 단풍나무 묘목 중 하나를 이식해 온 것이라고.

꽤 과감하고 모던한 디자인인데


박 : 건축가에게는 소통과 개방 등의 화두만 던지고 자유로운 접근을 주문했다. 물론 처음 디자인을 봤을 때, 생각보다 더 과감한 설계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과감했지만, 한편으로는 결과물을 만났을 때 무척 세세하고 실용적인 부분까지 디테일을 살렸구나 싶었다.


디테일이라고 하면


이 : 예를 들면 우선 싱크대. 겉보기에는 다른 주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싱크볼이나 인덕션의 화구가 일반적인 주방보다 벽과 약간 더 여유 있게 간격을 줬다. 조금의 차이지만, 살아보니 이게 음식물이나 물기가 벽에 튀는 경우를 상당히 줄여줬다. 그래서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물성에도 오염이 적다. 상부장이 없지만, 제작 가구의 수납 효율을 신경 써서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까지 주방 가구나 가전을 모두 이 안으로 수납했다. 아일랜드도 따로 식탁을 둘 필요가 없게끔 널찍하게 잡았다. 그래서 가끔 여기에서 꽃꽂이 작업을 하거나 요리를 해도 좁아서 불편한 적은 없었다. 곱씹어볼수록 오랜 세월 함께 해오며 가족으로서 관찰해왔을 터인 건축가의 배려가 느껴졌다.


또 어떤 점에서 배려를 느끼나


박 : 한옥을 연상케 하는 긴 처마는 바깥 일을 돌보면서도 쉼의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좋고, 비 오는 날에도 어느 정도 외부 소통이 가능하다. 길고 깊은 처마를 확보하면서도 건축적으로 더 복잡해지지 않기 위해 최적의 깊이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 : 도로변으로 난 긴 벽은 애초 주문한 개방감은 충실히 확보하면서도 남편이 놓쳤던 기본적인 사적인 공간의 경계를 잡아준 것 같다. 처음 설계를 봤을 때 너무 노출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실제로 거실에 서 보니 저 열린 벽이 주는 안정감이 꽤 컸다.


취침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둔 침실. 마찬가지로 큰 창으로 풍경을 들인다.


때때로 새벽에 멀리 호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집에서 만나는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조경가의 집인데 정원이 담백하다


박 : 조경 일을 적잖게 해오면서 그간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것 중 하나가 ‘과잉’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를 너무 많이들 심곤 했다. 이 집에서는 경치를 빌린다(借景)는 의미의 ‘차경’ 개념을 적용했다. 매일 변하는 마을과 자연에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고, 직접 키운 수목들로 그 사이 빈틈과 디테일을 채워주기만 했다.


다른 건축주에게 조언하는 주택 정원 관리 팁이 있다면


박 : 작년 이 집이 한창 공사 중일 때 비가 너무 오래, 많이 내려 무척 고생했다. 정원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기후변화로 인해 더 따뜻해지고 비도 잦거나 많아짐을 느낀다. 식물도 과습하면 뿌리가 썩어 죽는다. 나무를 공급하는 조경가들로부터 고사율이 많이 늘어 힘들다는 얘길 듣곤 한다. 건조하면 물을 주면 되지만, 과습은 사실 큰 대책이 없다. 정원을 조성할 때부터 유공관을 시공하거나 토질을 조절해 물 빠짐을 좋게 하는 것이 좋다.


집짓기와 조경,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박 : 우리 집을 지으면서 새삼 다시 느꼈지만, 조경은 건축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범위가 가장 넓으면서 처음 사람이 만나게 되는 요소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건축 설계 단계에서 정원과의 조화를 고려해두면 건축 완성도도, 손님을 맞는 즐거움도, 전원생활도 더 즐거워질 것이다.


거실에서 보는 돌벽. 빛과의 조화로 경건함까지 느끼게한다.


경치를 들이는 전면은 최소한의 구조만 남기고 시원하게 열었다.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2021.09.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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