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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른다네

by한겨레

곡성·구례·하동 농촌 시골밥상 체험 여행…지난달부터 ‘농가민박 조식 판매’ 공식 허용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전남 곡성군 오곡면~죽곡면 섬진강변 자전거도로.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집밥이 인기다. 늘 먹고 평생 먹어갈 집밥이 인기라니. 거리에서 사먹는 밥, 식당밥과의 대비 때문이다. 요즘 뜨는 먹방·쿡방이 아니더라도, 점심·저녁 사먹어야 하는 일이 많으니 집밥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하다. 엄마 손맛, 아내의 정성이 깃든 비옥한 상차림이 집밥이다. 식당들이 가정식 백반, 시골밥상, 엄마손 상차림, 할머니 손맛 등을 내세우는 것도 음식을 집밥스럽게 차려낸다는 뜻이다. 그래 보았자 ‘역시 식당밥’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국내 여행길에 내집에서처럼, 친척집에서처럼, 고향집에서처럼 차려주는 집밥 상차림을 받아볼 수는 없을까.

 

농어촌 민박집에서라면 그게 가능하다. 그동안 호텔에만 허용되던 숙박객 조식 제공이 지난 7월7일부터 ‘농어촌 민박사업자’에게도 허용(농어촌정비법 개정 법률안 시행)됐기 때문이다. 숙박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이른바 ‘농어가 비&비(베드 & 브렉퍼스트)’다. 과거 농어가 민박집들 중엔 숙박객의 요청으로 쉬쉬하며 아침밥을 ‘불법 제공’하는 곳들이 많았다. 이를 노리고 사진 찍어 신고하는 ‘식파라치’까지 설칠 정도였다. 농가민박집들로선 이제부터 객실 시설이나 주변 볼거리, 청결도·친절도 등 분위기 말고도, 특별한 맛과 정성을 담은 집밥으로 숙박객 끌기 경쟁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멋과 맛을 품고 흐르는 청정 물길, 곡성·구례·하동을 잇는 섬진강 주변 농촌마을의 집밥 상차림을 만나고 왔다. 직접 재배한 제철 식재료 위주로 집밥을 차려내는 집들이다. 투박하지만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자연식탁이다.

식약동원 새기며 밥상 차리는 운조루 옆 민박집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구례군 오미리 농가민박 ‘산에사네’의 아침상차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 앞 배롱나무.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구만들(九萬坪)로 불리는 널찍한 평야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섬진강변 19번 국도 옆이다. ‘99칸 고택’ 운조루로 유명한 이 마을에, 밥과 반찬이 두루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내는 ‘산에사네’ 농가민박이 있다. 10년 전 귀농한 50대 부부가 방 네 개로 민박을 하는 이 농가는, 방보다 밥 덕에 유명해진 곳이다.

 

이 농가에서 만난 아침밥상(7000원)은 이랬다. 첫인상은 아침부터 이런 성찬을 받아도 되나 싶게 풍성하다는 것, 두번째 느낌은 그 내용이 각양각색의 나물밭 가운데 들어선 듯 여겨질 정도로 푸성귀 일색이라는 것이다. 다래순·오가피순·가지 무침에 산뽕잎·산마늘(명이나물)·깻잎 절임, 고들빼기 무침, 매실 장아찌, 그리고 풋고추 한무더기에 된장까지 10여가지가 놓였다. 밥은 현미·토종옥수수·동부(콩의 일종)를 넣어 지은 솥밥. 표고버섯·호박 된장국과 오이냉채가 곁들여졌다. 맛은 모두 순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양념을 별로 안 해, 원재료의 맛과 향기가 입안에 오래 살아 있다.

 

불법이던 ‘아침식사 제공’

농어촌정비법 개정으로

농가민박집 희색

산나물·약초 등 특산물 활용해

맛·정성 담은 시골 상차림 선보여

농촌마을서 묵으며

푸근한 집밥 체험 가능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고 하지요. 이 상차림은 우리 부부가 건강해지기 위해 먹는 밥상 그대로예요. 원재료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은 최소한으로 합니다.”(안주인 노정애씨) 이 부부는 “가능하면 ‘식이 되고 약이 되는 농산물’을 골라 심고 길러 밥상에 올린다”고 했다. 된장·간장을 직접 담그는 건 물론이고, 음식엔 설탕 대신 직접 만든 매실효소를, 국물은 멸치·다시마·표고버섯을 우려내 쓴다. 이 농가민박집은 내건 구호가 있다. ‘나눔의 시골 밥상’이다. 노씨는 “남편과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사의 종점은 따뜻한 밥상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란 걸 깨달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 아침밥상은 숙박객한테만 차려준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묵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숙박비는 게스트하우스(3인실)의 경우 1인 2만원, 편백나무방은 2인 기준 8만원이다. 모두 텔레비전·에어컨 없는 온돌방이다. 직접 생산한 산마늘·표고버섯·감식초와 이웃이 맡겨놓고 파는 벌꿀 등을 사갈 수 있다.

