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빛나는 그들에게도 ‘바닥 절망’의 시절이 있었네

[컬처]by 한겨레

개그우먼 3인의 인생역정

오늘 빛나는 그들에게도 ‘바닥 절망’

원고 마감으로 어둠이 깊은 새벽, 노트북 화면 하단에 메신저 알림 창이 뜬다. “떨어져서 우울하네요.” 친한 후배 ㅌ의 넋두리다. 20대의 끝자락을 취업 준비로 보내고 있는 ㅌ은, 평소 실속 없이 바빠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선배를 대신해 종종 자신의 근황을 먼저 알려오곤 하는데, 최근 몇 군데 취업 면접을 보고 왔다는 이야기까지 접한 터였다. 책임감이 강한 탓에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두려워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좀처럼 이야기를 안 하는 ㅌ이었다. 자신이 면접을 망쳤다 싶은 순간에도 울고 있는 옆사람을 먼저 위로하고, 제 취업 걱정을 하기에도 마음의 여유가 빠듯할 텐데 여자 지원자들이 받는 부당한 질문들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음을 제 일처럼 답답하게 여기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새벽 3시에 앞뒤 사정을 다 잘라먹은 채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으니,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으면 그랬을까. 내 경험상 ㅌ씨는 같이 일하기 참 괜찮은 사람인데, 면접관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싶네요. 고민 끝에 던진 말에 ㅌ은 답했다. 다른 지원자들도 다들 저만큼은 하는 사람들인걸요, 뭘. 그래도 답장해주시니 위로가 많이 되네요. 이런 날은 혼자라고 생각하면 썩 우울하니까요. 메신저를 타고 넘어온 자음 ‘ㅋ’들이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합격 부정탈까 혼자 라면 자축”

힘들고 아픈 게 어디 ㅌ 하나뿐이랴. 회사를 들어간 사람은 회사 때문에 아프고, 회사에 못 들어간 사람은 못 들어가서 아프다. 직장 내 따돌림과 괴롭힘 때문에 마음을 앓다가 퇴사한 ㅁ과 ㅅ, 자꾸만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는 회사를 지켜보다가 이직을 고민 중인 ㅇ, 자신의 기여도를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에 질려 일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언제 떠올려도 괴로운 일이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면 그 무게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처한 상황이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 때,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상황이나 주변 환경을 바꾸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우니, 나 하나만 그에 맞춰 바뀌면 해결될 일이 아닐까? 올 한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괜찮은 사람이긴 한 걸까? 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고, 재능의 결여를 탓하고, 더 좋은 스펙을 쌓지 못했음을 탓하고.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누가 따로 화살을 날리지 않아도 제 손으로 가슴에 화살을 꽂은 채 움츠린 어깨로 걷는다.


그 화살, 이영자의 가슴에도 몇 개쯤은 꽂혀 있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을 읽고 상황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주는 케이블채널 올리브의 토크쇼 <밥블레스유>에서, 3년 만에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는 사연을 두고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영자는 자신의 데뷔 무렵을 회상했다. “나는 (개그맨 공채) 시험을 8번 봤잖아. 그런데 8번을 다 떨어졌잖아. 8번을 합격한 적이 없잖아.” 이영자가 한국 티브이 코미디에 남긴 족적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8번의 낙방을 맛본 뒤 이영자는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간업소 무대에 올라야 했다. 성인 관객들을 겨냥해 질퍽한 농담을 던지며 야간업소 사회를 본 지 2년 만에 전유성의 추천으로 특채 합격을 한 게 그의 나이 스물넷의 일이었다. 역산해보면, 그는 채 스물둘이 되기도 전에 꿈의 문턱에서 8번이나 퇴짜를 맞았던 셈이다. “난 너무 많이 좌절했어. 케이비에스(KBS) 2차까지 됐는데 카메라 테스트에서 항상 끝난 거야. (중략) 방송국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게 합격한 기분이겠지?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게 달아날까 봐.” 괜히 기분 내며 거창하게 기념했다가 혹여 부정을 타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만두 넣은 라면을 끓여 먹은 것으로 자축을 대신했다는 그는 그날을 펑펑 울었던 날로 회고했다.


