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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명성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내실은 '글쎄'

by한겨레

대구 미술관 ‘김환기전’


‘경매 최고가 낙찰’ 열광 속

관람객들 연일 북새통이지만

뉴욕시대 ‘습작드로잉’ 상당수

일부 ‘명품’ 앞세워 구색 맞추기

‘최대 규모 회고전’ 홍보 무색

명성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내실

김환기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2전시장에서 관객들이 작가의 70년대 점화대작들을 살펴보고 있다.

관객들이 북적인다. 수백여평 전시장에 내걸린 대작들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이제 한국 미술판도 블록버스터 전시를 할만한 거장이 나타났다고 기뻐해야할 것인가.

 

대구미술관(관장 최승훈) 2, 3전시장에서 지난달 22일부터 시작한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회고전은 겉과 속이 극명하게 다른 작품마당이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김환기를 두고 그에 대한 세간의 열광과 미술계의 연구역량 사이에 놓인 깊은 틈새를 보여준다.

 

김환기의 1972년작 붉은 점화 대작은 지난달 27일 홍콩 경매에서 85억원에 낙찰됐다. 국내 근현대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지난 3년새 김환기 작품으로만 6차례 최고가 기록을 넘어섰다. 국내 미술시장 낙찰액 상위권 10개 작품 중 여덟 작품도 그의 것이다. 이런 성과를 감안하면, 초창기부터 말년까지 그린 주요 작품 108점과 사진, 글, 화구 따위의 유품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그 덩치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미술관 쪽은 도쿄 시대(1933~37)와 서울 시대(1937~56), 프랑스 파리 시대(1956~59), 미국 뉴욕시대(1963~74)로 전시 영역을 구분하고, 추상 작업의 정수인 70년대 전면 점화가 나오기까지의 작품 여정을 간추렸다고 밝혔다. 아쉽게도, 2전시장에 나온 작품 구성의 면면을 보면 부실한 부분들이 적지않다. 최대 규모 회고전이라는데, 작품 핵심인 유화 대작들은 20여점 정도다. 과슈(불투명 수채)나 드로잉 등 소품들만 휑한 전시장에 일렬로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공간이 밋밋하고 특징적인 배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눈에 걸린다. 전시장 안쪽에 말년 뉴욕 시기 대작들만을 별도 전시한 검은 블랙박스를 만든 것이 공간 구성에서 눈에 띄는 정도다.

 

게다가 전시는 작가의 작업 시기별로 균형감있게 작품들을 배치하지 못했다. 1930~60년대 작품들은 30년대의 <집>과 50년대 피난시절의 스케치를 담은 연필 수채화를 비롯해 30점 정도에 불과하다. 전시장 절반 가까이를 60년대말~70년대 뉴욕시대 그림들로 채워놓았다. 뉴욕시대가 김환기 작품세계의 정수란 점을 고려해도 나온 작품들 상당수는 습작드로잉, 구상메모 성격이어서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학예실이 작품 인선과 기획과정에서 충실한 밑그림을 그렸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명성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내실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김환기가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부산의 바다풍경.

전남 신안 섬마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하고 프랑스와 미국에 머물며 작업했던 김환기는 평생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발견해냈다. 산, 달, 별, 하늘 등 이땅 특유의 자연적 풍광과 교감하면서 서구 추상회화와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융합·접목시키는데 정열을 쏟았고, 그런 노력이 말년 거대 점화라는 결실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의 얼개는 미술판에 상식적으로 알려진 김환기의 작업 시기 구분에 맞춰 일부 명품들과 들러리격의 소품들을 채워넣고 대형 전시의 구색을 맞춘 것에 그친다. 각 작업시기별로 풍성하게 전해지는 작업 이면의 여러 일화들이나 전통적 소재에서 추상적인 색면화, 점화로의 변천과정, 세부적인 필치, 질감의 변천에 대한 설명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명성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내실

1960년 펜으로 그린 김환기의 자화상 드로잉.

말년 김환기의 그리기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점을 촘촘히 찍은 대작에 거대한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담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상을 함께 녹여넣었다. 작품 한점 한점 작품 그리는데 한달 이상이 걸렸다. 그는 말년의 일기에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이라고 썼다. 이런 고인의 노력과 열정에 견주어 전시의 만듦새는 태만해 보일 뿐 아니라, 그의 이름값에만 기대려는 속내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8월 19일까지. 053)803-7901.

 

대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