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대사·키스신 하나 없이 한국영화 감성 멜로의 중심에

[컬처]by 한겨레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⑤8월의 크리스마스


감독 허진호(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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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최고조에 이른 8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길 기도하는 크리스마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8월’과 ‘크리스마스’가 만나 촉촉한 감성의 멜로 한편을 빚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당대 최고의 스타 한석규와 심은하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영화사 최고의 멜로 감독’ 허진호의 데뷔작이다. 아버지를 모시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과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생기발랄한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의 풋풋하고 가슴 아릿한 사랑을 빼어난 영상과 절제의 미학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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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눈을 간지럽히는 따스한 햇살이 창으로 스미고, 남자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다. 이불 속에 한참을 더 웅크린 이 남자가 맞이한 일상은 참으로 평범하지만 특별할 게다. 시한부 인생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새롭고 소중하겠는가. 첫 장면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못내 담담하다. 그에게 다가온 사랑도 그러하다. 느리고 더디게 진행되는 이 사랑엔 그러나 달콤하게 속삭이는 밀어도, 키스신도 없다. 아니, 막 시작하려는 단계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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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애달프고 쓸쓸한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관객을 울리려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이라는 숙명적 굴레엔 그리 많은 설명도,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정원이 자신의 영정으로 쓸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는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의 백미이자 20세기 끄트머리에 탄생한 이 명작의 품격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작은 조각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고 김광석의 영정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허 감독의 고백이 떠오르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진정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초원사진관’은 전북 군산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가 됐다. ‘초원사진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먼 훗날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되새기게 될까? 그 무엇이든 그 안에는 1998년, 그 시대의 감수성이 펄떡이며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정지욱/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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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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