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천국’ 호이안 길거리 음식의 모든 것 [ESC]

[푸드]by 한겨레

박미향의 요즘 뭐 먹어 베트남 호이안 미식여행


세계 3위 쌀 수출국…베트남 음식의 70% 쌀로 만들어


쇠락했던 호이안 ‘옛 거리’ 고즈넉한 미식여행지 떠올라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국의 20~30대가 에스엔에스에 해시태그를 앞다퉈 달며 열광하는 베트남 음식이 있다.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그 사이에 곱게 갈아 익힌 돼지고기를 버터처럼 펴 바른 다음 돼지고기, 닭고기, 토마토, 향이 강한 각종 채소 등을 넣어 돼지기름이나 소스를 뿌려 먹는 음식, 바인미(반미)다. 베트남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바인미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프랑스 빵인 바게트가 베트남 국민 음식의 기본 재료를 차지하고 있는 건 제국주의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바인미를 포함해 베트남 먹거리의 정수를 찾기 위해 지난 2일 호이안 미식 여행길에 나섰다. 여행의 백미는 역시 먹거리다. 음식이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창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호이안은 다낭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베트남 여행지다. 16~17세기만 해도 중국과 일본, 유럽 무역선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번성한 항구였다. 18세기 호이안을 가로지르는 투본강 하구에 모래 퇴적물이 쌓이면서 더는 항구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30㎞ 떨어져 있던 다낭이 급부상했다. 19세기에 이르러 호이안은 시간이 멈춘 도시처럼 쇠락의 길을 밟는다. 하지만 쇠락은 되레 호이안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과거 화려하던 시절에 지은 건물과 거리가 고스란히 남아 운치를 더하며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1999년 호이안의 ‘옛 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오후 호이안 ‘옛 거리’의 좁은 도로를 현지인의 자전거가 즐비하게 메우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무표정한 현지인들 사이로 옅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섞여 있었다. 이들 사이로 긴장과 호의가 교차했다. 묘하게 이질적인 풍경의 생경함은 ‘스트리트 푸드’ 투어 첫번째 방문 식당인 ‘리엔 까올러우’에 도착하자 눈 녹듯 사라졌다.

한겨레

식당 ‘리엔 까올러우’의 주인 후에쩐리엔. 박미향 기자

까올러우는 호이안에선 반드시 맛봐야 할 국수다. 일종의 비빔국수인데, 면이 독특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퍼의 면과는 다르다. 납작하지 않고 도톰하다. 색도 흰색이 아닌 황색이다. 안내를 맡은 미식 투어 전문가 ‘나’(NA·본명 응우옌쩐)는 “호이안에서만 생산되는 면인데, 만드는 곳이 세 집안밖에 없다”고 했다. 비법인 듯한 제조법은 그 집안들 후손에게만 전수된다고 한다. 이 식당의 창업주는 응오리엔. 그의 딸인 후에쩐리엔이 작은 접시에 납작하게 썬 돼지고기와 콩나물, 향이 강한 채소, 양파, 바삭한 쌀 과자인 바인다를 비벼주면서 활짝 웃는다. 자작자작한 국물도 부어준다. 육수다. 우리네 음식처럼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게 아니라 육수가 양념인 셈이다. 그는 “한국 좋아요!”라며 엄지를 한껏 치켜세운다. 부드러운 까올러우 면과 아삭한 채소들이 어우러진 이국의 맛은, 주인의 훈훈한 인상이 마치 고명처럼 올라가 더욱 진한 풍미를 자랑했다.


