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같던 자스민 공주, 당찬 여성으로 확 달라졌네

[컬처]by 한겨레

<알라딘>


1992년 판의 리메이크 실사영화

최근 정치·사회적 분위기 반영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개성 눈길

자스민, 자신의 정치적 권리 요구

악역 자파는 ‘제국의 황제’ 야심

램프요정 지니는 랩의 향취 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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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인 2019년 판 실사영화 <알라딘>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달라진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개봉이 1992년이니 이번 실사영화판의 리메이크는 무려 27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무릇 걸작은 나이를 먹지 않는 법. 1992년 판과 2019년 판의 차이를 비교하는 감별은, 따라서, 대략 타당하다. 27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일단 2019년의 <알라딘>은 1992년 <알라딘>이 그랬듯 아라비안나이트에 모티브를 두고 있는 기획만이 지니는 매력에 충실하게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이런 원칙은 시각적인 면에서 가장 뚜렷하다. 사막과 야자수, 미로 같은 골목과 어지러운 시장판, 그리고 아랍풍의 왕궁. 1992년 판에 비해 왕궁의 규모는 꽤 축소됐지만, 이 작아진 공간을 아랍 미술 특유의 화려함과 오밀조밀함으로 대체한 프로덕션 디자인은 시각적 테마파크로서의 기능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액션 기능성도 애니메이션에 뒤지지 않는다. 시장 골목을 누비며 알라딘(메나 마수드)이 벌이는 도입부의 도주 액션은 거의 아랍식 테마파크에 온 제이슨 본…이라면 좀 너무 나갔나. 아무튼 이 액션 시퀀스는 가이 리치 감독의 최대 장기 중 하나인 아기자기한 다이내믹함을 십분 보여준다.(가이 리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극히 드문 대목 중 하나다.) 여기에 중반부에 등장하는 램프동굴 붕괴 장면, 그리고 후반부의 하늘을 나는 카펫 공중추격 장면은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액션 함유량을 확보해준다.

로빈 윌리엄스―윌 스미스

시각적으로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은 의상이다. 특히 이 영화 의상의 중추라 할 자스민(나오미 스콧)의 의상들은 1992년 판의 단순한 우아함을 포기하고 지나치게 발리우드스러운 알록달록함으로 흐른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러한 과잉 화려함은 자스민 공주가 알라딘을 처음 대면하는 장면에서 입은 핑크 드레스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덕분에 우리는 평소에 그다지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하던 의상의 중요성을 본의 아니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각적인 부분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가장 집중시키는 대목은 윌 스미스가 연기하는 ‘지니’ 캐릭터일 것이다.


1992년 판 지니의 핵심, 아니, 1992년 판 그 자체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전설적인 로빈 윌리엄스의 애드리브와 목소리 연기였다. 더불어 그를 위한 멍석, 즉 거의 자유도 무한대인 변신 마법사라는 특성을 극대화한 각종 조크, 몸개그들 역시 그렇다. 그중 특히 ‘옛날 옛적 아라비아 어딘가’라는 배경에 마이크, 슬롯머신, 네온사인, 잠수함 등등의 요즘 물건,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티브이 퀴즈쇼, 항공승무원의 기내 멘트, 패션디자이너 등의 요즘 문화 등을 아무 위화감 없이 끌고 들어와 쏟아내던 조크의 양과 밀도는 가히 1일 권장량의 몇십배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2019년 라이브액션 판 지니에서 그러한 속도와 밀도가 그대로 재현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셀애니메이션과 ‘실사+컴퓨터그래픽(3D 애니메이션)’ 사이에는 시간과 비용의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관객들이 소화해야 할 시각적인 정보량의 차이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특수효과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방식 같은 기술적인 문제도 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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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2019년 판 지니의 시각적인 밀도는 낮지 않다. 특히 1992년 판 지니의 진면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줬던, 노래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의 장면, 즉 지니의 첫 등장 장면에서도 2019년 판 지니는 크게 밀리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디즈니가 장구한 세월 동안(1982년에 공개된 ‘최초의 컴퓨터그래픽 장편 상업영화’인 <트론>을 그 출발점으로 잡는다면 거의 40년 동안) 추진해왔던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애니메이션화(애니메이션의 영화화가 아니다)가 이제 완전한 정착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관건은 그러한 기술적인 밀도보다는 2019년 판 지니만의 개성, 또는 윌 스미스 판 지니의 고유한 개성에 있을 것이다.