공채시험 8번 낙방 이영자

“나는 너무 많이 좌절했어”


오랜 무명생활의 설움 삭이며

김숙은 온라인게임 폐인 생활


라면수프조차 고마웠던 생활고

박나래 “굿이라도 해야만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거절과 좌절을 경험하면 누구라도 무릎이 조금은 꺾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늘도 따라서 깊어진다. 이영자와 함께 <밥블레스유>와 제이티비시(JTBC) <랜선라이프>를 진행 중인 김숙이 그랬다. 활동 24년 중 20년을 무명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과장이지만, 1995년 데뷔 이후 8년간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폐인처럼 살았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국방송 <대화의 희열> 첫 회 게스트로 나왔던 김숙은, 그 시절을 회고하던 대목에선 치밀어 오르는 감정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뚝뚝 끊긴 어순으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다 나를 괄시했어. 자르고, 무시하고…. 저는 잘렸어요, 다, 방송을. 그 프로그램에서, 저만. 다른 멤버들은 그대로 있고.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조금 떨어져서 힘들다. 그러니까 네가 나가라.’ 내가 시청률에 뭘 그렇게 큰…. 엠시가 바뀌어야지, 엠시가 재미없어서 그런 건데!” 집에 컴퓨터를 4대 설치하고 온라인 게임을 카드 돌려 막듯 몇 개씩 돌려가며 하는 것으로 울분을 삭이던 시절, 그의 삶은 내일이 없어서 흐르지도 않았다. “그때는 삶이 하루하루가 아니고 36시간 정도가 하루예요. 7시간 자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12시간 자고 일어나고, 밤에 일어나서 아침까지 쭉 (게임)하고 돌다가 오후 5시에 잠들 때도 있고. (중략)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 반이 지나가 있어요.” 그 시절의 그가,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상에 빛나는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오늘의 좌절이 깊으면 빛나는 내일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눈앞의 좌절 넘어 내일을 상상하는 힘

굿이라도 할까요. 좌절이 너무 깊으면 가끔 사람들은 허튼 희망에 매달린다. 아무리 쥐어짜도 수중에 돈이 없어 20만~30만원으로 한달을 버티던 시절의 박나래가 그랬다. 식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라면은 분말수프만 넣어 끓여 먹고 건조 야채를 모아 물에 불려 야채볶음밥을 해먹던 시절, 그는 친하게 지내던 ‘무속인 언니’의 추천으로 없는 돈을 모아 굿을 벌였다. 제일 싼 굿이 54만원인데, 그마저도 다 낼 형편이 안 돼 ‘연예인 할인’으로 반값을 내고 굿을 할 때 그는 무슨 심경이었을까? 반값이어도 27만원이면 그 시절 그의 한달 생활비에 육박했을 텐데. 2015년 에스비에스(SBS) <힐링캠프 500인>에 출연해 굿을 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박나래는 “굿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 말했다. 굿을 한다고 뭔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당장 한달 생활비를 다 투자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마음이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와중에 언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꿈에 할머니가 나왔는데 ‘나래가 잘 안될 것 같으니 돈 돌려줘라’고 했다”고 말했을 때, 박나래는 지금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조사한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지수에서 2개월 연속으로 유재석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오늘의 자신을?


모두가 다 잘될 것이니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살자는 순진해 빠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가슴에 화살을 잔뜩 꽂고 걷다 보면, 자신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눈앞의 좌절뿐이라는 착각 때문에 내일을 상상할 힘을 잃어버리기 쉽다. 여덟번 낙방했던 이영자가, 시청률을 핑계로 프로그램에서 잘리고 노골적인 따돌림을 당하던 김숙이, 한달 생활비를 다 털어서 굿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었던 시절의 박나래가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수능이 끝난 뒤 가슴에 빼곡하게 화살을 꽂은 채 교문을 나서던 수험생들을 보며 쓰기 시작했다. 깊은 새벽 말을 걸어왔던 ㅌ에게, 위로 같은 위로를 해주지 못한 ㅁ과 ㅅ, ㅇ, ㅈ에게,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이 변변찮은 글로 대신 위로를 전한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2018.12.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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