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금 vs 위험자산 동…원자재 ‘왕좌의 게임’ 승자는

[비즈]by 한겨레

금·은·동값과 경기의 함수

주식·채권 동반강세 기현상

원자재 시장도 이례적 동반상승

글로벌 리스크 고조 금값 껑충

반면 산업금속 구리도 3.1% 올라

경기 선행지표인 동값 오름세이나

각국 통화 완화로 유동성 효과 커

미 ‘금리인하’ 예고는 경기둔화 신호

리스크 커질수록 금값 더 ‘우위에’

한겨레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채권)과 위험자산(주식)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성격이 상이한 두 자산의 가격은 대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관심이 모아진다.


30일 세계 주요 증권거래소의 지수를 종합하면,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6월 주가는 평균 6% 가까이 올랐다. 미국 증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지난 20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강세장을 이어가고 있다. 안전자산인 선진국의 국채 가격도 상승(채권금리 하락)했다. 미 국채 가격은 한 달 새 1.8% 올랐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를 깨고 내려가기 직전이며 독일과 일본의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로 돌아선 지 오래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동반 강세 현상은 원자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안전자산인 금값은 지난 21일 약 6년 만에 트로이온스당 1400달러를 돌파했다. 은 가격도 한 달 새 5% 가까이 올랐다. 위험자산인 원유 가격은 서부텍사스산(WTI) 기준으로 6월에만 9% 넘게 올랐다. 산업금속인 구리(동) 가격의 최근 한 달 상승률은 3% 수준이다.

불안의 벽을 타고 오르는 금

원자재 가격이 이처럼 두루 상승한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최근 금리 인하 시사로 그동안 강세를 유지해 온 달러의 가치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금은 금융위기나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질 때 빛을 발한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세계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로 수요가 몰린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에 따른 중동 정세의 불안도 금값 상승을 부추겼다.


역사적으로 화폐로 사용된 경험이 있는 금과 은은 귀금속으로 함께 분류되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귀금속시장 조사업체(GFMS)의 자료를 보면, 금은 목걸이나 반지 등 장식용 수요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금괴와 금화 등 투자용도 24%에 이르지만 산업용 수요는 10%에 못 미친다. 반면 은은 산업용 수요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장식용과 투자용은 각각 20% 안팎이다. 금과 구리의 중간지대에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성격을 아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리스크가 고조되면 금값 상승률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반대로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산업 수요가 늘어 금값보다 상대적으로 강세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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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의 거울’ 구리 아직은 겨울

전기·전자,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 사용되는 동은 ‘구리 박사’(Dr. Copper)로 불릴 정도로 경기의 선행지표 구실을 한다. 건설과 인프라 확충에 많이 사용돼 선진국보다 신흥국의 수요가 많다. 특히 세계 구리의 절반을 소비하는 중국에선 ‘붉은 금’으로 통한다. 따라서 구리 가격이 오르면 중국의 제조업이 좋아진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제조업 회복은 우리 경제에도 활력을 준다.


구릿값은 지난 2011년 사상 최고치인 톤당 1만달러를 찍은 뒤 끝 모를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가 최근 중국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다만, 최대 생산국인 칠레의 광산 파업에 따른 공급 차질도 함께 작용했다.


반면 원유는 차량 보급률이 높은 미국 등 선진국의 수요가 여전히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소비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된다. 따라서 원유 가격은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경기와 연관성이 있지만 선진국의 수요가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상관관계가 예전처럼 밀접하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 가능성과 중동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급등했다. 하지만 무역분쟁 장기화와 세계 교역량 감소로 원유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 불안에 의한 유가 상승은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부르게 된다. 따라서 원유와 금보다는 은, 은보다는 동의 가격이 오를 때 신흥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기에 대한 전망이 밝아진다.

세계 경기는 안전자산의 손 들어줘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동반상승 배경에는 중앙은행들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투자 자금이 상반되는 성격의 자산시장을 넘나들며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의 급반등도 무역분쟁으로 막혀있던 대기 자금이 유입된 결과로 풀이된다.


안전-위험자산이 길게 동행할 수는 없다. 금리를 내린다는 건 경기가 하강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이 1.9%(전기 대비 연이율)로 1분기(3.1%)보다 큰 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10년 만의 최저치로 전 분기에 기록했던 6.4%(전년 동기 대비)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채권이나 금 같은 안전자산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껑충 뛴 금값, ‘2차 랠리’ 예약

금값 상승세 지속될까

미 금리 인하 땐 물가상승 요인

화폐가치 떨어지면 금 수요 늘어


달러 강세가 주춤하면서 트로이온스당 1400달러를 돌파한 금값의 추가 상승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질금리 하락으로 금값이 올해 안에 1500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달러가 약세일 때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은 결제통화가 달러이기 때문이다. 값을 매기는 눈금인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유로와 엔의 가치가 평가절상돼 달러로 표시된 원자재 가격이 싸 보이므로 수요가 증가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달러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대체화폐 성격이 강한 금을 사기 때문에 금값은 양쪽에서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금값의 상승세 지속 여부는 물가와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의 움직임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은 실물자산이어서 물가상승으로 인한 명목화폐의 가치 하락을 어느 정도 보전해준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금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에 못미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향후 금리 인하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저물가가 지속된 탓이 크다. 만약 금리를 내려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면 금값에는 ‘금상첨화’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도 금값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투자상품으로써 금은 채권이나 주식과는 달리 이자나 배당이 나오지 않는 약점이 있다. 물가가 올라 실질이자율이 떨어지면 금을 보유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낮아진다. 1970년대 미국의 명목금리는 두 자릿수로 높았지만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실질금리가 낮아져 금값이 오름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물가가 오르지 않더라도 명목금리가 추가로 낮아지면 금값이 2차 랠리를 펼칠 여건은 조성된다. 미 연준이 연말께 한 차례 더 금리를 인하하면 미 국채 금리(10년물)가 물가 상승률을 밑돌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권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미국의 실질금리는 0.2%대로 내려온 상황이다. 다만, 미-중 무역분쟁이 누그러지거나 달러가치가 반등할 경우 금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2019.07.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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