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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GPS는 언제나 공짜일까? 한반도 상공의 위성항법 ‘전쟁’

by한겨레

GPS는 언제나 공짜일까? 한반도 상

그래픽 노수민 기자

콜럼버스 시절 뱃사람들은 동일한 간격으로 매듭(노트) 지어진 줄을 늘어뜨려 일정 시간에 흘러나간 매듭 수로 배의 속도를 계산했다. 정확한 항법 시계를 확보한 영국이 자국 면적의 153배를 지배한 건 우연이 아니다. 현대에도 주요국들은 정확한 위성항법시스템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1983년 9월1일 미국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이 소련 상공에서 공군기의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참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이 구축한 위성항법시스템(GPS)을 민간에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항공기는 관성항법장치(INS)에 의존해 운항을 했다. 초기 위치정보로부터 가속도를 측정해 항공기의 속도와 위치를 추정하는 장치다. 조종사들은 아이엔에스에 의존하면서도 지도와 바다, 육지를 번갈아 봐가며 운항하던 시절이었다. 이 장치 고장이 대한항공의 소련 영공 침범 원인으로 분석되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73년 개발해 군용으로만 쓰고 있던 지피에스를 군과 상의도 없이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일방적인 발표에 군이 반발하자 레이건 행정부는 지피에스의 2개 신호 가운데 1개만 민간에 개방하되 위치 정확도를 낮추는 고의잡음을 넣기로 타협했다. 하지만 지피에스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3년 대한항공 격추 사건 이후 미, 군용 위성항법장치 전격 개방

지금은 누구나 무료로 쓰지만 유사시 서비스 중단하면 대혼란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인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는 상추재배로봇을 개발해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밸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지피에스를 이용하는 이 로봇은 상추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고 정해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상추를 솎아내기도 하고 비료 섞인 물을 뿌리기도 한다. 아직은 사람이 타고 있지만 조만간 무인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지피에스는 항공기에서부터 선박, 자동차, 스마트폰, 드론에 이르기까지 행정·국방·통신 등 경제·사회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지피에스 정보는 공기처럼 누구나 무료로 쓰고 있지만 제공처는 자연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이고, 자연물이 아니라 인공물이다. 언제나 공짜가 아닐 수 있으며, 서비스 장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등이 독자적인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허문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에스바스(SBAS)사업본부 위성항법팀장은 “위성항법 정보를 평화적 이용이라는 전제로 무료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도 무제한으로 언제까지나 서비스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는 않는다.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입무기는 지피에스의 군용 신호로 운용되기에 한달마다 교체되는 암호를 미군한테서 제공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지엔에스에스 개발은 좋게 표현해 경쟁이지 전쟁과 다름없다.

GPS는 언제나 공짜일까? 한반도 상

GPS 위성

지피에스는 워낙 광범위하게 활용돼 보통명사처럼 쓰이지만 미국 지엔에스에스의 고유이름이다. 옛 소련은 독자적인 글로나스(GLONASS) 위성을 쏘아올리다 경제적 이유로 중단했다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 정상운용되고 있다. 아직은 세계적으로 활용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유럽우주국(ESA)은 애초 30기의 위성으로 갈릴레오(Galileo)라는 지엔에스에스를 구축하려 했으나 26기로 축소해 2018년께 정상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14기의 위성이 운용되고 있다. 중국은 2000년 자국과 주변 지역에 대한 위성항법시스템을 시작해 2012년에는 서비스 범위를 아시아 태평양 대부분 지역으로 넓혔다. 2020년까지 35기로 운용되는 지엔에스에스 구축을 목표로 현재 21기 위성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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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를 RTK-GPS를 이용해 움직이는 선상에 정확하게 착륙시키는 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유럽·러·중, 독자망 구축 나서

일본·인도도 지역항법 개발중

한국은 2040년 개발·구축 목표

정확한 위치 정보 경쟁 가속화

 

인도와 일본은 전지구 서비스보다는 자국 범위의 지역위성항법시스템(RNSS) 구축에 집중했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기의 위성을 발사해 인도 주변 반경 1500㎞ 지역에 독자적인 위성항법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일본은 2018년까지 7기의 위성으로 구성된 아르엔에스에스 ‘QZSS’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엔에스에스는 중궤도 위성(고도 2만㎞ 안팎)으로 구성된 데 비해 아르엔에스에스는 정지궤도(고도 3만6천㎞) 이상의 위성을 활용한다. 지엔에스에스 신호를 보완해 위치정보 오차나 신호 수신 사각지역을 없애는 구실을 한다. 도심에 들어갔을 때 내비게이션이 오작동하는 것은 빌딩 숲에 방해를 받아 지피에스 신호를 잘 못 잡기 때문이다. 아르엔에스에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와 일본 모두 중국처럼 아르엔에스에스를 기반으로 지엔에스에스로 확대해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QZSS 구축 때 지피에스가 끊어져도 가동을 할 수 있도록 고유 신호를 심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는 세계 주요국들의 위성항법 각축장 안에 싸여 있는 형국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독자 지엔에스에스 개발을 위한 기획연구를 완료했다. 2040년께까지 지엔에스에스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조3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말까지 수립하게 돼 있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 지엔에스에스 구축 계획을 반영할지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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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로 자동운영하는 미국 농기구개발업체 ‘블루리버테크놀로지’의 상추재배로봇.

지엔에스에스 구축과 별도로 주요국들은 위성기반보강항법시스템(SBAS·에스바스)에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유럽연합 등이 지엔에스에스 개발 경쟁에 뛰어들자 민간에 제공하던 신호에 넣었던 잡음을 없애는 등 ‘품질 개선’에 나섰다. 오차 범위가 몇 킬로미터에서 몇십 미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피에스 신호는 위성궤도, 위성시계, 위성데이터 등 자체의 오차에다 전리층의 전자와 부딪혀 생기는 오차, 대류층 진입 때 습도에 의해 발생하는 지연, 도시 철조건물에 의한 오차 등으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지피에스 정보에서 이런 오차를 보정해 정확한 정보를 생산한 뒤 이를 정지궤도 위성을 통해 다시 서비스(방송)하는 시스템이 에스바스이다. 현재 미국·유럽·일본·인도 등은 에스바스를 운용 중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구축 중이다. 한국은 2014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2020년 일반 서비스, 2022년에는 항공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남기욱 항우연 에스바스사업본부장은 “지피에스 평균 오차가 10미터라면 에스바스의 정확도는 1~2미터까지 줄어든다. 에스바스는 여기에다 정보의 신뢰성이 99%인지, 99.9999%인지까지 알려준다”며 “에스바스가 구축되면 항공사고는 75%가 감소하고 항로 증대와 노선 직선화 등으로 연간 5만3천톤의 탄소배출량과 4만2천배럴의 연료 절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