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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하루키가 ‘러브 앤 머시’를 만났을때

by한겨레

하루키가 ‘러브 앤 머시’를 만났을때

러브 앤 머시. 판씨네마 제공

두 번의 단절을 통해 전설 같은 음악을 만든 브라이언 윌슨의 전기영화 개봉

하루키는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음악도 잘 듣고, 달리기도 잘한다. 풀코스를 20회 이상 뛰었을 정도로 마라톤을 좋아한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마라톤 대회에도 자주 참가했는데, 2002년 12월의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은 조금 특별했다.

하루키는 음악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문학사상사, 2006)에서 비치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1963년 열네 살 때 비치보이스의 <서핀 유에스에이>를 듣고 “부드러운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이후 브라이언의 천재성에 탄복하고 열렬한 팬이 된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예민했다. 쉽게 상처받고 무방비했으며 “자신감과 실망의 사이를, 전진과 자기파멸의 사이를, 질서와 혼돈 사이를 불안정하게 왔다갔다” 했다. 팀원과는 불화를 일으켰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약에 손댔고 중독자로 변해갔다. 그런 그가 기적적으로 생환해 2002년 호놀룰루 마라톤 전야 행사 콘서트를 열었다. 하루키는 당시의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맨 앞줄 객석에서 점차로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브라이언의 최근 곡인 <러브 앤 머시>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빌 포래드 감독의 신작 <러브 앤 머시>는 예민했던 천재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에 대한 뛰어난 전기영화이면서 천재 뮤지션의 창작 열의와 명곡을 감상할 수 있는 세밀한 음악영화다. 미국 현지에선 알폰소 고메즈-레존 감독의 <미 앤 얼 앤 더 다잉 걸>,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등과 함께 내년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20대 브라이언(폴 다노)과 40대 브라이언(존 큐잭)의 삶을 병치하며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음악적 영감이 솟구치던 1960년대와 신경쇠약으로 고통받는 1980년대를 오가며 천재 뮤지션이 겪어야 했던 세상과의 불화와 내면의 갈등, 그리고 새롭게 눈뜨는 사랑을 리얼한 영상에 담아냈다. <서핀 유에스에이>로 스타덤에 오르던 당시의 모습을 16㎜ 카메라로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처럼 촬영해 사실감을 더했다. <서퍼 걸> <펀, 펀, 펀> <굿 바이브레이션스> <갓 온리 노스> 등 명곡의 향연도 귀를 즐겁게 한다.

브라이언 윌슨은 두 번의 단절을 겪었다. 첫 번째는 자발적 단절이다. 비치보이스가 경쾌한 서핀 음악 밴드로 치부되자 라이브 무대를 중단하고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전설의 명반 <펫 사운드>(<롤링스톤>이 꼽은 500대 명반 중 2위)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비자발적 단절이다. 그는 폭압적인 심리치료로 악명 높았던 유진 랜디 박사(폴 지어마티)의 간섭과 통제를 견뎌내며, 우연히 만난 여인 멜린다(엘리자베스 뱅크스)를 통해 삶의 구원을 얻은 뒤 명곡 <러브 앤 머시>를 작곡했다. 사랑과 자비는 고통 속에서 잉태했다. 하루키는 호놀룰루에서 이 노래를 듣고 브라이언의 인생에 제2막이 존재한다고 썼다.

단절은 종종 ‘다른 삶’을 안내한다. 브라이언 윌슨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테너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도 단절을 통해 새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195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는 1959년 어느 날 모든 스케줄을 접은 뒤 완벽하게 잠적했다. 소니 롤린스는 1961년까지 2년 동안 청소부 등 고된 일을 하며 다른 삶의 체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저녁에는 동네의 작은 다리 위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이진경은 <삶을 위한 철학수업>(문학동네, 2013)에서 “단절 이후의 음반을 들어보면 색소폰 소리가 아주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부드럽지만 퍼진 느낌의 소리는 단단하고 뭉친 느낌으로 변했다.

단절은 ‘나 자신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통로다. 스스로 유폐의 길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거대한 그림자와 맞서 싸우다보면 이전의 삶이 추구하려는 안정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1963년부터 2002년까지 두 번의 단절을 겪으며 세상에 없는 앨범과 노래를 만들었다. 하루키는 39년의 세월 동안 부침이 심했던 브라이언의 음악적 궤적을 함께하며 ‘상실과 재생’의 드라마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영화는 한국에서 7월30일 개봉한다. 일본에선 이틀 늦은 8월1일 관객을 찾는다. 하루키가 극장에 앉아 브라이언 윌슨이 직접 부르는 <러브 앤 머시>를 들으면 어떤 감상에 젖게 될까. 그의 눈시울은 뜨거워질 것이다.

곽명동 객원기자·<마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