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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유혹하는 건축,
비밀이 있었네

by한겨레

현대건축 갈지자·비정형·해체주의 등 담아

스마트폰, 소셜미디어와 결합 가속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덴버 아트 박물관·구겐하임미술관 대표적

유혹하는 건축, 비밀이 있었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수없이 많은 것이 변화하는 ‘가속의 시대’(토머스 프리드먼)에 건축도 ‘지그재그’ 갈지(之)자걸음을 걷고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사진을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현대인이 창조해낸 세계는 무거운 물성을 가진 건축물조차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렸고, 건축물이 뿌리박고 있는 위치의 제한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건축물은 세계의 모든 건축물과 경쟁한다. 이 변화 속에서 트렌드는 갈팡질팡하며 갈지자를 그리고, 이 혼란함을 반영하듯 실제 건물 형태에 갈지자를 담거나 비정형의 건축물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해체주의'나 ‘디지털' 등의 이름이 붙는다.

독특해지고 복잡해지는 건축 트렌드

유혹하는 건축, 비밀이 있었네

건축이 사람을 유혹하려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확연히 달라진 것은 그 방식에 있다. 지금까지 건축이 건축물을 직접 맞닥뜨린 사람에게 여러 공간적 장치를 제공해 이끌어내려 하던 것에 집중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디지털 기기에서 표현되는 건축물의 외형 그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0년 전후로 등장한 해체주의 건축의 트렌드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와 결합하며 더욱 빠르게 퍼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제 단순히 ‘초고층’이라는 단어는 예전과 같은 경쟁력을 잃었다. 좀 더 화려하고 복잡하며 독특해야 한다. 박물관과 같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랜드마크 건물들은 바로 이러한 언어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이 박물관은 1912년 지어진 기존의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석재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기존 건물 옆에 ‘크리스털'이라 이름 붙인 현대건축물을 덧붙였다. 스틸 프레임 위에 유리(25%)와 알루미늄(75%)을 앉혀 이름 그대로 크리스털 형상을 만들기 위해 2억7000만 캐나다달러(약 2300억원)를 들였다. 인터넷에서 이 박물관을 검색하면 수많은 사진이 쏟아져 나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2007년 문을 연 이후 매년 연간 100만명 정도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덴버 아트 박물관 역시 2006년 전위적인 형태의 ‘해밀턴 빌딩'이 추가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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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출처 커먼스 위키미디어

동유럽국가인 조지아는 2011년, 국경지대인 사르피에 지그재그를 몸에 새긴 건축물을 세웠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대외적으로 자국 이미지를 쇄신할 도구로 건축을 이용하는 조지아는 국경지대 사르피의 국경검문소에 지그재그 건물을 세웠다. 건축가 마크 쿠시너는 자신의 책 <미래의 건축 100>에서 “방문객을 유혹하고 자극하는 건축”이라고 말했다.

 

사진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는 독특함만큼 큰 무기가 없다. 특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건축물을 만들었다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눈으로 스윽 보고 끝내고 마는 일차원적인 소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여러 각도에서 찍힌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이를 위해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성이 가미되거나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추상화 같은 비정형성 건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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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 아트 박물관. 출처 커먼스 위키미디어

비정형이 가진 힘

비정형 건축물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스타키텍트’(Starchitect, Star+Architect)란 타이틀을 처음 얻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서부터다. 그가 1997년 스페인 빌바오에 지은 구겐하임 미술관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이곳은 개장 첫해, 예상치의 3배에 달하는 100만3600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위대한 건축의 힘을 증명했다.”(<클릭, 서양건축사>) 랜드마크 건물이 도시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의미하는 ‘빌바오 효과'라는 사회학적 용어까지 만들어 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스타가 된 최초의 건축가인 게리는 여전히 스타다. 아니, 오히려 가속의 시대에 접어들며 그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 비정형의 건축물은 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그것은 비정형 그 자체가 가진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리가 말하듯 “어떤 양식에서 현저히 벗어나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파격”인 빌바오 미술관은 어느 각도에서는 거대한 배처럼, 어느 각도에서는 또 꽃송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티타늄 피막은 햇빛을 받아 금색이나 은색, 회색, 자줏빛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니 사진으로만 볼 때 너무나도 아쉬운 작품이 바로 빌바오 미술관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껏 공유되며 상상력을 자극한 뒤에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결국 직접 가서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빌바오의 비정형이든 사르피의 지그재그이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점은 사진을 통해 진짜 사람의 움직임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두 곳에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측면은 ‘가속의 시대'를 맞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공유 속도가 오히려 건축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시대가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물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올라가는 것도 일리가 있다. 건축의 외피가 상징과 환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술사 전문가인 캐롤 스트릭랜드는 <클릭, 서양건축사>에서 “디지털 주택”이란 표현을 쓰며 “정보가 가득 담긴 외피로서의 건축 표면”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건축가 마크 쿠시너는 저서 <미래의 건축 100>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17억5000만대의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건축을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모든 이가 건축 사진가로 변모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로 공유된 사진은 건물을 지리적 위치에서 해방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대중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유혹하는 건축, 비밀이 있었네

중국 베이징 시시티브이 건물. 출처 커먼스 위키미디어

공유 시대가 만들어낸 환상

초현실주의를 느끼게 만드는 중국 베이징의 시시티브이(CCTV, 2008년 완공) 건물을 설계한 기자 출신의 건축가 렘 콜하스는 최근 전위적인 건물이 어느 때보다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타키텍트'란 말을 만들어 낸 게 누구였죠? 바로 언론이에요. 언론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이미지를 내놓으려는 괴상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제 사람들은 건축가에게 잘 짜인 복합건물을 설계하길 기대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원하는 건 상징이에요. 언론을 통해 선전된 아이콘을 원하는 거죠.”(<나는 건축가다>)

 

이제 소셜미디어라는 더욱 강력한 미디어가 건축을 지배하고 있다. 아이콘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외피로 표현된 건축물을 공유의 숫자로 평가 내린다.

 

이 같은 해체주의적인 건축물이 늘어난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경대 건축과 임기택 교수는 <해체주의와 건축이론>에서 ‘해체주의’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사실 해체주의 건축은 유럽과 같이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기억과 퇴적물이 쌓여 있는 곳에서 새로운 것이 침투해서 들어올 때 기존의 것과의 조화를 이루거나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존의 구조가 이미 공고한 상태에서 새로운 구조가 들어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담론에 가깝다.”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건축 소비자로서 내가 견지하고 싶은 관점은 이런 건축물이 때와 장소를 가려야만 한다는 점이다. “나는 강하고 개성적인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박물관이나 콘서트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라는 게리의 말처럼 도시의 상징이 되는 박물관이나 콘서트홀이 아닌 바에야 우리가 평상시에 삶을 영위하는 공간을 디지털 속에서만 살아 숨 쉬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작은 동네에서는 사진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의 힘이 사람을 이끄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이른바 도시적 맥락을 어기는 ‘이기적인 건축’이 도토리 키 재기처럼 갈팡질팡하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할 경우 건축은 공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Zigzag

지그재그. 알파벳 제트(Z) 또는 한자 갈지(之)자 형태나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함. 프랑스어로는 ‘우여곡절’이란 뜻도 있음. 건축, 패션, 게임 등 일상생활에서 두루 쓰이고 있으며,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행동이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함.

음성원 도시건축 전문 작가 겸 에어비앤비 미디어정책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