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그린 코끼리

[컬처]by 한겨레21

‘실직 상태’ 코끼리 코에 붓을 쥐여준 장사꾼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침팬지 콩고

코끼리가 그린 코끼리

타이의 관광지에서 코끼리는 조련사 마훗의 지시로 놀랄 만큼 정교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코끼리가 그림을 그린다. 긴 코로 붓질을 한다. 아래로 곧게 향하는 직선, 부드럽게 휘어 올라가는 곡선, 강약이 조절된 붓 터치. 마침내 푸른색 코끼리 한 마리가 캔버스에 나타난다. 여백도 적당하고 색깔 배치도 완벽하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로 수백만 건 조회된 이 영상을 보고 놀랐다. 아무리 코끼리가 영리하다지만, 이제 예술가까지 된 것인가? 코끼리 미술가의 탄생?

‘코끼리 미술가’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가장 분명한 경계는 예술이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쓴다는 주장도, 정치를 하고, 슬픔을 나누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주장도 다 깨졌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인간만이 예술을 한다는 것이다.


코끼리 미술가는 이 주장마저 부순 것일까? 현재로써 이 영상은 ‘사기’에 가까운 거 같다. 코끼리 뒤에 서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마훗(코끼리 조련사)이 귀를 잡아당기며 지시하고 있다. 아래로 잡아당기면 아래쪽으로 긋고, 꾹 누르면 붓을 누르라, 뭐 그런 식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붓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있다.


베스트셀러 <털 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도 이 코끼리 미술가를 비판한 적이 있다. 본디 좋은 뜻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타이는 전통적으로 코끼리를 노동에 이용하는 나라다. 동물보호 의식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타이 정부도 변화를 받아들였고, 1990년 코끼리의 벌목 노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가끔 선의로 포장되는 법. 수많은 코끼리가 ‘실직 상태’에 놓이고, 맡아줄 사람이 없어지면서 생명 또한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무리의 미술가들이 아이디어를 낸다. 코끼리들에게 붓을 쥐여주자. 그 그림을 팔아 코끼리 생계를 잇게 하자. 이들은 ‘아시아코끼리 미술과 보전 프로젝트’라는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전직 코끼리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 캠프를 세운다.


그런데 일부 캠프의 코끼리 그림이 물감을 흩뿌린 추상화에서 명확한 대상이 있는 구상화로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이 코끼리에게 세밀하게 지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재단과 무관하게 코끼리를 데리고 그림을 그려 파는 장사꾼이 관광지에 나타났다. 또 하나의 ‘코끼리 서커스’가 된 것이다.

코끼리가 그린 코끼리

침팬지 콩고가 그린 그림에 대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예술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코끼리 미술가의 존재에는 회의적이었지만, 데즈먼드 모리스가 예술적 잠재력을 인정한 동물이 있다. 짧은 생을 살다 떠난 침팬지 ‘콩고’였다. 모리스는 당시 영국 런던동물원에서 일하며 <주 타임>이라는 텔레비전용 동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예술 기원을 연구하려 했던 그의 눈에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새끼 침팬지 중 유난히 똑똑했던 콩고가 눈에 띈다. (당시에는 전시효과가 좋은 새끼를 생포하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이는 사냥 방식이 선호됐다. 새끼는 죽은 어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 미술가로 ‘선택’된 콩고는 다른 침팬지들이 사는 동물원 우리에서 빠져나와 특별 시설에서 모리스 부부와 전담 사육사 손에 길러졌다. 매주 일정한 시간에 콩고에게 미술 시간을 주었다. 따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연필이나 붓 그리고 캔버스의 광활한 공백이 어린 침팬지에게 펼쳐졌을 뿐이다.

상호대칭성에 끌리다

처음에는 한두 살 아기의 낙서처럼 의미 없는 선이 그어졌다. 미술 시간이 거듭되자, 일정한 유형이 보였다. 콩고는 활짝 펼쳐진 부채꼴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거꾸로 선 부채꼴, 점으로 된 부채꼴 등 유형은 변형, 발전되고 있었다. 콩고는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부채꼴을 펼치곤 했으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호 대칭적인 것에 끌리는 듯했다. 한번은 그림 그리기를 멈추게 하자 불같이 성을 냈다. 콩고는 그림에 몰두했다.


‘예술 하는 침팬지’는 당연히 화제를 모았다. 미술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1957년 9월,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콩고의 나이 세 살 때였다. 격렬한 논쟁으로 평단이 들썩거렸음은 물론이다. 콩고의 부채꼴 그림이 ‘반사적인 근육 경련’이라고 깎아내리는 평론가도 있었지만, ‘타시즘’(그림물감을 뿌리는 화법)을 거론하는 이도 있었다.


어쩌면 콩고가 예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예술의 기원을 추측해볼 수 있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 우리 조상은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게 된다. 고도의 전략과 협동이 필요하고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라 쉽지 않지만, 한번 성공하면 성취감을 맛보는 동시에 양식을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다. 성취를 축하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으며, 다음 사냥 때까지 생긴 여유 시간에 생존과 관련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예술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침팬지 무리에서는 왜 예술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침팬지는 여전히 하루 시간 중 절반 이상을 식물을 씹어 먹는 데 쓴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도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생존을 위해 바친다.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이 침팬지 무리가 작전을 짜서 원숭이를 사냥하는 걸 보았지만, 그 횟수는 구석기시대 인간처럼 자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콩고의 작품이 비인간 동물의 예술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임은 틀림없다. 모리스는 “비천한 원숭이가 그림 그리는 일에 거의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예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며 콩고의 작품이 라스코의 동굴벽화를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도 콩고의 작품을 보고는 한마디 던졌다. “침팬지 손은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군. 반면 잭슨 폴록의 손은 완전히 동물이야!” 콩고는 자신이 그리는 형태에 일정한 틀을 갖추려 애썼고, 잭슨 폴록은 인간의 미적 경향과 유형을 파괴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콩고는 훗날 ‘예술’이라 일컬을 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폴록은 그것을 해체하고(혹은 해체하는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 역사의 처음과 끝을 꿰뚫는 통찰이었다.

예술가 침팬지의 말로

콩고는 그림 384점을 남기고 평단에서 사라졌다. 그의 쓸쓸한 말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3년간의 실험이 끝나자 특별대우를 받았던 이 예술가 침팬지는 인간 세계에서 침팬지 세계로 돌아갔다. 어릴 적 인간 손에서 길러져 손짓과 행동 등 ‘침팬지 문화’를 배우지 못한 콩고는 동물 우리에 갇혀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열 살이던 1964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초로 예술적 잠재력을 인정받은 침팬지 화가는 고향에서 납치되어 삶의 절반을 인간에게 빼앗긴 ‘반인반수’였던 것이다.


참고 문헌: 데즈먼드 모리스의 <예술적 원숭이>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 레모나 모리스와 데즈먼드 모리스의 [Men and Apes]

런던(영국)=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

2019.03.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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