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정을 드러낸다

[컬처]by 한겨레

임종진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임종진의 북녘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가 31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개막한다. 임종진 제공.

“대동강변을 따라 산책하듯 걷는데 한 무리의 남녀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어요. 어울리는 모습이 밝고 활기차 다가가 인사했지요.”


20년 전 김일성종합대 여대생 장류진 씨를 처음 만났던 기억에 대해 청하자, 사진가 임종진(지금은 사진치유전문 ㈜공감아이의 대표이사인 그)은 바로 며칠 전의 일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동행하던 북의 안내원이 “서울에서 온 분”이라고 소개하자, 마치 연예인을 대하듯 “우와!”하는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단다. 교포나 외국인을 만날 기회는 북쪽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북의 어느 곳을 가든 “남쪽에서 왔다”는 소개가 이어지면, 북의 사람들은 ‘감격’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반가움의 감정을 고스란히 쏟아 보여주었단다.


“좀 놀라운 이야기인데요, 곁에 북쪽 안내원도 있었는데 북쪽 사람들이 그렇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니.”


정말 그랬다.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에게 다가가 인사하는데 북쪽 안내원이 막지 않은 것도, 그들이 스스럼없이 반가워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나의 미천한 북한 관련 취재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김일성종합대학생 장류진 씨가 수줍게 웃고 있다. 임종진 제공

“남쪽에는 꽃제비류의 사진들이나 체제 비판적인 사진밖에 없어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소. 당신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하니 나를 통제하지 말아주시오”라고 임종진은 처음 평양에 도착해 안내원들에게 대담한 제안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다음날부터 거리낌 없이 북한 땅 곳곳에 깔린 우리의 동질적 형상들을 주워 담기 바빴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북쪽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어도, 결국 우리는 통일된 조국에서 함께 살아갈 한민족이라는 통일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남쪽에서 왔다고 하면 평양 같은 대도시나 작은 지역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환영해주었어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반공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렇게 북의 상황을 설명하던 그는 대답 끝자락이 쓰게 느껴졌다.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어려서 반공 포스터 그리기 숙제나 글짓기, 웅변대회쯤은 겪어본 이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도 흔할 테니까.


아, 그 장류진 씨. 류진 씨는 동무들의 소란 속에서도 한쪽 구석에서 사진처럼 그렇게 웃고 있었단다. 다소곳한 모습으로. 말없이도 해사하게 주변을 밝혔을 그의 미소를 임종진은 사진으로 기록했다. 덕분에 20여 년이 지난 2018년 우리는 그 사진을 통해 남쪽의 여느 청춘과 다를 바 없는 평양 청년들의 순간을 만나고 있다.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북쪽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어도, 결국 우리는 통일된 조국에서 함께 살아갈 한민족이라는 통일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남쪽에서 왔다고 하면 평양 같은 대도시나 작은 지역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환영해주었어요.” 임종진 사진가 제공

“사실 이 사진들이 막 새롭거나 한 건 아니잖아요.”


20년 전의 사진들로 2018년에 사진전을 연다는 사실이 겸연쩍은 듯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진으로 어루만지겠다 뜻을 품고 ㈜공감아이를 세우기 제법 한참 전에 그는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사진기자로 일했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로서 한때 열렸던 북한 관광길이 아니고서야 북의 일상을 사진에 담을 기회란 쉽지 않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사진들도 그가 사진기자로 일하던 시기, 1998년부터 2003년 사이 여섯 차례 방북해 취재한 사진들이다. 속했던 매체를 통해, 또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북녘의 그 사는 모습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몇의 공감을 얻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세상이,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다. 2018년 우리는 분단 이후 평화로 향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지나고 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맹렬히 서로를 비난하던 북-미가 마주 보며 웃다니! 상상을 압도하는 뉴스를 지켜보며 그도 벅차오르는 마음 한쪽, 많은 추억을 떠올렸을 게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사진과 이야기를 올렸다. 하지만 반응은 여느 때와 달리 폭발적이었다. 그런 그에게 갤러리 류가헌이 사진전을 제안했다. 이념적 일방성과 꽉 막힌 장막으로만 북을 바라보던 시선을 벗어나 보자고, 삶과 사람의 관점에서 남과 북의 경계선을 풀어보자고 둘은 의기투합했고 그래서 이 사진들이 2018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제게는 임종진의 북한 사진들이 특별하진 않았어요”라고 내가 말했다. 공식적으로야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이지만, 사적으로는 까마득한 후배. 그가 회사를 떠나던 날 펑펑 울었던 막내가 그리 말했는데, 그는 쉽게 수긍했다. 보통은 길어야 한 시간 남짓, 그런 취재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해야 하는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면서도 그는 현장에서 사람을 보았다. 그가 신문 사진기자로 일하던 시절, 데스크로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선배가 했던 말이다. “종진이에게 취재한 대상에 대해 물어보면 늘 이야기가 있어. 시장 스케치를 갔다가 찍은 할머니 사진에도, 혹시 이 할머니에 대해 좀 아나? 라고 물어보면 “아, 그 할머니요? 큰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요” 하면서 줄줄이 들려주지.”


