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숨졌다. 8%대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늘리는 일이 시급한데도 최근 정부는 전년 대비 5조6천억원이나 되는 관련 예산을 깎았다. 세계 열 번째 부자 나라에서도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라는 집 문제는 여전히 국민적 스트레스다. 자산화의 욕망에 짓눌린 한국의 부동산은 늘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만 취급됐다. 기본적인 주거복지는 물론 다양한 주거 대안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다. 부담 가능한 수준의 금액으로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은 우리 모두에게 요원하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공급하고
남해에 2층짜리 단독주택을 샀다. 계약부터 입주까지, 지난했던 시간이 지나 드디어 새집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집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월세로 저렴하게 1년 정도 머물 집을 구해, 우리의 시골살이를 일단 좀더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남해가 오래도록 살 만큼 좋은 곳인지 확신도 부족했고, 앞으로 시골에서 먹고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감도 부족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은 우리 계획과 거리가 멀었다. 전·월세 물건이 거의 없는데다, 1~2년 계약을 해주겠다는 집주인도 없었다. 대부분 최소 3년 이상 장기 계약을 원했다. 도시와 달리 이
[표지이야기] 청년들이 일자리를 빼앗긴다. 취업을 준비하다 갈 곳을 잃는다. 너무 오래되고 익숙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는 어떤가. 코로나 시대의 청년 실업은 어떤 모습인가. 여행업은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가장 깊게 타격 입은 대표 업종이다. 낮은 취업 문턱으로 청년들을 쉽게 빨아들였다. 유연한 고용 형태와 낮은 임금으로 이들을 맘껏 부렸다. 불가항력의 재난을 맞았을 때 제일 먼저 이들을 밀어냈다. 청년들은 충격파를 견뎌낼 범퍼가 없다. 경력은 보잘것없고 모아놓은 돈은 쥐꼬리만 하다. 소득은 당장 끊기는데 시간은 흘러
[한겨레21] “현관문 옆방은 K-장녀 방이다.” 한 누리꾼의 트위트에 수많은 K-장녀가 공감했다. “모든 현관문 옆방에 K-장녀가 사는 건 아니지만 나는 현관문 옆방에 산다”라는 리트위트와 함께. 집 안에 사람이 오가는 소리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들리는 현관문 옆방은 가족의 중재자이자 가족 대소사에 과도한 책임을 느끼는 K-장녀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K-장녀’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Korea’(한국)의 앞글자 ‘K’와 ‘장녀’의 합성어인 K-장녀는 “동생 밥 챙겨줘라” “엄마 아빠
‘너구나?’ ‘미녀 개그우먼’ ‘비호감’. 6월18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개그우먼>(이하 <개그우먼>)은 여성 희극인을 옭아매온 대표적 열쇳말을 정확히 짚으며 시작된다. 2008년 KBS 23기 공채 개그맨으로 들어온 오나미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이번엔 너구나?”라고 불리면서 얼굴로 웃기기 담당이 되었다. 얼굴로 웃긴다는 건, 대개 외모 비하를 당하거나 ‘주제 파악’ 못하는 캐릭터를 맡는다는 뜻이다. “‘너 뭐야?’ 하면 제가 ‘난 여자다!’라고 하는 게 웃음 포인트고 관객도 빵빵 터지더라고요.” 2년
트레이닝복 vs 슈트, 지하철 vs 외제 차, 소주 vs 와인, 잡초 vs 난초, 길바닥 vs 상류층, 무엇보다 돈 vs 명예. SBS <하이에나>(극본 김루리·연출 장태유)의 정금자(김혜수)와 윤희재(주지훈)는 극과 극이다. 그들의 수많은 차이 앞에 성별은 오히려 ‘사소한’ 요소처럼 보일 정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변호사라는 직업, 그리고 둘 다 뻔뻔한 속물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배경과 욕망을 지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타입의 속물이다. 돈이 없어 대학조차 가지 못하고 사법시험에 매달려 혼자 살아남은 정금자는 아무리 더러워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사의 ‘촉’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첩보나 제보가 수사할 만한지 잘 판단하고, 수사를 결심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8월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 착수도 그의 촉이 발동한 결과다. 조 전 장관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에 대한 첩보를 보고받고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압수수색에 나섰다. 과잉수사라는 비판에도 검찰 특수부 인력을 대거 투입해 수사를 강행한 배경엔 그의 남다른 ‘수사 감각’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 윤 총장의 촉이 지금 시험대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주종’에서 ‘협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중략) 수사권 조정을 받았으니 경찰개혁은 천천히 하자고 하면 반칙입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1월14일 오전, <한겨레21>이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표창원(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했다. 표 의원은 경찰대 5기 출신으로 졸업 뒤 13년간 경찰대 교수로도 일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의정 생활의 큰 목표였음을 공언했던 그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표 의원이 “검찰에 눌린 경찰의 권한 확대”
[한겨레21]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지만 예능인 박나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9월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개그맨 박나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앞으로 상처 주지 않는 ‘선한 웃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회적 공인으로서 연예인의 책임감을 언급한 거다. 이날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개그맨 안영미도 선한 영향력을 언급했다. “(팬들) 댓글 덕분에 제가 <라디오스타> MC가 됐다. 2020년에도 제2의 안영미가
<카모메 식당>의 작가, 60대 비혼 일본인 여성, 고양이와 책과 음악과 뜨개질의 반려인, 성악설을 믿는 낙천주의자, 섬세하되 예민하지 않은 문장가. 무레 요코가 들려주는 ‘안 하고 살아도 아무 지장 없는 것’ 15가지에 관한 이야기.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이봄 펴냄)에는 욕망·물건·생활, 이 세 영역에서 저자가 끊어낸 일들이 소개돼 있다. 이번 산문집에서 특유의 상쾌함과 유머는 정점을 찍은 듯하다. 해야 할 것투성이인 삶에 무려 안 해도 되는 것들이라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익숙하지만, 안 해도 되는 자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