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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있을까

by한겨레

여행으로 먹고사는 전문가 4명이 꺼내 보여준, 여행길에 함께 읽고 싶은 국내외 여행서 8권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여행작가는 여행을 일삼는 이들이다. 이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보고 겪고 느낀 것과 먹고 마시고 누린 것들을 정리해 여행책으로 엮어낸다. 여행작가들은 그래서 국내외 여행지들의 매력과 여행하는 방법 따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각자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도 일터를 오가면서, 또 일하는 틈틈이 동업자들의 책을 골라 읽는다. 여행전문가들이 여행하며 읽는 여행책은 어떤 것들일까. 열심히 일(여행)한다고 알려진 4명의 여행작가가, 자신의 여행가방 속에 든 아끼는 여행책들을 꺼내 보여줬다. 노동효·손미나·채지형·한은희 작가가 일하면서 읽고 감동받았던, 휴갓길 여행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국내외 여행서 8권을 소개한다. 아,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걱정 마시라. 우리 인생 여행에 여름휴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노동효(<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저자)

<당신에게, 섬>

강제윤/꿈의지도


대한민국 500개 넘는 유인도를 모두 걷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섬을 순례해온 여행자가 있다. 강제윤. 시인이 보길도 ‘동천다려’ 민박집을 접고 길 떠난 지 10여년. 그동안 400여개의 섬을 두루 섭렵한 뒤, 그중 가려 뽑은 40개 보석 같은 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제주도·한산도·매물도처럼 유명한 섬들뿐 아니라 송이도·고대도·여서도·시산도처럼 그가 아니었다면 바다 위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섬들이 그의 발길 닿고, 눈길 닿아 ‘꽃’이 된다. 섬의 산길·오솔길·벼랑길을 걸으며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두른다. 아,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섬이 이토록 많았구나! 시인이 섬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소리 그대로 옮긴 문장은 그 자체로 한국 지역말(방언)의 보고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한 시절을 보낸 사람 아니면 결코 들려줄 수 없는 철학과 시와 이야기로 가득하다. 섬마다 방문하기 좋은 제때와 제철 음식에 대한 정보까지 덧붙여 두었으니, 때맞춰 선착장과 항구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니시카와 오사무/나무발전소


전세계에는 나라 수만큼이나 다양한 술과 안주가 있고, 술안주엔 당연히 궁합이 존재한다. 삼겹살엔 소주, 빈대떡엔 막걸리가 제격이다. 여기서 질문. 그러면 스웨덴산 냄새 고약한 정어리 절임엔 어떤 술이 최적의 궁합일까? 답은 아크바비트다. 그럼 포르투갈의 정어리 구이엔? 타이 요리 랍엔? 그리스 문어 요리엔? 전세계를 직접 다 돌아보지 않고서야 이 오묘한 술안주 궁합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냐고? 맞다. 40년간 세계를 떠돌며 각 나라 술과 안주의 궁합을 연구해온 작자가 있었으니, 니시카와 오사무. 직업이 사진가라며 카메라까지 팔아대며 그는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도, 아메리카에서도, 오세아니아에서도 부지런히 마셔댄다. 나라마다 다른 식습관이나 기호나 냄새 따윈 가리지 않는다. 최고의 술안주 궁합을 체험하고야 말겠어! 그러곤 전세계 애주가를 위한 기행문을 내놓았다. 이제 이 책을 들고 세계를 떠돌 일만 남았으니, 아, 나를 기다리는 술과 안주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손미나(<스페인, 너는 자유다> 저자)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창비


아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국내여행 붐을 일으킨 원조 국내여행서가 아닐까. 엄격히 말하자면 여행기라기보다 답사기지만, 요즘 말로 여전히 ‘여행 뽐뿌’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국내 여러 명승지와 숨겨진 문화유산을 찾아 전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땅, 그리고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다. 맛과 멋이 깃든 남도부터 천년고도 경주, 조선의 심장이었던 서울, 그리고 바다 건너 만 가지 전설이 가득한 제주까지 읽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많은 갈 곳, 볼거리가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놀고 먹는 여행이 아니라 배움이 있는 국내여행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망설이지 말고 선택할 것. 미술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여행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시라.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21세기북스


사실 그의 책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 소개 따위는 거의 없다. 그는 우리의 여행 환상을 와장창 깨부수면서 자기의 여행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에게 파리는 로맨틱한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난폭한 운전사들이 가득한 위험천만한 곳이며, 노르웨이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이 있는 천상이 아니라 매서운 추위와 무뚝뚝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있는, 도저히 정을 붙이지 못할 곳이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했으며, 이 루트가 좋다는 식의 무미건조하고 천편일률적인 일반 여행서들과는 다르다. 이 까탈스러운 아저씨의 여행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행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며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고 싶어진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 레모네이드 같은 톡 쏘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빌 브라이슨과 함께하면 어떨까.