까올러우 면도 쌀로 만든다. 북쪽의 홍강과 남쪽의 메콩강이 흐르는 베트남은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이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년 내내 벼를 재배할 수 있는 나라다. 당연히 이 나라 음식의 솔(영혼)은 쌀에 있다. 과자를 포함해 베트남 음식의 65~70%는 쌀로 만든다. 국수조차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가 재료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중 바인깐 앤 바인꾸온’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바인깐을 만들고 있다. 박미향 기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 방문한 노점 ‘중 바인깐 앤 바인꾸온’은 우리네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전을 부치듯 3명의 중년 여성이 바인깐을 만들고 있었다. 바인깐은 달걀을 넣어 만드는 작은 보자기 모양의 쌀가루 음식이다. 두 여성이 신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8개의 홈이 오목하게 파인 화덕 여러개에 여성들은 반죽 물을 바쁘게 붓고 있었다. 안내원 ‘나’가 “쌀가루와 강황가루를 섞은 반죽 물”이라고 알려줬다. 바삭하게 익어서 반죽이 그릇처럼 오목해지면 그 안에 메추리알을 넣는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달걀노른자가 아닌 메추리알 노른자를 넣는다는 것. 완성이 되면 가게 주인 중루가 채 썬 파파야, 베트남식 소시지와 각종 채소를 얹어준다. 베트남 채소는 질이 좋고 가짓수도 많다. 야생에서 자라는 채소도 먹을 수 있는 게 수십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나라의 육류·우유 소비량이 적은 이유다. 허름한 천막을 치고 손님을 맞는 이 집은 지역민 사이에서 맛집으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은 모르는 맛집인 것이다. 이 집 바인깐 한 접시 먹기 위해 시동을 끄고 줄 선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이어 도착한 노점은 껌가(닭고기밥), 짜오빗(오리죽), 짜오가(닭고기죽), 고이빗(오리 샐러드) 등을 파는 ‘꾸언투’였다. ‘껌’이란 밥을 뜻한다. 베트남 미식 여행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는 글자가 바로 ‘껌’이다. 그만큼 밥 요리가 많다는 소리다.


꾸언투의 주인 투쩐이 털을 벗긴 오리 한마리를 두툼한 나무 도마 위에 얹는다. 배를 가르기 시작한다. 쉭쉭, 무술 고수가 한껏 제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영화 장면이 겹쳐진다. 발골을 마치고 땀을 닦는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꾸언투’의 주인 투쩐. 박미향 기자

껌가는 강황가루를 섞어 만든 밥에 닭고기 등을 얹어 먹는 음식이다. 이 집 오리 샐러드엔 오리 간 등 각종 내장이 들어간다. 오리죽은 중국이나 홍콩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먹는 콘지와 닮았다. 안내원 ‘나’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 영향일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부터 1천년 넘게 중국의 침탈을 받았다. 중국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비옥한 베트남을 노렸다. 여러차례 승리의 역사가 있지만 오랜 시간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꾸언투의 주인도 여성이다. 세 집 모두 중년 여성이 맛을 만든다. 베트남에선 노점을 운영하는 이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러차례 침략전쟁에 시달렸던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가족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서민층일수록 그 무게는 묵직했다. 여러 문헌에 관련 기록이 있다. 17세기 후반 베트남에 표류한 적 있는 조선 사람 고상영은 제주로 돌아와 “베트남에서 남자는 천하고 여자는 귀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딸이 태어나면 기뻐하지만 아들이면 우울해했다는 기록도 있다. 농사짓는 땅이 삶의 근간인 베트남에서 대지를 상징하는 어머니, 여성은 베트남의 중요한 가치를 지키는 존재였던 것이다.




호이안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엔 일명 ‘화이트 로즈’로 불리는 바인바오바인박이 있다. 쌀가루 등의 반죽을 꽃잎처럼 얇게 빚은 다음 그 위에 간 돼지고기나 새우, 숙주 등을 넣어 마치 물만두처럼 익혀 먹는 음식이다. 호이안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이름은 ‘봉홍짱’, 흰장미라는 뜻이다. 식당 간판에도 ‘화이트 로즈 레스토랑’이라고 병기해놨다. 호이안의 모든 식당이 이 집 바인바오바인박을 사 와 변형해 판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겨레

일명 ‘화이트 로즈’로 불리는 바인바오바인박을 만들고 있는 식당 ‘봉홍짱’의 사람들. 박미향 기자

해가 진 호이안 거리는 감히 어둠의 고요가 점령할 엄두를 못 낸다. 형형색색 켜진 등 사이로 여행객을 유혹하는 먹거리가 밤을 쫓아낸다. 밤 9시. 호이안 ‘옛 거리’ 끝자락에서 마치 ‘백종원 맛집’처럼 길게 줄을 선 식당을 발견했다. ‘바인미 프엉’. 수십가지의 바인미를 파는 전문점이다. 안내원 ‘나’는 “주인이 몇달 전에 한국에 가서 바인미 식당 컨설팅도 해줬다”고 알려줬다.


