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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연 행복할까

by한겨레

자유한국당,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사진 내걸어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사진은 왜 안거나 

박정희는 이승만 미국식 민주주의·경제무능 비판 

김영삼은 평생 박정희 쿠데타와 독재 강력 비판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지도부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기에 앞서 회의실 벽에 이승만(오른쪽부터)·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은 채 순국선열의 날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 10일 보수우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본당으로서 세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른쪽부터 홍 대표, 정우택 원내대표, 류여해·이재만 최고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자유한국당이 17일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세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중앙당사에 걸고 최고위원회를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세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국회 대표실, 원내대표실, 그리고 전국 시도당에도 붙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사진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사진을 당 대표 및 사무총장 사무실에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는 사진을 걸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세 전직 대통령 사진을 내건 이유는 뭘까요? 사진을 걸기로 결정한 11월 13일 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이런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보수 적통을 계승한 자유한국당이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면면히 이어온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세 분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주역’, 김영삼 전 대통령. 이 세분의 사진을 당사 및 각 시·도당 건물에 걸기로 했습니다.

 

320만 자유한국당 당원 모두는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를 이끌어 온 세 분의 대통령들께 탄핵 여파로 허물어졌던 보수우파를 반드시 재건하여 이 시대 역사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또한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산업화를 이룩하고 민주화를 쟁취한 적통보수의 역사를 계승하고 국민 여러분들께 사랑받는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자유한국당의 이번 결정은 홍준표 대표가 제안한 것입니다. 11월 10일 대구 아시아미래포럼21 토론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홍준표 대표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다음 주 최고위원회 논의로 세 분의 대통령 사진을 걸 예정이다. 건국 아버지인 이승만 대통령, 조국 근대화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의 아버지인 김영삼 대통령, 그 세 분의 사진을 저희 당사에 걸 생각이다. 이 나라를 건국하고, 5천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민주화까지 이룬 세 분 대통령에 대해서 그 업적을 이어받겠다. 물론 반대파 주장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세 분 업적을 이어받은 당이 우리 당이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른바 보수 논객들에 의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의 상징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민주화의 상징이 김영삼 전 대통령인가요? 민주화의 상징은 김대중 전 대통령 아닌가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로 대한민국을 파탄 낸 실패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이른바 보수 진영에서도 별 인기가 없었습니다. 물론 1960~70년대에는 박정희 독재와 맞서 싸웠고 1980년대에는 전두환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돼서는 하나회 청산,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등 엄청난 개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의 상징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독점하는 것이 옳은가요?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은 17일 오후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김영삼을 이야기하다’ 토크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홍준표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인사말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불운한 지도자다. 와이에스는 금융실명제, 토지거래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하나회 척결 같은 과감한 문민 개혁으로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한편 우리 정치의 토양을 근본부터 바꿨다.”

 

“지금 와이에스가 자유한국당과 보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과감한 혁신을 통해 신보수주의 야당의 새로운 존재 가치를 찾으라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의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어쩌면 홍준표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우리나라 보수의 한 축으로 복권시킨 배경에는 개인적 인연이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홍준표 대표는 19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서울 송파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정치적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

2016년 11월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차남 김현철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다 좋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개혁보수의 상징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세 전직 대통령이 저승에서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이번 결정을 과연 좋아할지 의문이 좀 들렀습니다. 물론 ‘새까만’ 정치 후배들이 보수의 적통으로 자신을 인정해 준 것에 대해서는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세 사람은 생전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우 나빴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야 박정희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별 관심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좋게 평가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5·16 쿠데타의 명분을 기존 정치인들의 무능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이승만 박사는 애국자이고 훌륭한 분이지만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옮겨 토양도 다른 이곳에 심으려 했던 것은 잘못”이라거나 “국민이 가난에 찌들어 있는데도 미국 원조나 받고 경제건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며 이승만 독재를 비판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습니다. 물론 자신도 이승만처럼 독재를 했으면서 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0년 초 회고록을 낸 일이 있습니다. 회고록 서문에 이런 대목들이 있습니다.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

1987년 9월1일 김영삼(왼쪽)·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겨레>자료사진

“1960년 4월 혁명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 땅에 안겨 줬지만, 5·16 군사쿠데타가 그 싹을 무참히 짓밟아 버림으로써 역사의 시계를 30년이나 거꾸로 되돌려놓았다.”

 

“나는 이들 두 분의 뒤를 이은 정통야당의 적자(嫡子)로서,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전두환에 이르는 30년 군사독재의 전 기간에 걸쳐,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내 한 몸을 던져 불의를 고발, 권위주의 군부 통치에 맞서 싸웠다.”

 

“정보정치는 모든 진실을 어둠 속에 묻어 버린다. 이미 우리 시대의 진실, 민주화를 향한 우리 국민의 피나는 노력은 박정희·전두환 두 군사독재 정권의 정보공작 정치에 의해 그 원형이 파괴·유린된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5월 청와대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접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렇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접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뒤 19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한 데 대해 “오늘의 독재자 김대중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독재의 상징인물인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명을 발표한 일도 있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 대결이 벌어졌을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박근혜 후보를 ‘칠푼이’라고 깎아내리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2012년 7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칠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도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김현철씨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두고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평생을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군사독재와 투쟁해오신 저의 아버지, 초산 테러와 의원직 박탈 그리고 가택연금과 단식투쟁.. 가족인 저희들도 당시 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박정희와 박근혜.. 혹독한 유신 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용서.. 말이 쉽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의 민주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리라 믿습니다. 민주세력을 종북세력으로 호도하는 세력이야말로 과거 세력입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입니다. 김현철씨는 2017년 대선에서 더욱 선명한 목소리로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했습니다. 2012년과 2017년 김현철씨의 이런 정치적 의사 표현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무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정희 옆에 나란히 걸린 김영삼, 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4월28일 부산 중구 옛 미화당백화점 근처 광복로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연설을 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아무튼 자신이 생전에 그토록 싫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옆에 나란히 자신의 사진이 걸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금 저승에서 과연 기뻐할까요?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결정에 이상한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사진을 골라서 걸었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법통은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에서 출발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면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걸지 않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과 흉상이 있습니다.

 

바른정당의 하태경 최고위원이 14일 최고위원회에서 이 점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홍준표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만 걸고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내리겠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평판이 너무 안 좋으니까 보수의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그런 뜻이다. 역사에 대한 패륜이다. 오늘 이 얘기를 한다니까 권오을 최고위원께서 명언을 남겼다. ‘아버지 없는 할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빼고 어떻게 김영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논하느냐. 잘 났든 못났든 다 보수의 대통령이요, 보수의 역사적 유산이다. 잘 난 대통령 사진만 걸고 못난 대통령 사진은 없애버리겠다는 것인데, 바른정당은 적어도 그렇게 배신하지는 않는다. 역대 대통령에게 의리는 지킨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자기 부모를 부모라고 하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보수를 국민이 반드시 심판해 주시기 바란다.”

어떻습니까? 논리적으로는 하태경 최고위원의 말이 구구절절 맞는 것 아닌가요?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정치에서도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나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취하고 나에게 불리한 것은 버리겠다는 태도는 곤란한 것 아닌가요? 자칫하면 ‘역사’가 아니라 ‘짜깁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