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보다 눈부신 60~70대, 그들의 패션

[라이프]by 한겨레

커버스토리/우아한 노년

‘남포동 꽃할배’ 등 시니어 패션 전문가들

“나이의 경계 허물고 다양한 시도 할 것” 조언

줄무늬 티셔츠, 젊게 보이는 패션 만능열쇠

화려한 원색 옷은 같은 계열 색으로 입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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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청바지와 같은 소재의 셔츠형 원피스와 주홍색 미니 크로스백, 요즘 20대에서 유행하는 ‘레이스 업 슈즈’(굽 높은 운동화). 최근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78)가 선보인 패션이다. 극 중에서 김혜자는 40여살 차이가 나는 후배 배우 한지민과 비슷한 패션을 멋스럽게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블로그 등에서 ‘김혜자 패션 따라잡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비슷한 예로 배우 윤여정(72)의 ‘에이지 리스(나이를 초월한) 룩’은 20~30세대가 호응한 대표적인 시니어 패션이다. 흰색 와이셔츠에 바지통이 좁은 연갈색 정장 바지나 어깨선이 트인 민소매 검은색 원피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시니어도 당당히 유행을 선도하는 시대다.

‘남포동 꽃할배’의 패션 조언···“백발은 패션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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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방극장뿐만 아니라 에스엔에스(SNS)에서도 시니어 패션은 다채로운 멋을 자랑한다. 독특한 신사복 패션으로 화제인 여용기(66)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5만명(3월26일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패션은 더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죠.” 지난 19일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 있는 양복점 ‘에르디토’에서 만난 여씨가 갈색 뿔테 안경을 살며시 올리며 말했다. 포마드로 백발을 단정히 빗어 넘긴 그에게 염색을 안 한 이유를 묻자 “백발은 어떤 색의 양복과 잘 어울린다. 나이 듦이 패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흰색 바탕의 푸른색 세로줄 무늬 와이셔츠에 카키색 긴 소매 재킷을 걸치고 회색 넥타이를 곱게 맨 모습이 마치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슈트를 빼입은 비밀 요원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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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색 정장에 손수건으로 포인트를 준 여용기씨. 사진 박형인(스튜디오 톰 실장)

한국의 ‘닉 우스터’(미국의 50대 후반 남성 패션 스타), ‘남포동 꽃할배’로 불리는 그는 양복점의 수석 재단사다. 시니어 패션 스타라는 명성답게 세련된 양복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그가 일하는 양복점에는 서울, 강원도 등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요즘은 20·30대 손님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여씨는 “한동안 맞춤 양복은 나이 든 사람이나 입는 옷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요즘은 20~30대도 즐겨 입는 디자인 맞춤복도 많다”며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그가 알려주는 젊게 입는 법은 시니어에게 꽤 요긴한 정보가 된다. 우선 입는 방식이 독특하다. 양복 정장의 경우 첫 단추는 채우고 두 번째 단추는 푼 채 입으면 좀 더 젊고 자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주머니 덮개가 없는 재킷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늬가 있는 옷과 민무늬의 옷을 섞어 입으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스타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민무늬 와이셔츠에는 줄무늬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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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여씨가 이날 맨 넥타이는 회색이었다. 그는 “은발 머리색과 비슷한 색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날 여씨가 갈색 안경테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갈색과 어울리는 카키색 재킷을 입었기 때문이다. 색을 맞추기 어렵다면 갈색, 검은색, 은색 테의 안경은 기본으로 갖춰 놓고 상황에 따라 착용하면 좋다. “금속 소재의 금·은색 테 안경의 경우 유광보다는 은은한 무광이 좀 더 세련돼 보인다.” 구두, 안경, 넥타이 중에 2∼3개 정도는 비슷한 색상으로 맞추면 세련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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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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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맞춤복을 항상 입고 다니긴 쉽지 않다. 여씨는 면바지에 정장용 와이셔츠를 입거나, 면 티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는 식으로 ‘섞어 입기’를 추천했다. “시니어 패션의 매력은 적당한 여유에서 나온다. 하지만 편하다고 트레이닝 복을 입으면 사람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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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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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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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시니어의 아이템. 사진 박형인(스튜디오 톰 실장)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여씨는 손수건을 꼽는다. 재킷 윗부분에 있는 주머니에 꽂으면 밋밋한 단색 양복의 숨겨진 매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는 “근사한 양복을 입어야만 신사가 아니다”라며 “언제든 손수건을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줄 수 있는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션의 완성은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옷이란 자고로 입은 사람의 자세가 발라야 멋스럽게 보인다. 양복을 입고 지하철 등에서 임산부 등에게 자리 양보를 안 하면 멋진 시니어라 할 수 없다.” 그가 건넨 패션 ‘팁’이다.

여성 시니어 패션…나이의 경계를 허물다

‘보는 맛이 있다. 알록달록 예쁜 옷만 입네!’ 배우 차화연(60)은 최근 종영한 <한국방송>(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 편〉에서 꽃무늬 원피스에 원색 코트를 입거나, 사선으로 트인 꽃무늬 긴 치마를 입는 식의 ‘화려한 레이디 룩’을 선보였다. 그때마다 20~30대가 주축인 인터넷 패션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등에서 ‘차화연 패션’에 대한 댓글들이 달렸다. 톡톡 튀는 시니어 패션을 선보인 덕분에 차화연은 데뷔 41년 만에 ‘차블리’(차화연+러블리의 줄임말)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체 그의 패션이 어떠하기에 이런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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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무늬 치마를 입은 배우 차화연. 〈한국방송〉(KBS) 제공

