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아닌 인간으로 살겠다고 선언할 때

[컬처]by 한겨레
꽃이 아닌 인간으로 살겠다고 선언할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제이티비시)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성형미인이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미녀는 괴로워>(2006)가 가수가 되기 위해 전신성형을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반면,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얼굴 전체를 고친 대학생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 12년간 무엇이 바뀌었을까. 성형대국의 실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연예인 지망생이 아닌 일반인조차도 성형압박에 시달릴 만큼 성형문화가 더욱 뿌리 깊어졌으며, 성형 후 ‘미녀’가 아닌 ‘강남미인’으로 불릴 만큼 판에 박힌 얼굴이 넘쳐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서부터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놀림 받던 강미래(임수향)는 불굴의 의지로 살을 빼지만, 여전히 ‘오크’로 불린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명문대에 합격한 강미래는 입학 직전 얼굴을 완전히 성형한다. 예뻐진 강미래는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행복을 느끼지만, 그의 외모에 대한 반응은 자연 미인에 대한 찬사와는 다르다. 여차하면 “성괴주제에”란 소리를 들을 만큼 비난과 경멸을 받는다. 강미래의 중학교 동창인 도경석(차은우)가 강미래에게 왜 성형했냐고 묻자, 강미래는 “내가 아무개 얼굴 정도만 되었어도 수술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도경석은 “남들 얼굴에 급 매기냐. 얼굴이 아니라 그 질 떨어진 마인드를 수술해야 된다”고 말한다. 강미래는 자신을 억압해온 외모기준을 내면화한 채 다른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해왔음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흥미로운 면이 있다. 첫째는 인구대비 성형수술 건수 세계 1위인 대한민국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모품평이 일상이고, 추녀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에 시달린다. 강미래는 본래 흥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심한 외모콤플렉스로 의기소침한 성격을 갖는다. 드라마는 그런 강미래가 성형을 결심하기까지 겪는 고민과 강남역에 즐비한 성형광고판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성형수술이란 것이 ‘비포’와 ‘애프터’만 있는 게 아니라 고통스러운 중간과정이 있다는 사실과 2000만 원의 카드빚이 남는 현실도 생략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추녀가 성형을 통해 사랑과 성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형 후 또 다른 차별과 고민에 직면하는 현실을 담는다.


둘째는 대학 신입생 여성이 겪는 괴로움이 상세히 담겨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만연하고 이성애 중심주의가 공고해서, 여자 신입생을 두고 남자들이 포식자처럼 굴거나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선남선녀를 엮어대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 드라마는 강미래를 둘러싼 남자들의 행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김찬우 선배는 자기 외모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성들을 외모로 줄 세우기하고, 자연 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막말을 퍼붓는데, 이는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의 발현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비판할만한 측면이 적지 않다. 우선 강미래에게 자신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외모를 품평하고 있었다는 각성을 안기는 것이 최고 미남 도경석이라는 사실은 문제적이다. 이는 여성주의적 성찰도 잘난 남자의 가르침에서 온다는 ‘오빠 페미니즘’의 구도이자, 잘생겼지만 여자의 외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신비의 개념남’에 대한 판타지이고, 사회적 자본과 외모자본을 모두 갖춘 남자가 여성을 구원한다는 업그레이드 된 신데렐라 서사이기 때문이다.


강미래가 동성 친구들과 맺는 관계도 문제적이다. 자연 미인 현수아의 행동은 처음에는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결국 ‘여우짓’으로 판명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의 강화이다. 강미래가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거절당하자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으며 결국 아버지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고치게 되었다는 설정은 동성친구나 가족보다 이성애를 절대적인 우위에 두는 사고의 산물이다.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데다, 춤으로 좌중을 압도할 정도의 예술적 재능과 우월한 몸을 지녔으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조향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꿈을 지닌 데다, 사랑하는 부모와 단짝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평범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성형을 감행한다는 서사가 선뜻 납득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의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외모 압박이 극심하다는 고발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꽃이 아닌 인간으로 살겠다고 선언할

지난 8월 5일에 방송된 <히든싱어5>(제이티비시)에 출연한 가수 에일리는 과거 무대에 서기 위해 극한의 다이어트를 해야만 했고, 당시 가창력이 100% 발휘되지 않아 속상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일단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 여성주체가 얼마나 극심한 분열과 우울을 겪는지를 잘 드러내는 일화이다. 여성들은 이제 여성들을 외모로 압박하는 코르셋 문화와 꾸밈 노동의 문제를 인식하였고, 자신도 코르셋 문화의 피해자이자 가담자임을 자각했다. 현재 벌어지는 탈 코르셋 운동과 ‘불편한 용기’ 시위에서 벌어지는 삭발식은 이러한 자각의 발로이다. 꽃이 아닌 인간으로 살겠다는 여성들의 존재선언을 선연하게 받아들일 때다.


대중문화평론가

2018.08.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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