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시대, ‘작지만 확실한 나의 책’을 만드는 사람들

[컬처]by 한겨레

자기 글 직접 출판하는 독립출판

동네서점 붐 맞물려 ‘트렌드’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목소리 낼 수 있는게 장점

공통 취향 가진 독자와 공감대

 

기존 유통망 활용하기 어려워

직접 포장해 한부씩 배송해야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마이너스’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 하려는

젊은 층의 흐름 반영한 것”

소확행 시대, ‘작지만 확실한 나의

지난해 12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독립출판 창작자들의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 2017’에는 1만8천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황예지 사진가 제공

누구나 한번쯤은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이런 독립출판이 출판계의 트렌드라고 한다. 글을 쓰고, 직접 인쇄하고, 홍보하면 된다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립출판에 도전하는 한 작가를 통해 독립출판의 실제 과정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살펴봤다. 막상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독립출판으로 돈을 벌긴 쉽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하려는 걸까?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는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도서 등에서 지난해 가장 팔린 책으로 기록됐다. 올해도 꾸준히 인기를 모으며 지난 4월 기준 100만 부를 돌파했다. 최근 출판계 불황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언어의 온도>가 독립출판물이라는 사실이다. 독립출판이 대형출판사들과의 경쟁에서도 승산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독립출판물은 기존 출판사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작가가 스스로 책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출판물을 말한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예스24가 발표한 7월 2주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5위를 기록했다. 이 책은 교보문고, 인터파크에서도 판매량 8위를 기록했다. 이 책 역시 지난해 독자 1292명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아준 2000만원을 가지고 독립 출판물로 제작됐다. 백세희 작가는 스물여덟 평범한 회사원으로 책도 처음 쓰는 초보 작가다.


속초의 종합서점인 문우당서림의 이해인 디렉터는 “최근 손님이 찾는 책을 조회해 보면 독립출판물에 속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며 “우리 서점에서는 <맑음에 대하여>라는 독립출판물이 당시 베스트셀러보다 잘 팔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기를 얻은 독립출판물이 기존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기도 한다. 작가 오토나쿨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요리법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묶어 만든 <도쿄 일인 생활-여름>이라는 독립출판물은 온라인(네이버 스토어)에 등록된 지 10분만에 40권이 다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을’편과 ‘겨울’편을 만들었고 이들을 한데 묶어 ‘사계절 합본’까지 출판했다. 이후 대형 출판사인 마음산책을 통해 책이 다시 나왔다.


독립출판이 출판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네서점 붐과 맞물려 자신의 책을 직접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큰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겠다는 욕심은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독립출판의 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김은화씨의 독립출판 도전기

소확행 시대, ‘작지만 확실한 나의

지난해 12월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 2017’에는 1만8천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황예지 사진가 제공

전직 출판사 직원인 프리랜서 작가 김은화(31)씨는 지난해 <할배의 탄생> 저자 최현숙씨가 강의하는 ‘구술생애사’ 수업을 들었다. 구술생애사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인터뷰하는 것이다. 김씨는 어머니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김씨는 어머니의 삶을 복기하는 시간을 통해 어머니가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고 싶었다. 여러 차례에 결쳐 몇 시간 동안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열다섯 살에 마산자유수출지구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노사협의회 대표로 활동한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어머니는 물류유통업을 거쳐 요양보호사로 일하기까지의 과정과 이혼 후 고생한 이야기까지 일사천리로 풀어냈다.


김씨는 구술생애사 수업에서 ‘책으로 내도 재미있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김씨는 ‘독립출판, 나라고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지난 6월까지 김씨는 글을 계속 다듬으며 분량을 줄였다. 출판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제작지원 공모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낙방했다.


최근 김씨는 구청에 가서 ‘딸세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도 했다. 김씨의 목표는 오는 10월에 책을 내는 것이다. 원고만 완성한다고 책이 나오는 건 아니다. 출판은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일이다. 김씨는 출판 비용에 대한 견적을 내보았다.


일단 김씨는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서 제작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텀블벅은 독립적인 문화창작자들의 지원을 목표로 하는 펀딩 사이트다. 일정 기간 안에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만 후원된 금액을 창작자가 받을 수 있다. 작가들은 모금을 받아 책을 제작하는데 쓰고, 책이 출판되면 후원자에게 책과 굿즈(파생 상품. 책과 관련된 컵, 책갈피, 스티커 등)를 보내준다. 책이 나오기 전에 선금을 내는 셈이다. 김씨는 300만원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이 중 텀블벅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8~9%이기 때문에 실제로 김씨가 가져갈 제작비는 270만원 가량이다.


이 중 대부분이 인쇄비로 쓰일 것이다. 김씨가 인쇄소에서 견적을 받은 결과, 가장 저렴한 용지로 인쇄할 경우 500부 기준 180만원, 1000부 기준 207만원이었다. 용지를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면 500부 기준 241만원이었다. 인쇄 부수가 많을수록 단가는 싸졌지만 김씨는 자신이 500부 이상을 팔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파주에 위치한 물류 창고를 이용하는 비용을 알아봤다. 큰 출판사들은 자체 물류창고를 가지고 있고, 작은 출판사들은 돈을 내고 물류창고 일부를 빌린다. 물류창고 업체는 책을 보관해주고, 서점으로 배달도 해준다. 파주 교하에 위치한 한 물류창고에선 “기본 1년 이상 계약, 기본료 월 25만원”이라는 답변을 해왔다. 또다른 물류창고에선 “월 단위 이용 가능. 일반 서점 배달은 월 최소 16만원, 독립서점 배송은 택배비 별도”라고 답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기본 물류 비용이 책 2종은 21만원, 3종은 22만원으로 별 차이가 안 난다. 차라리 책을 여러 종류 만든 후에 사업을 시작해라. 책 1종 가지곤 거의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조언까지 해줬다. 결국 김씨는 물류 창고 이용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집에 책을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우체국에 가서 배송비를 내고 보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김씨가 최소치로 잡은 투자비용은 1000부 인쇄비 250만원, 책 디자인비 100만원, 굿즈 제작비 30만원, 배송비 50만원으로 총 430만원이다.