 

오미리 마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운조루다. 조선 영조 때(1776년) 류이주(1726~1797)가 지은, 78칸에 이르는 큰 집인데 주변 가옥들과 아울러 ‘99칸집’으로 불려왔다. 현재는 안채·사랑채·행랑채 등 73칸이 남아 있다. 기둥도 마루도 문짝도 하나같이 낡고 닳고 빛바랜 옛 목재 그대로여서 고색창연한 맛을 더해준다. 인상적인 건 사랑채 부엌 쌀뒤주 옆에 놓인 또 하나의 커다란 통나무 뒤주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간다는, 낡고 닳은 이 뒤주 아래쪽엔 마개를 해놓은 구멍이 있고, 여기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씨가 쓰여 있다. ‘누구든 마개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이웃들이 언제든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집주인이 행한 나눔과 베풂의 삶이 감동을 준다.

평사리 들판 보며 주인 정성 가득한 아침식사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쪽으로 19번 국도를 달리면서, 왼쪽 지리산 자락으로 뻗은 곁길들은 화엄사·연곡사·화개장터·쌍계사 등 두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름난 여행지들로 이어진다. 19번 국도 자체가 봄이면 매화·벚꽃·배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는 꽃길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 무대인 하동 평사리 벌판도 이 길 옆에 있다. 드라마 <토지> 촬영장인 최참판댁 등 소설 속 집들을 재현한 한옥·초가들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신라시대 산성인 고소성도 가까운 곳에 있어 둘러볼 만하다.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하동 신흥리 농가민박 ‘금향다원’의 아침상차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평사리 벌판에서 악양면 소재지 쪽으로 들어가다 우회전해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 신흥리다. 3000평 차밭을 가꾸는 농가민박집 금향다원이 이곳에 있다. 2년 전부터 안주인 김미희씨가 방 2개로 허름한 민박을 하며 정갈한 아침식사를 차려내는 곳이다. 7월31일 아침 8시, 평사리 너른 뜰이 내려다보이는 이 집 마당 평상에선 서울에서 휴가여행 와 하루를 묵은 젊은 남녀 한쌍이 아침밥상을 받고 있었다.

 

“우와, 맛있겠다.”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을 이용한 맑은 재첩국에 현미밥, 가지무침·매실장아찌·야채찜·두릅장아찌·돼지감자장아찌·뽕잎오디장아찌에다, 칡잎에 하늘타리꽃으로 장식된 두부구이 등으로 이뤄진 상차림이다. 두 사람을 더 흐뭇하게 한 건 뒤이어 상에 오른 머위잎, 차조기(붉은깻잎) 잎이 곁들여진 찐 고구마·호박·감자·통마늘 접시였다. 원재료 그대로의 모양과 맛을 살린 음식들이다. 남자친구에게 음식을 집어 권하며 김아무개(28)씨가 말했다. “음식이 맛있는 농가민박을 검색해 찾았는데 제대로 찾아온 거 같아요. 농가 분위기는 허름하지만 밥도 반찬도 깔끔하고 맛이 있네요.”

 

이 집 자랑 중 하나가 목조가옥 2층에 마련한 ‘차방’이다. 사방에 창문을 열어놓아, 지리산 맑은 바람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이 차방은, 누구나 바람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나가는 사람이든 여행 온 사람이든 마음대로 들어가 쉬며 차를 마실 수 있게 개방한 방입니다. 내가 나누고 베풀 수 있는 게 바로 차거든요.”(안주인 김미희씨) 이 농가 숙박비는 아침식사 포함해 균일가 5만7000원이다.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곡성 하늘나리마을 민박집 상차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곡성군 죽곡면 상한리 하늘나리마을의 옛 정미소 건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소박하고 평범한 밥상인데 민박객 줄 이어