인터뷰 첫머리에 그가 들려주었던 김일성종합대학 여대생 장류진 씨가 이야기가 떠올라 빙긋 웃음 지어졌다. 거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마 전에 만난 지인 이야기를 전하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를 데스크도 말한 것이겠구나 금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책한다면 부끄럽다. 하지만 그저 풍경의 일부로서 사람을 찍고 마는 것이 아닌,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잣대로 피사체의 경중을 가늠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임종진은 일상처럼 해내곤 했다.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한 소녀가 인민군복을 입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임종진 제공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 사람은 대상화되지 않을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빈민촌도 우리 나라 어느 시골 마을도 그저 그가 기록한 ‘사람’의 배경일 뿐, 그 배경 때문에 사람이 누추해지거나 비참해지는 일은, 최소한 그의 사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작아 보여도 가치 있는 삶의 존엄에 대해 그의 사진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북한 사진들도 그런 임종진 사진의 자연스러운 일부였기에, 그래서 감히 특별하진 않다고 말했던 게다.


딸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딛는 인민군 아버지와 발그레한 뺨으로 신랑 곁에서 뒤를 돌아보는 신부, 아기를 고이 안은 어머니의 모습들이 그의 사진 속에 가득하다. ‘북’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우리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북녘의 일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령님을 향해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인민들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로봇처럼 열을 맞춘 집단체조 장면이 북한 이미지의 전부는 아닐 테니 말이다.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임종진 사진가. 류우종 기자

그래서 임종진은 이 사진들이 북에서도 전시된다면 더욱 좋겠단다. 북한 땅을 다시 밟아 평양의 사진전시장에서 벗 마냥 우정을 쌓았던 그 시절 북쪽 안내원들과 재회할 수 있기를, 대동강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신랑 신부 가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신혼시절 그 사진을 보러 오기를,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장류진 씨에게 풋풋했던 스무 살 그를 찍은 사진 한 장 꼭 전해줄 수 있기를. 경계를 넘어 사람이 사람을 보는 날들을 임종진은 꿈꾸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만나는 마당에 우리 이제 그런 꿈을 꾸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사람 들이 함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그 꿈을 앞당기기 위해 먼저 서울에서 열리는 임종진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사진집 온라인 선주문 바로가기)는 7월31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갤러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다.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북녘의 일상을 담은 임종진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는 7월 31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갤러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왜 우리 늠름한 장교 동무를 동네 아저씨처럼 찍었느냐"는 북쪽 안내원의 투정에 임종진은 "그 장교가 동네아저씨처럼 웃는 걸 어쩌냐고, 너무 좋아서 찍었다"고 응수했다. 임종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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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어도, 결국 우리는 통일된 조국에서 함께 살아갈 한민족이 라는 통일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남쪽에서 왔다고 하면 평양 같은 대도시나 작은 지역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환영해주었어요.”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환대에 대해 물으니 임종진은 이렇게 답했다. 사진 임종진 사진가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남쪽에는 꽃제비류의 사진들이나 체제 비판적인 사진밖에 없어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소. 당신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하니 나를 통제하지 말아주시오.”라고 처음 평양에 도착한 임종진은 북쪽 안내원에게 제안했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남쪽에는 꽃제비류의 사진들이나 체제 비판적인 사진밖에 없어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소. 당신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하니 나를 통제하지 말아주시오.”라고 처음 평양에 도착한 임종진은 북쪽 안내원에게 제안했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북쪽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어도, 결국 우리는 통일된 조국에서 함께 살아갈 한민족이 라는 통일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남쪽에서 왔다고 하면 평양 같은 대도시나 작은 지역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환영해주었어요.”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환대에 대해 물으니 임종진은 이렇게 답했다. 사진 임종진 사진가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등교하는 어린이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소년이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에게 다가가 한 소년이 고무줄을 끊고 도망치고 있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등이 굽은 어머니를 모식고 나온 가족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아기띠 위로 아이를 감싼 채 걸어가고 있다. 임종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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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입은 군복도 일상의 표정을 가릴 순 없다. 임종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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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는 꽃제비류의 사진들이나 체제 비판적인 사진밖에 없어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소. 당신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하니 나를 통제하지 말아주시오.”라고 처음 평양에 도착한 임종진은 북쪽 안내원에게 제안했다. 임종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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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코끼리를 구경하는 사람들 임종진 제공

20년 세월을 건너 북한 사람들이 표

집단체조 연습을 마친 학생들이 운동장을 나서고 있다. 임종진 제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8.07.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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