베트남만큼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침탈에 대항해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나라도 없다. 하지만 지배당했던 역사의 흔적은 남기 마련. 프랑스는 약 100년간 베트남을 지배했다. 호이안에서 두툼한 바인미를 맛보면서 식민 지배의 흔적을 목격한다. 하지만 베트남의 바인미는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시엔엔>(CNN)은 네가지 베트남 음식을 소개하며 바인미를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산이지만 현지인들 입맛에 맞게 재해석해서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호이안의 밤거리. 박미향 기자

밤 10시, 어둠이 더 짙어지자 파파야, 용과, 망고스틴 등 각종 과일을 갈아 파는 노점으로 향했다. 북위 24도와 8도 사이에 에스(S)자 모양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은 특유의 뜨거운 기온과 습도로 과일의 당도가 높다. 호이안은 보는 즐거움보다 ‘먹는 기쁨’이 큰 도시다.


호이안(베트남)/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문헌 <베트남-역사와 사회의 이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여기는 베트남 껌은 밥이다>




■ 호이안에서 꼭 가볼 식당은 여기!


리엔 까올러우(LIEN CAO LAU): 호이안의 전통 국수 까올러우 파는 곳


주소 120 TRAN CAO VAN, Phuong MINH AN/ 전화번호 +84 836 133 336


중 바인깐 앤 바인꾸온(DUNG-BANH CAN & Banh Cuon): 쌀가루 케이크 같은 바인깐을 맛볼 수 있는 곳


주소 110 TRAN CAO VAN, Phuong MINH AN/ 전화번호 +84 909 863 720


꾸언투(Quan THU): 닭고기밥, 오리죽 등 전통식 파는 곳


주소 DOI DIEN 16 THAI PHIEN / 전화번호 +84 905 299 532


화이트 로즈 레스토랑(봉홍짱 Bong hong trang): 바인바오바인박 원조집으로 알려진 곳


주소 533 Hai Ba Trung, Phuong Cam Pho/ 전화번호 +84 90 301 09 86


바인미 프엉(BANH MI PHUONG): 수십가지 바인미가 손님을 맞는 곳


주소 2b Phan Chu Trinh Cam Chau / 전화번호 +84 90 574 37 73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호이안의 고급 레스토랑


강바람 맞으니 미각이 살랑살랑


미식 여행 일정을 짜다 보면 한끼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진다. 호이안에는 ‘아난타라 호이안 리조트’가 있다. 이 리조트가 운영하는 ‘호이안 리버사이드’와 ‘아트 스페이스’는 근사한 음식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레스토랑은 메뉴의 차별화를 통해 색다른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국내 여행서에도 자주 소개된 호이안 리버사이드는 강바람 일렁이는 투본강의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지난 2일 밤 8시(현지시각) 저녁 상차림에 등장한 음식은 정갈하게 차려진 베트남 밥상이었다. 바인바오바인박(화이트 로즈)과 호이안 스타일의 치킨 샐러드, 쌀가루 피에 갖은 채소를 싸 먹는 고이꾸온 등이었다. 특히 고슬고슬 잘 익힌 면을 겹쳐 마치 만두피처럼 만들어 돼지고기와 채소를 싸 먹는 음식은 풍미가 일품이었다. 디저트 메뉴인 쿡박은 열대과일 용안과 리치 등이 코코넛 시럽과 어울려 달콤한 맛을 내 미각을 사로잡는다. 레스토랑의 실내는 고급스러운 식탁과 인테리어가 돋보이지만, 테라스에서 투본강 바람과 벗 삼아 식사하는 걸 추천한다.

한겨레

‘아난타라 호이안 리조트’에 있는 레스토랑 ‘아트 스페이스’에서 파는 칵테일. 박미향 기자

아트 스페이스는 호이안에서 보기 드물게 미술품을 전시하는 현대적인 레스토랑이다. 서양식 고급 음식과 화덕 피자, 칵테일 등을 맛볼 수 있다. 베트남 바질을 얹은 모차렐라 샐러드, 망고를 곁들인 연어 세비체, 자두 소스를 곁들인 닭다리 요리 등이 있다. 이 식당의 별미는 시나몬, 정향, 고수, 라임, 고추 등이 재료인 칵테일이다. 지난 4일 바텐더는 나뭇가지 모양의 기구를 활용해 시식을 위한 칵테일을 만들었다. 그는 “고수가 들어간 칵테일, 상상이 안 될 것”이라며 현란한 솜씨를 발휘했다. 뜻밖에 고수 특유의 향과 맛이 느껴지지 않는 칵테일이었다. 또 아난타라 호이안 리조트는 베트남 전통음식을 배우는 쿠킹 클래스인 ‘스파이스 스푼’도 운영한다.


호이안(베트남)/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08.2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