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 두어줌이 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생 더덕은 선물이야.” 작은 쪽지가 옆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다녀가신 것이다. 강원도 횡성에 살고 있는 엄마는 좋은 더덕을 골라내는 데 선수다. 크기가 너무 크고 두껍지 않으면서 껍질은 도톰하고 울퉁불퉁한 것. 꼬리가 너무 길지 않으면서 적당히 잘 빠진 것. 그리고 단단할수록 좋다고 한다. 이렇게 잘 골라 손질까지 마친 더덕 한무더기가 냉장고 안에서 그윽한 향을 피우고 있었다. 가을, 엄마의 향이다. 야생에서 자라던 더덕이 사람 손에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제철이 따로 없어졌다. 하지만 가을 더덕
이윤화의 길라잡이 맛집ㅣ민물장어 장어를 먹자 했을 때 민물장어를 먼저 떠올리냐, 붕장어(아나고)를 상상하냐에 따라 살아온 출신 지역을 추측할 수 있다. 서울을 포함한 중부 지역은 대개 민물장어를, 전남 여수나 고흥 등 남쪽이라면 바닷장어의 경험이 생각날 것이다. 어떤 장어든 지역을 막론하고 기력보강용으로 늘 우선한다. 민물장어 유통업계 사람을 만나니, 장어는 더 이상 여름 보양식이 아니고 계절을 떠난 스테디셀러 음식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외식용 냉면은 여름이 성수기였다. 그래서 냉면 전문점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 외국에서 온 케이(K)팝 팬들이 이 사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1층 로비는 단출했다. 하이브 아티스트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모바일 보안서약서를 내고 1층 데스크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이브 사옥은 26층(지상 19층, 지하 7층) 건물로, 전체 면적은 6만㎡ 규모다. 이곳엔 하이브 소속의 여러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입주해 있다. 방탄소년단의 빅히트뮤직, 뉴진스의 어도어, 세븐틴·프로미스나인의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르세라핌의 쏘스뮤
한끼 식사라도 제대로 먹겠다는 미식이 대세인 시대다. 식사 시간이 4~5시간을 넘는 파인다이닝(고급 정찬)이나 ‘푸드 페어링’(음식과 술의 조화)도 이젠 생소한 식문화가 아니다. 바야흐로 미식은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된 것이다. 덩달아 미식 여행도 인기다. 지난 6월 코레일관광개발이 내놓은 ‘고메트레인 특별 기차여행’은 출시하자마자 여행객들의 호응이 컸다. ‘고메’는 미식가를 뜻한다. 열차를 타고 충북 제천·단양, 경북 영주에 내려 지역 음식을 맛보는 상품이다. 눈으로 즐기는 여행과는 그 결이 다르다. 지역 농부들
“할매, 밥 돼요? 근데 내 고등어는 주지 마라.” 지난달 21일 아침 7시, 박한용(가명·55)이 나무 판잣집 문을 불쑥 열고 들어서면서 말했다. 부산 서구 충무동 새벽시장과 남부민동 공동어시장 사이 골목에 있는 13㎡(4평) 남짓한 이곳에는 간판이 없다. 지도에도, 전화번호부에도 나오지 않는다. 판잣집은 진초록색 군용 천으로 덮여 있고, 안에는 직사각형 나무 밥상이 가로로 놓여 있으며, 의자가 5개 있다. 천장에는 불이 난 적 있는지 그을음이 묻어 있다. 냉장고엔 맥주와 소주, 사이다와 함께 새벽 졸음을 쫓기위해 가져다 놓은 듯
나는 지금 풍기 온천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길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온천하기에 좋은 계절이 되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온천은 처음이다. 여행 작가로 일하며 영주를 여러 번 취재했다. 물론 풍기 온천에 관해 짤막하게 원고를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직접 탕 속에 몸을 담가 본 적은 없다. 여행 작가란 그런 직업이다. 여행을 하지만 여행을 즐길 만한 시간은 늘 부족한 사람이다.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한 후, 빨리 다음 취재지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는 돌아와 느긋하게 여
요즘 학생들은 떡볶이집에 잘 가지 않는다. 대신 마라탕집에 간다. 마라는 마취될 듯 얼얼하고 맵다. 훅 하고 들어와서 쭉 간다. 마라탕을 한국에 가져온 사람들은 이렇게 유행할 줄 몰랐다고 한다. 마치 칭따오맥주의 대히트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처럼.(국내에서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아주 작은 주류수입사가 계약을 따냈다고 들었다. 수입 칭따오맥주는 국내 양꼬치집의 확산과 함께 규모가 커졌다.) 마라는 쓰촨(사천)의 맛이다. 쓰촨이 어디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보통 중국 하면 베이징과 상하이 중심으로 관광 가거나 사업차 방문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목조 다리 너머로는 양파 모양의 교회 종탑이, 초콜릿 색 박공지붕을 인 관공서가, 넝쿨 문양의 장식이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상점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아래 흰 파라솔이 걸린 노천카페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자전거를 탄 어른과 아이들이 오갔다. 지붕 덮은 나무다리를 건너오니 강변의 계단에 앉아 글을 읽는 소녀들 뒤로 사진을 찍으며 지나가는 관광객들. 그 풍경 안으로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마른 남자가 바퀴 달린 피아노를 끌고 들어왔다. 거리는 어느새 그가 연주하는 선율로 가득 차올랐다. 빗방울처럼 부서지는
연꽃과 잎이 무성한 호수 옆 둑에 살구색 문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일본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끝이 된 문과 유사한 모양새다. 영화처럼 그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짙푸른 초록색의 위엄을 자랑하는 벼들로 가득한 논이 눈에 들어온다. 폭염을 이겨낸 벼들이 당당하게 가을바람을 기다린다. 이 신비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충남 태안에 있는 ‘청산수목원’이 빚어낸 장관 중 하나다. 청산수목원은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가 주관한 ‘2023 대전충남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 공모에 선정된 여행지다
미국프로풋볼(NFL)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시카고 베어스의 2023시즌 경기가 열린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미국 미주리주 애로헤드 스타디움에 테일러 스위프트(33)가 떴다. 몇 주 전부터 캔자스시티 소속 타이트엔드 트래비스 켈시(33)와 열애설이 도는 참이었는데, 켈시의 등번호(87번)가 적힌 캔자스시티 유니폼을 입고 켈시의 어머니와 경기를 보러 왔다. 중계 화면에는 켈시의 터치다운 장면만큼이나 스위트룸의 스위프트가 자주 잡혔다. 이후 프로풋볼계는 ‘스위프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에이피(AP)는 지난 7일 풋볼 경기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