전남 곡성군 죽곡면 섬진강변 17번 국도에서 봉두산 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농촌체험마을인 상한리 하늘나리 마을이 나온다. 22가구 중 15집이 민박을 하며 집마다 푸짐한 시골 집밥을 차려내는 곳이다. 300여년 전 순천에서 선조들이 이주해오며 마을을 이뤘다는 이곳에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데, 연일 민박객들이 이어진다. “집마다 차리는 음식이 아조 맛이 좋응게로 그러지라.”(마을위원장 김해명씨)
 

음식은 60~70대 어르신들이 차려내는데, 그 내용을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다. 고사리·취나물 무침, 가지 조림, 죽순 물김치, 죽순 장아찌, 담배상추 무침에다 집마다 각자 담그는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등이다. “특별한 것도 안 있소. 요것이 담배상추란 것인데 곡성 특산 상추라요.” 담뱃잎처럼 생긴, 줄기째 뜯어 무쳐먹을 수 있는 상추란다. 더 특별한 건 주로 가을철에 주문받아 차려내는 능이버섯토종닭백숙이다. 상한리 마을 야산엔 능이버섯·싸리버섯이 흔하고 직접 재배도 한다. “요것(능이·싸리버섯 백숙)을 먹을라고 가을엔 도시 사람들이 줄을 이어요.”

 

하늘나리 마을의 또 다른 특산물로 토종벌꿀이 있었다. 집마다 벌통 수십개씩 없는 집이 없었지만, 몇년 전 벌이 원인 모르게 거의 다 죽어, 요즘엔 김 위원장만이 벌통 20개를 관리하고 있다. 꿀 뜨기 체험이나 버섯 채취 체험은 11월에 하고, 두릅·고사리·취나물 채취 체험은 봄에 한다. 여름엔 대나무물총 만들기, 물총싸움 체험, 천연밀랍으로 양초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이 마을 민박은 아침식사 포함 균일가 5만7000원이다.

섬진강 농가민박 여행 정보

 

섬진강 물길 따라 ‘집밥 향기’도 흐

섬진강 따라 농가민박 집밥 체험

가는 길 중부권에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가다 익산교차로에서 익산·포항고속도로로 갈아탄 다음 다시 완주교차로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로 바꿔타고 내려가 남원 지나 구례·곡성으로 간다. 구례 운조루 쪽으로 가려면 구례·화엄사 나들목에서 나가 19번 국도를 타고 운조루 팻말 보고 간다. 곡성 하늘나리마을로 가려면 황전 나들목에서 나가 17번 국도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오른다(곡성군청 방향). 하동 신흥리 금향다원은 19번 국도에서 최참판댁 방향으로 좌회전해 악양면 소재지로 들어간다. 길이 좁고 복잡하므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는 게 좋다.

 

농가민박이란? 농가민박은 농어촌 지역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빈방과 유휴공간)을 이용해, 숙박·취사시설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본디 농어업 종사자에게만 민박업을 허용했으나 2005년 농어촌 거주민까지로 확대했고, 이번 농어가 민박 아침식사 제공 허용으로 농어촌관광 활성화를 위한 새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민박집 처지에선 새로운 수익원을 얻게 됐고, 숙박객들은 아침식사를 직접 준비하거나 주변 식당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됐다. 농가로선 집밥 상차림을 통해 제철 식재료 등 지역 특산물을 알리면서, 이를 판매하는 직거래 기회도 갖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의 경우 농어촌민박 숙박객의 68.5%가 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농산물 등을 구입(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 지원 팸투어 보고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국 농어촌 민박집은 2만2000여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번 ‘농가민박 조식 제공’ 허용 조처가 직거래를 통한 도농 교류 활성화는 물론, 새 국내여행문화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 등에서 활성화된 ‘농가 비&비(베드 & 브렉퍼스트)’나 일본의 인기 ‘료칸 맛집’처럼, 국내에서도 농가민박이 향토색 짙은 숙박·음식을 경험하는 차별화된 여행자 숙소로 발전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용인대 문화관광학과 오순환 교수는 “‘한국인의 밥상’ 같은 방송 프로에서 보듯 각 지역과 가정엔 개성있는 향토음식들이 전해오는데, 이를 일반인이 접할 기회는 적었다”며 “이번 조처로 각 농가민박이 지역 특산물 밥상 차림을 통해 숙소 차별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곡성·구례·하동/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