윤인영 스타일리스트는 “2000년대 중반 20~30대가 즐겨 입었던 화려한 ‘레이디 룩’과 유사하다. 극에서 부잣집 ‘사모님’ 역을 맡은 만큼 화려한 자태를 강조하려다 보니 꽃무늬에 선명한 원색의 옷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화사한 파스텔 계열이나 선명한 원색의 원피스·카디건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건 물론, 여기에 리본, 레이스, 프릴 장식까지 더해 과감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윤 스타일리스트는 “원색 원단에 리본까지 달면 자칫 촌스러워질 수 있는데 ‘차화연 패션’의 경우 ‘톤 온 톤 컬러 믹스’(같은 계열의 색만 섞는 것) 스타일링으로 멋을 살렸다”고 말했다. 아무리 화려한 색이라도 같은 계열의 색만 골라 섞어 입으면 튀기보다는 오히려 우아해 보인다고 한다. 이를테면 보라색 코트에 남색 치마를 입거나, 분홍색 원피스에 와인색 카디건을 입는 식이다.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학과 정보윤 교수는 “패션에서 ‘나이’라는 경계가 의미 없음을 보여주는 방송 장면을 요즘 자주 접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는 그간 시니어 패션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청재킷, 모자 달린 티, 소매 없는 니트, 긴 원피스, 줄무늬 티셔츠 등을 상황에 따라 겹쳐 입는 ‘캐주얼(무심한 스타일의 간편한) 룩’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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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매 청재킷을 입은 배우 김혜자. 〈제이티비시〉(JTBC) 제공

정 교수는 “김혜자가 꽃무늬 원피스에 빛바랜 청재킷을 걸쳐 입은 모습은 20대 젊은이의 스타일과 비슷해 신선한 충격이었다”며 “그간 20대 젊은이들이 즐겨 입은 스타일이 시니어 패션으로도 충분히 멋있게 활용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나이의 경계를 허무는 게 여성 시니어 패션의 시작”이라고 정 교수는 말한다. 20~30대처럼 입는 방법은 간단하다. 흰색 바탕에 푸른색 세로줄 무늬가 있는 면 원피스에 남색 조끼를 걸치면 활동이 편한 일상복이면서도 무심한 멋을 낸 ‘프렌치 시크 룩’을 완성할 수 있다. 노란색 꽃무늬 원피스가 있다면 같은 노란색 스웨터를 무심하게 걸쳐 입어 보자.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이지만 70대 시니어도 연출 가능한 대표적인 패션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윤 스타일리스트는 “평범함 속에 멋이 있다”며 “쇼핑 갈 필요 없이 옷장을 열어 보라”고 주문한다. 매일 다른 나를 연출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시니어 옷장에는 나를 바꿔줄 기본 아이템들로 가득하다고 그는 말한다. 특히 윤 스타일리스트는 “줄무늬 티셔츠는 젊게 옷을 입을 수 있는 만능열쇠다. 한 벌 정도는 꼭 가지고 있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흰색 바탕의 검은색 가로줄 무늬 티셔츠에는 검은색 치마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어 보자. 지루해 보이는 할머니도 ‘귀여운 할머니’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입었던 남색 카디건이 지겨워졌다면 버리기보단 줄무늬 티셔츠, 청바지와 함께 입는 것도 좋다. 요즘 말로 ‘힙’해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스카프나 가방 등 원색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줘서 색다른 느낌을 더하는 것도 방법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고정관념에 벗어난 게 요즘 시니어 패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ESC] 시니어의 필수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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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피부가 건조하고 머리카락도 푸석해졌다.” 이런 노년층의 고민을 해결해 줄 뷰티 아이템은 없을까. ‘서울패션위크’ 등에서 시니어 모델의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한 디오드뷰티살롱 서연 원장의 추천 아이템을 살펴봤다.


주름이 깊어지거나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피부의 건조함이다. 서연 원장은 “기초 단계에서 로션보다는 보습막 형성에 도움 되는 오일을 사용하는 게 좋다. 랑콤의 ‘압솔뤼 올레오 세럼’ 등 시니어용 에센스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아침·저녁뿐만 아니라 수시로 덧바르는 게 보습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조성아뷰티의 ‘에이치 세럼 스틱’ 등 휴대가 간편한 스틱 타입의 보습제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외선은 물론, 초미세먼지를 차단하는 제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제품 성분 중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누리집에서 고시한 알레르기 주의 성분 0개인 제품을 사용하면 자극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노인은 체향이 좋지 않다는 편견 때문에 멋쟁이 시니어들은 샴푸를 고를 때 향을 꼼꼼히 따진다고 한다. 서연 원장은 “시니어들이 애용하는 샴푸는 따로 있다. 라우쉬의 ‘윌로우바크 트리트먼트 샴푸’ 등은 허브 향이 진해 두피 냄새 억제에 좋다. 반면 꽃 향은 체향과 섞일 수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카락의 볼륨을 살릴 수 있는 샴푸도 시니어들에게 인기다. “‘모로칸 오일 샴푸’는 오일 성분이 있어 푸석한 모발의 보습과 두피 진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20분 이상 샤워할 경우 피부 표면이 손상돼 건조해질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서연 원장은 “샤워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되 원더바스의 ‘살롱 드 스파 바디워시 앤 트리트먼트’ 등 온천수로 만든 보디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꽉 끼는 옷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시니어들은 편안함을 내세운 기능성 속옷을 택하는 게 낫다고 한다. 윤인영 스타일리스트는 “와이어 없이 가슴을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잡아주는 브래지어도 착용감이 좋아 여성 시니어들에게 인기다. 불쾌한 냄새를 억제하는 항균력이 있는 기능성 속옷도 시니어들의 추천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나이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100세 시대’를 맞아 나이와 관계없이 근사하게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늘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패션 분야에 도전한 60~70대 시니어 모델들이 대표적이다. “가슴 뛰는 일을 좇는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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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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