2019년 판 지니는, 애드리브와 성대모사에 능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던 로빈 윌리엄스의 개성을 그대로 살린 1992년 판처럼, 래퍼이기도 한 윌 스미스(맞다. 1992년 당시 윌 스미스는 ‘프레시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었다)의 개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덕분에 1992년 판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직접 불렀던 ‘프렌드 라이크 미’나 ‘프린스 알리’(Prince Ali) 같은 곡들은 랩의 향취가 적잖이 가미된 윌 스미스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되어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맞다. 이번에는 지니도 소정의 로맨스를 향유하도록 배려되어 있다. 알라딘-자스민만큼의 농도와 규모는 물론 아니고, 말하자면 <슈렉>에서 동키가 향유하는 정도의 로맨스이겠다만, 아무튼 이러한 2019년 판의 설정은 그동안 지니의 독수공방을 생각하면 사뭇 훈훈한 것이었다.


2019년 판 지니의 새로운 면모는 대략 이 정도다. 오히려 훨씬 큰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자스민 공주인데, 올바른 신랑감을 스스로 감별하고 득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 미션으로 삼았던 1992년 판 자스민과 비교했을 때, 2019년 판 자스민은 현재의 변화 분위기를 적극 반영하여 거의 도발적이라 할 만큼 강력하게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다. “‘화초처럼 살아라’같이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는 규칙”에 맞서려는 자스민의 의지는 끝까지 일관되게 묘사되는데, 그것은 자스민의 주제곡이자 그녀의 변화의 상징이라 할 새 사운드트랙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르는,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를 다분히 연상시키는 그 대목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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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강해진 정치적 색깔

자스민 캐릭터의 이러한 약진을 비롯해 2019년 판 <알라딘>에는 최근 디즈니 계열 영화들(마블 영화와 스타워즈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각종 정치적 입장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악의 축인 자파(마르완 켄자리)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1992년 버전에서 기껏 왕위와 자스민의 사랑 정도만을 노렸던 자파는 이제 ‘허약해 빠진 동맹국들’ ‘주변국의 위협’ ‘그에 맞선 전쟁’ ‘나의 제국’ 등등의 거창한 단어들을 자신의 키워드로 끌어들이며 제국의 황제로 거듭나려는 야심을 불사른다. 덕분에 2019년의 자파는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세력을 강력히 연상시키고 있다.


동시에 1992년 판에서 그저 호감-비호감의 충돌 정도였던 자스민과 자파의 대립은, 2019년 판에서는 훨씬 더 짙은 정치색을 띠며 이 대립은 결국 ‘(절차적으로 정당한) 법이냐 (내용적으로 정당한) 정의냐’라는, 현재의 미국뿐 아니라 많은 사회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에 대해 영화는 그 나름의 답을 던지고 있는데, 답을 던지는 인물이 영화 속 왕국 아그라바의 군 지휘관인 하킴(누만 아카르)이라는 점 또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더구나 <알라딘>의 배경은 어디까지나 아랍, 그러니까 영화의 원산지인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지역임에야.


얘기가 좀 곁가지로 흘렀는데, 아무튼 자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 그리고 자파 역의 마르완 켄자리 두 배우의 캐스팅과 연기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이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따른 위화감, 그리고 1992년 판에 비해 사뭇 짙어진 ‘정치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들에 실물감을 입히는 데 성공하고 있다.


후반부 나오미 스콧이 ‘스피치리스’를 부르며 보여주는 폭발력도 상당하거니와, ‘징그럽고 능글맞은 늙은이’ 풍이었던 1992년 판의 자파를 큰 위화감 없이 흙수저 출신의 젊고 야심찬 악의 축으로 변조시키고 있는 마르완 켄자리의 연기도 역시 라이브액션 판 <알라딘>만이 보여주는 강점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알라딘 역의 메나 마수드가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이른바 ‘화이트 워싱’이라고 불리는 백인 배우 억지 캐스팅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를 이 정도 큰 규모의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했다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무적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걱정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자스민 캐릭터의 변화, 그리고 그녀가 자파와 세우는 대립각이 혹시라도 <캡틴 마블> 개봉 당시 몇몇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졌던 별점 폭탄 배틀을 재현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 말이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모두가 위기에 빠진 마지막 결정적 순간, 모두를 구한 것은 자스민이 아닌 알라딘이었으니 말이다. 1992년에 이어 2019년에도 역시.


한동원 영화평론가

2019.05.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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