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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동네의 오래된 한옥을 지켜 온 젊은 목수의 기록

by전원속의 내집

광주 동명동, '배무이' 강동수 대표

오랜 시간을 품어온 한옥에 경외감을 느꼈던 한 청년. 사라져가는 우리 곁의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현장에서 깎고 세우고 그려나간다.

한옥 목수의 첫 번째 한옥과 동네

광주 동명동은 지금도 한옥이나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동네다. 옛 철길을 따라 서양 선교사들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 땅의 목수들이 한옥을 지어 남겼다. 이런 동명동의 분위기가 짙게 쌓인 골목 안 깊숙한 곳에 말끔하게 가꿔진 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목수로서 처음으로 고쳐본 한옥입니다. 지금은 어머님의 가죽공방으로 쓰고 있습니다.”

배무이 건축 강동수 대표는 묵직하게 마당을 지키고 있는 검은 대문을 열며 안내했다. 1972년에 지어져 전통적인 한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은, 80년대에 한 번 크게 고쳐지고, 7년 전 넘어와 강 대표가 지금까지 조금씩 천천히 시간을 들여 수리를 거듭하며 이어오고 있다. 공간들의 역할과 위치가 지금은 상당히 바뀌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옛 모습과 기억을 남기고 있다. 강 대표는 집 안 곳곳을 가리키며 옛 쓰임새와 당시의 모습, 이 한옥만의 구조 특이성 등을 소개해나갔다. 이전 집 주인이나 동네분들을 인터뷰하고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변 한옥들을 답사하며 얻은 귀중한 스토리다. 집수리와 기록. 한옥이라는 주제로 그가 이어나가고 있는 일이다.

다른 한옥이 철거되면서 나온 부자재로 누각 형태의 장식을 만들었다.


기와를 교체하며 나온 시멘트 기와를 활용해 독특한 담장 패턴을 연출했다. / 강 대표가 즐겨쓰는 가방은 한옥 고재를 깎아 만들었다.


부모님 한옥의 마당.

오래된 집에서 받은 충격과 의문

이런 강 대표가 한옥의 보존에 뜻을 둔 그 시작은 10대 시절의 유럽 여행이었다. 일하며 숙식과 여비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을 다니던 그는 영국과 벨기에에서 우연히 주택 수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래된 건물이 모습을 유지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살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빌딩 숲에 둘러싸여 신식 아파트에서 자란 그에게 이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자 화두였다.


그래서 그는 한옥을 짓기보다 무심히 지나쳤던 구도심이나 시골의 오래된 집들을 다룬다. 그는 “지금도 한옥은 꾸준히 지어지고 있고, 문화재나 고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지켜지고 있다”며. “그와 달리 주목 받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집들을 고치고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예전에는 툇마루였던 공간에 외벽을 쳐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고가구를 두고 어머님의 가죽공예 작품을 디스플레이해 쇼룸처럼 꾸몄다.


벽 건너편은 예전에는 조선대학생이 세들어 살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작업실로 사용 중이라고.

한옥을 지켜나가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일을 계획성 있게 이어가기 위해 회사 ‘배무이 건축’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생각지 못한 ‘장례식’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이유인 즉, 남은 이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보내듯, 오래된 집의 장례를 정중히 치르는 이 과정을 통해 한옥이 가진 과거를 간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내기 위함이라고. 한옥을 기리는 그의 장례는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준비고, 그래서 슬프지 않다.

현재 수리 및 기록 중인 보성 한옥. ⓒ강동수


광주 중흥동 리모델링 설계. 수년째 부부 가 서울을 오가며 직접 집을 고쳐나가는 중으로, 강 대표가 꼽는 인상적인 케이스 중 하나다. ⓒ강동수


썩은 기둥을 교체하는 ‘동바리’ 작업. ⓒ강동수

강 대표가 광주 동구청을 상대로 철거 반대 공론화를 주도했던 동명동 절충식 한옥. ⓒ강동수

지역 답사 중 인상적인 한옥을 발견하면 직접 섭외해 취재하기도 한다.ⓒ강동수 / 철거된 한옥 교창을 조명으로 재활용했다.

환풍구 겸 채광창이라는 실험이 이뤄진 주방. 한편에 일제시대 가구가 앤티크하다. / 부모님 한옥의 기와 작업이 한창인 모습. ⓒ강동수

한옥을 지켜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제언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근·현대 한옥들은 꾸준히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한옥 수리는 기둥을 교체하는 동바리 작업이나 시멘트 기와 보수처럼 일일이 자재를 손으로 가공해야 하고 품이 많이 들어 소유주들이 비용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땅의 가치가 크게 올라가면서 개발의 유혹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편으론 이와 함께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이유로, 주변에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옛 건물을 철거하려는 경우도 있다. 같은 동명동에 있던 한 서양 절충식 가옥의 경우도 강 대표가 공론화해 지역사회와 학계의 도움으로 광주 동구청 주도의 철거 위기에서 막아내기도 했다.


한옥 구조재 중 ‘주두’를 소개하는 강 대표.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기술자의 역할 이상으로, 의미 있는 한옥들이 앞으로도 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자본이나 공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한옥 보존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에게 펀딩을 받아 건축물을 보존하고, 적절한 사업 아이템으로 한옥 보존이 수익 창출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터뷰 동안 그는 한옥 보존의 쉽지 않은 여건을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지역의 독특한 한옥 문화와 가치, 역사를 설렘과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소개하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고치는 것은 한 채의 옛 한옥이지만, 그를 통해 만드는 것은 전통 건축의 미래이지 않을까.


취재협조_ 배무이 건축 / 광주광역시 동구 www.instagram.com/baemui.naru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