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고소합니다”… 칸 울린 소년의 외침

[컬처]by 한겨레

[리뷰] 영화 ‘가버나움’


레바논 내전·빈곤·아동학대 등

아이들 겪는 비참한 현실 담아

난민 등 비전문 배우들 생활연기

“부모를 고소합니다”… 칸 울린 소년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다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 <가버나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 먹먹함은 분노 때문이며, 연민 때문이며, 죄책감 때문이다. 레바논 여성감독 나딘 라바키의 섬세한 연출력과 폐부를 깊게 찌르는 리얼한 시나리오, 그리고 비전문 배우들이 펼치는 생생한 생활연기가 완벽하게 조화된 이 작품은 미학적 아름다움이 아닌 비극적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때로 더 중요한 영화의 역할임을 깨닫게 한다. 어떤 뉴스보다,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내전·난민·빈곤·소외·아동학대 등 우리 모두가 눈 돌려야 할 전 지구적인 문제를 직설적이고 아프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칸 국제영화제가 이 작품에 심사위원상을 안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가. 12살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누군가를 칼로 찌른 혐의로 수갑을 찬 채 법정에 선다. “짐승을 찌른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소년은 “엄마 아빠가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호소한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호기심 가득한 관객의 눈을 대신해 카메라는 자인이 그간 겪은 일들을 차분히 되짚는다.

“부모를 고소합니다”… 칸 울린 소년

자인의 일상은 여느 빈민촌 아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부모는 아이를 낳고도 출생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학교엔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눈을 뜨자마자 길거리에 나가 과일주스를 팔고, 물건 배달 등 잔심부름을 하며 푼돈을 번다. 하지만 자인에게는 배고픔이나 고단함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열한 살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다. 엄마·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동네 양아치에게 신부로 팔아넘기려 할 터다. 더러운 공중화장실에서 피 묻은 여동생의 팬티를 빨아 입히고, 자신의 셔츠를 생리대 대용으로 건네는 자인의 모습은 가슴을 시리다 못해 아리게 한다. 사하르와 도망을 치려다 부모에게 발각돼 매를 맞은 자인은 무작정 가출을 하고 젖먹이 아들 요나스를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인 라힐이 단속에 걸리게 되면서 세 사람의 삶은 갈가리 찢긴다. 여동생 사하르가 아이를 낳다 죽었다는 소식까지 접한 자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이 무참한 현실을 견디고 살아내고 생존하는 자인과 주변인들의 삶을 담담히 뒤쫓는다. 감정을 고양할 음악이나 세련된 편집 등의 극적 장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주먹만 한 감정의 꿈틀거림을 주체할 길이 없다. 카메라가 절망과 원망, 분노로 가득한 자인의 눈과 표정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송곳에 찔린 듯 가슴이 따끔거린다.

“부모를 고소합니다”… 칸 울린 소년

영화가 이토록 리얼하게 현실을 훑어낼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연기가 곧 ‘진짜 삶’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베이루트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인 자인을 캐스팅했다.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역시 실제 불법체류자이며,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 역시 거리에서 껌을 팔던 어린 소녀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연기를 넘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인 셈이다.


영화의 제목 ‘가버나움’은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는 이스라엘의 도시다. 그러나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자 예수는 가버나움이 곧 멸망하리라고 예언했다. 가버나움은 결국 기적과 멸망이 공존하는 곳을 뜻한다. 감독은 내전의 후유증과 주변국에서 밀려드는 난민들로 혼란스럽고 황폐한 베이루트의 현실에서 가버나움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터다.


하지만 자인의 결말은 멸망일 수 없다. “다시는 우리 부모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 아이를 돌보지 않는 어른들은 진절머리난다. 사는 게 똥 같다”는 그의 울부짖음을 세상이 주목했을 때, 기적이 찾아온다. 그토록 처연한 눈빛의 12살 소년에게 살며시 미소가 번지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우리가 영화에서 마주할 기적의 순간이다. 24일 개봉.


뱀발: 그리 예민하지 않은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 우리 사회를 달궜던 예멘 난민 문제나 불법체류자 문제 등을 살며시 겹쳐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순간, 12살 자인처럼 그들에게도 작은 기적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도 구원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는지도 모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2019.01.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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