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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사는 북한주민

by한겨레

영국인 전현직 기자, 북한주민 생활상 탐구

장마당 중심으로 시장경제 퍼져

고위관리가 앞장서서 사업 벌여

“북한 붕괴 안 한다. 점진 개방이 유력”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16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자신이 운영하는 맥줏집 ‘더 부스’에서 만난 다니엘 튜더는 “고려항공은 항공여객만이 아니라 콜라도 만들고 택시회사도 운영하는 대기업화되어 가고 있다. 국가 주도 경제하에서 기업들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195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북한이 한국 경제와 같은 경로를 밟으며 성장할 가능성도 꽤 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

 

비아북·1만7000원

 

2012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다니엘 튜더는 다음해 북한 대동강맥주 양조장 책임자의 초청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방북 당시 그는 북한의 고위 공무원들 앞에서 맥주 회사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기업 창업과 마케팅에 관해서 강연을 했다. 그는 “북한에서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무원이다. 고위 공직자 중엔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중국에 북한 물건을 팔고, 북한에선 중국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를 놀라게 한 건, 북한 관리 중 한 명이 돈을 1억원씩 투자해서 맥주 회사를 운영해보자고 튜더에게 제안해왔다는 것이었다. 승낙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은 그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두 영국인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다룬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냈다. 공저자 다니엘 튜더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왔다가 열정적인 한국인들에게 반해버린 뒤, 영국을 오가며 7년가량 한국에서 생활해온 ‘한국인 다 된 영국인’이다. 2013년 맛없는 한국 맥주 시장을 바꿔보고자 한국인 동업자들과 함께 직접 맥주 회사 ‘더 부스 브루잉 컴퍼니’를 차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청와대 해외언론 정책자문으로 내정돼 신원 조사 절차를 밟고 있다. 제임스 피어슨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북한 관련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북한을 7번가량 방문한 북한 전문가다(외부 언론 인터뷰를 하려면 회사 승인을 받아야 해 시간 관계상 인터뷰엔 함께하지 못했다).

 

16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맥줏집 ‘더 부스’에서 만난 튜더는 “여전히 한국 대기업 맥주는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말했다. 튜더는 책을 쓴 이유를 묻자 “외국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관심을 두는 대상은 북한의 2500만명 주민 중 단 한 사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뿐이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북한 사람들을 봐야 북한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밝히기 어려운 경로로 만난 북한 사람과 탈북자들, 북한을 오가는 화교들, 북한 관련 시민단체 사람들 등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서 북한 내부의 정보를 모았다. 왜곡된 북한 관련 정보가 많기에, 믿을 수 있는 정보원 3명 이상에게 확인된 정보만을 책에 쓴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조각을 모아 맞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공산주의 계획경제보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사는 이들의 모습에 가까웠다.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평양 중심부 만수대가 있는 창전거리에 세워진 고급 아파트들은 떠오르는 신흥 부유층을 상징한다. 이곳은 뉴욕 맨해튼처럼 풍족한 삶을 누린다고 해서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고 불린다. 사진 다니엘 튜더. 비아북 제공.

평양은 속속 올라가는 고층빌딩으로 얼굴이 달라지고 있다.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 불리는 평양 중심부 만수대에 있는 아파트는 10만달러(한화 1억원가량)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법망을 피해 활동하는 부동산 중개인도 나타났다. 평양 시내에선 태블릿피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흔하게 보인다. 스키니진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볼 수 있다. 관리에게 뇌물만 주면 전국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전달하고 숨기기 쉬운, 수십개의 한국과 외국의 드라마, 영화, 음란물을 담은 작은 유에스비(USB)는 북한의 정보 감시 체계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 사회의 변화를 불러온 것은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이 결정적이었다. 북한은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일제가 만들어놓은 산업 기반 위에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하려는 전국민적 열정으로 고속 성장을 이뤄, 1973년까지는 남한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았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이 끊기고, 1994~5년 대홍수로 인한 대기근으로 많게는 300만명이 사망했다. ‘국가가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장마당(시장)을 만들어 스스로 생계를 이어갔고, 점차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북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리의 노점상. 사진 다니엘 튜더. 비아북 제공.

이제 북한에선 거의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이중적인 경제 활동에 종사한다. 충성도가 높은 평양 사람들조차 가족 중 누군가는 장마당 활동에 관여한다. 관여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탈북자 친척에게 송금을 받는 식의 위험한 소득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북한에 이중 환율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 지정 환율로는 달러당 96원이지만, 시장 환율은 달러당 8000원에 이른다. 공무원의 월급이 1000~6000원인데, 암시장 환율로는 1달러도 안 돼, 담배 한 갑도 살 수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정한 일터에서 열심히 일할 동기는 사라지고,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노동자들은 공장 물건을 착복해 암시장에 내다 판다.

 

그렇다면 이런 시장의 확대와 북한 주민들의 자본주의화가 북한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까?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중국, 싱가포르 같은 권위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튜더는 “중국이 경제는 자본주의지만 정치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하듯이, 북한이 경제를 개방한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 북한은 다른 독재국가보다 회복력과 인내력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주변 국가들의 압박은?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을 한계점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수년간 계속된 제재에도 평양에 사치품이 넘쳐나고 나아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두 저자는 “단기 혹은 중기적으로 볼 때 북한에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는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인 국가 개방”이라고 믿는다.

 

결국 한국 정부가 가야 할 길은 햇볕정책으로의 귀환이다. 튜더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 정부가 북한 김정은에게 정권을 무너뜨릴 의도가 없다는 안정감을 주면서, 북한을 지원하고 경제 교류를 확대해나가는 길이 북한 주민들의 상황을 개선하고 경제적 개방을 촉진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스마트폰에 스키니진 입고 ‘평해튼’

지난 5년 사이 북한에서 일어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휴대전화의 부상이다. 2008년 무선통신 사업자인 고려링크가 출범한 이후 20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휴대전화를 구입해 서비스에 가입했다. 사진 조셉 페리스. 비아북 제공.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