잔잔한 감동 느끼고 싶을 땐

<자전거 다큐여행> <당신에게, 섬>

장거리여행 땐 유머 가득한

<발칙한 유럽산책> <럼두들 등반기>를

학습여행의 기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애주가 위한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맛집정보 책 <명소 옆 맛집>도 추천

채지형(<지구별 워커홀릭> 저자)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거 다큐여행>

한상우/북노마드


길 위에 있는데도 여행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여행 책을 읽을 때가 그렇다. 이미 다른 공간에 있는데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유혹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 다음 여행을 꿈꾸다니, 위험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가져온 책은 덜 위험하다. “길은 달린 만큼 달랐다. 길은 꿈꾼 만큼 달았다”고 말하는 지은이의 여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다큐여행’이라니, 제목에서 흙먼지 냄새가 난다. 그런데 다르다. 건조한 제목과 달리 책 속에 담긴 사진과 글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가 자전거로 부산 용호동, 양산 통도사 등 우리 산하 곳곳을 여행하며 길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이 대화는 담백한 사진 한 장과 잘 빚은 한 문단에 녹아 있다. 이를테면, 부산 용호동의 전신주 사진 옆에 “전선이 끊기자 전신주는 금세 늙었다. 곧, 가난한 용호동 위에 부유한 용호동이 세워지리라”라는 글이 함께한다. 깊이 있는 그의 시선 때문에, 여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은 쉬 넘어가지 않는다. 지은이의 여행 친구는 자전거와 카메라다.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는 식물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햇빛과 물, 공기만 가지고 밥을 짓는 식물이 부러웠는데, 명색이 동물로 부러워만 할 수 없어 자전거를 구했단다. 교통비는 자전거가 냈고, 사진은 길 위의 시간과 공간을 붙들었다.


<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은행나무


첫 네팔 여행을 준비할 때, 읽을 책을 찾다가 공정무역과 산악소설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산악문학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그러다 <럼두들 등반기>를 발견했다. 럼두들이라, 들어본 적이 없는 산이었다. 당연했다. 럼두들은 1만2000.15m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산이었으니까. 산악의 웅대하고 장엄한 자연미나 그곳의 생활을 내용으로 하는 산악문학이 그렇듯, 이 소설도 7인의 대원이 럼두들을 오르는 사연을 담고 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소설인데, 여기서 함정은 울다가 흘린 눈물이 아니라 웃다가 흘린 눈물이라는 것.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코믹 산악소설이라는 장르가 딱 맞다. 끝도 없이 빠져드는 마력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을 생각나게 했다. 1956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오랫동안 해적판으로 떠돌다 유쾌한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발견해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동시간이 긴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한은희(<엄마, 우리 이곳에서 놀아요> 저자)

여행작가 배낭엔 어떤 여행책이 들어

<명소 옆 맛집>

유은영·민혜경/알에이치코리아


요즘 ‘먹방’이 한창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웬만한 프로그램에서는 음식이 소개될 정도. 그래서인지 여행지를 선정할 때도 ‘맛집’이 필수 고려 조건이다. “○○(으)로 가는데 거기 맛있는 게 뭐예요?”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내가 국내여행 때마다 차 안에 두고 급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책이 이 책이다. 음식은 취향에 따라 달리 평가되지만, 적어도 평균점 이상 받을 만한 곳들을 담고 있다. 여행이 편하려면 관광지와 음식점이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모처럼 떠난 여행,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바라는 게 여행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여행지 인근 음식점은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은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런 때, 지은이들이 직접 찾아가서 맛본 뒤 골라낸 ‘명소 옆 맛집’이 위력을 발휘한다. 누구나 아는 유명 식당도 있고, 꼭꼭 숨은 동네 맛집도 있다. 명소와 맛집을 엮은 1박2일 여행 코스도 제시한다.


<어떻게든 될 거야, 오키나와에서는>

송수영/낭만북스


오키나와는 내게 여행하기 먼 일본이었다. 쇼핑·맛·문화를 찾아 떠나는 일본 여행에서 도쿄나 오사카처럼 늘 선택할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자연 그대로 간직한 휴양 섬 ‘오키나와’는 항상 뒷전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을 읽노라면 저절로 오키나와 여행을 꿈꾸게 된다. ‘여자 혼자 떠나도 좋은 여행지’라는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책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여행지 선택의 폭이 다양해, 취향에 따라 여행 코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일본어로 된 안내판을 읽을 만큼은 일본어를 알아야 한다는 걸 깨우쳐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아 책 안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가이드북이 아니다. 지은이가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듯이 쉽게 다가오는 책이다. 그렇다고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정보는 모두 적절한 곳에 있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권하는 이유다.


정리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각 여행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