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슬픈 좀비, 그들이 무슨 죄랴…‘킹덤’ 한국형 좀비물 탄생

[컬처]by 한겨레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열어보니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왕

이를 이용하는 권력자들

무능한 권력으로 괴물이 되는 민초들

한국적 미장센 살리며 섬세한 좀비 표현

헬조선의 슬픈 좀비, 그들이 무슨 죄

좀비물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서양의 좀비가 조선시대를 만나 새로운 ‘좀비물’이 탄생했다. 넷플릭스에서 25일 시즌1 6회 전체를 공개한 <킹덤>은 죽은 자가 산 자를 뜯어먹는 그냥 좀비물이 아니다. 좀비를 매개로 시대를 반영한 ‘정치사회풍자극’에 가깝다.


<킹덤>에서 좀비의 시작은 왕이다. 왕이 죽자 권력의 실세인 조학주(류승룡) 대감과 그의 딸인 중전(김혜준)이 왕을 살려낸다. 후궁의 아들 이창(주지훈)이 왕이 되는 걸 막으려면 중전이 복중태아를 출산할 때까지 왕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탐욕으로 살아난 왕은 ‘괴물’이 된다. 왕을 진료하던 의원과 함께 간 소년이 왕에게 물려 죽고, 굶주리던 의료원 병자들이 그 주검을 (사람인지 모르고) 나눠 먹은 뒤 좀비가 된다. 왕으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가 굶주린 백성들부터 고통에 빠트리는 것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왕이 모든 좀비의 근원이고, 왕 때문에 가장 밑바닥에 있는 백성들부터 고통받는다는 설정은 김은희 작가가 2011년 구상하고, 2014년 완성한 원작 만화 <신의 나라>가 나왔던 당시의 시대상과 뿌리가 닿아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내내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왕’의 모습을 비춘다. 쇠사슬에 묶여 낮에는 자고(<킹덤> 좀비 특징), 밤에는 조학주가 던져 주는 사람을 먹고 산다. 나라는 조학주가 쥐락펴락한다. 조학주가 왕의 상태에 의심을 품던 대신들에게 ‘역병’에 걸린 왕을 보여주며 “자, 이분이 이 나라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지엄한 왕이십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대신들은 왕이 괴물이 된 걸 알게 돼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자가 살아있어도 산 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나라 전체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는 굳이 조선이 아니어도, 좀비라는 특이한 존재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근현대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며 “배고픈 백성을 좀비라는 존재를 통해 정치권력의 문제로 풀어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헬조선의 슬픈 좀비, 그들이 무슨 죄

무능한 왕으로부터 고통받고, 배고픈 민초들이 좀비가 된 것. 그래서 <킹덤>에서 좀비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다른 좀비물을 볼 때와 느낌이 다르다. 잔인하지만, 슬프다.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온 민초들의 울부짖음이 오버랩된다. 배고픔에 굶주리다가 모처럼 배부른 한끼를 먹었는데 그 때문에 괴물이 되거나, 누군가 좀비에게 공격당하자 “상것들이 양반을 공격한다”고 말하는 등 대사, 장면 하나하나에도 당시 백성들이 겪은 고통이 반영돼 있다. 동래에 가장 처음 역병이 번지자 양반들은 한척밖에 남지 않은 배를 타고 도망간다. “우리도 데려가달라”는 백성의 울부짖음을 외면한다. 좀비로부터 살아남은 백성들이 한양에서 내려온 군사들한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의 메시지를 뛰어넘는다. 한 드라마 작가는 “세자 이창이 중심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최고 권력자가 제대로 되어야 나라가 돌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은 좀비의 습격에도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자기 몸을 던져 구한다. “난 절대로 이들(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난 이들을 버리고 떠난 그들과 다르다!”

헬조선의 슬픈 좀비, 그들이 무슨 죄

박상혁 <올리브> 피디는 “우리에겐 익숙한 조선시대 권력과 욕망의 서사를 담은 좀비가 190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국외 누리꾼들도 대부분 이 부분을 호평한다. “한국 왕조를 배경으로 한 좀비 시리즈가 신선하다” “한국의 계층간 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의 성공적인 결합에 놀랐다” 등의 반응이 유튜브 등에 올라온다. 강녕전에서 주검을 연못으로 옮기는 장면을 위에서 촬영해 한옥의 긴 구조를 보여주는 등 연출도 한국적인 부분을 잘 살렸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좀비를 가장 잘 표현해냈고, 빠르게 달리고 물과 불을 싫어하고 온도에 민감한 등 ‘킹덤 좀비’만의 새로운 장치를 심어둔 것도 볼거리다.


시즌1은 이야기의 도입부다. 이창의 스승인 안현대감(허준호)이나 총잡이 영신(김성규) 등이 어딘가 의문스럽고, 1회에서 조학주가 의원에게 “3년 전 그때처럼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등 무수한 ‘떡밥’들이 시즌2에서 본격적으로 풀린다. 세자의 성장이나 능동적인 여성상을 기대한 서비(배두나)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중전 등 몇몇 배우들의 연기력 부족, 좀비물 마니아들은 예측 가능한 전개 등의 아쉬움은 있지만, 역사와 메시지를 담은 제대로 된 ‘한국형 좀비물’의 탄생임은 분명하다.


<전문가 20자평>

김선영 평론가 좀비 아포칼립스의 외피를 두른 헬조선 사극의 정점

박상혁 올리브 피디 ‘좀알못’은 무서워 죽을뻔. 시즌10까지 나와라

남지은 기자 ‘좀잘알’은 2% 아쉽지만…‘한국형 좀비물’ 개척엔 박수를

김효실 기자 <킹덤>의 진짜 주인공은 이름없는 좀비들

정덕현 평론가 배고픈 좀비에 민초의 초상을 담은 김은희의 놀라움

헬조선의 슬픈 좀비, 그들이 무슨 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2019.01.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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