책 디자인비는 디자이너 친구에 의뢰해 싸게 한 편이다. 일반적인 업계 비용은 표지만 100만원이 들어간다. 본문 디자인, 마케팅 이미지, 로고 디자인 등을 합치면 100만원을 훌쩍 넘긴다. 부족한 부분은 친구에게 인세로 줘야할지 고민 중이다.


대체로 독립출판물의 경우, 일반 출판물(소비자가격의 60~65%)보다 약간 많은 소비자 가격의 70%를 받고 서점에 판다. 김씨가 책 가격을 만원으로 책정하면 500부 다 팔아도 350만원만 손에 쥐게 된다. 80만원 적자가 생긴다. 책 가격을 1만3천원으로 올리면 455만원을 벌어 순수익이 25만원이 된다. 이 또한 500부를 다 팔았을 때 이야기다.


김씨는 “처음에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머니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여성의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며 “하지만 막상 구체적 비용을 뽑아보니, 돈 한푼 벌 수 없는데, 시간과 돈, 인맥을 쥐어짜내 굳이 책을 만들어야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내 책을 만들고 싶고 독립출판을 해보고 싶다”며 “마케팅을 열심히 해서 최소 1000부 정도를 팔면 다음 책도 기획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독립출판의 길

소확행 시대, ‘작지만 확실한 나의

속초 문우당서림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신지민 기자

2009년 시작된 독립출판 창작자들의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매년 1만명이 넘게 참가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1세대 독립서점인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이틀 동안 수천 종의 독립 출판물이 전시되고 판매된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9회 행사에서는 1만8000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독립출판물은 기존 출판법인(출판사)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자유롭게 만들어 유통하는 모든 출판물을 통칭한다. 개인이 기획해 원고를 쓴 뒤 편집, 디자인, 인쇄, 제본, 유통, 홍보 등의 출판 전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유통경로 역시 대형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독립출판의 ‘붐’은 동네서점의 ‘붐’과 맞물려 있다. 새 동네서점을 소개하거나 동네서점 위치를 알려주는 앱 ‘퍼니플랜’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기준 전국의 동네 서점은 362곳이다. 지난해 7월 기준 전국 동네서점은 257곳이었다. 1년 사이에 100곳 넘게 더 생겼다. 동네 골목 등에 위치한 작은 서점인 동네서점은 일반 출판물도 팔지만, 독립출판물을 많이 취급한다. 돈을 들여 광고를 하지 않고도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게 가능해진 점도 독립출판 바람에 일조를 하고 있다.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전문가만 할 수 있었던 방송이란 것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독립출판이 등장하면서 아마추어도 책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말했다.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출판의 세계가 녹록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출판된 <나는 내가 아픈줄도 모르고-어느 간호사의 고생 일기>의 작가 212129(필명)는 “글을 모으면 책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책의 형태로 내어놓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편집 프로그램 수업을 6주간 들었다. 수업 기간 동안 책의 큰 틀을 잡는 법, 홍보하고 유통하는 법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편집, 교정 및 교열, 인쇄에 두 달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책이 나와도 홍보하는 것이 문제다.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온도>를 알리기 위해 6개월 동안 대형서점의 전국 매장과 독립서점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서점을 직접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독립출판물 작가들은 페이스북 등 자신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를 하고, 독립서점에 메일을 보내 자신의 책을 서점에 입고해달라고 요청한다. 212129도 “내 책에 관심이 있을만한 간호사·간호학과 학생 커뮤니티에 홍보를 했고, 독립출판 서점들에 입고 신청서를 마구 보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책을 보내달라고 하면, 자신이 배송비를 부담하고 책을 보내야 한다. 김은화씨의 견적서에서 보듯 물류창고를 이용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책을 보낼때는 1부, 서점에 보낼 때도 많아야 5부이기 때문에 특정 택배사와 계약을 맺고 할인을 받기도 어렵다. 정산은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한다. 책이 팔려야만 책 값을 받을 수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책이 다 팔린다고 해도 그 돈이 언제 수중에 들어올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독립출판

‘제 2의 이기주’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감수하면서 이들이 독립출판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기존 출판업계에서 다뤄지기 힘든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출판된 <목사 아들 게이>는 목회자를 부모로 둔 성소수자의 모습을 대담과 에세이로 담았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한국 교회에서 성소수자로 성장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종교의 민낯을 목격하고 새로운 시선을 모색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12129는 “학생 때 늘 실제 간호사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일하는지, 물어보고 싶고 들어보고 싶었는데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지 못했다. 간호사가 된 후에도 비슷한 책이 나오지 않아서 직접 만들게됐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간섭’ 없이 자신의 뜻대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김은화씨는 “기존 출판사 시스템에서는 돈 되는 책, 출판사 취향에 맞는 책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는 “독립출판물을 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책을 내고 그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직접 피드백해주는데서 만족감을 느낀다”며 “최근 20~30대 젊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게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2018.07.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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