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익는 소리···몸이 건강해지는 소리

[푸드]by 한겨레

사찰음식 대가 계호스님이 알려주는 건강식

참죽나물전, 부각, 개두릅무침, 민들레겉절이 등

“단순한 조리법이 중요”...“우리 삶이 복잡해지지 않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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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호스님이 부친 참죽나물전. 박미향 기자

나는 이제 겨우 한 걸음 뗐는데 휙 누군가 뛰어서 앞서간다면 불안이 엄습한다.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명징한 특징은 불안이다. 최근 서점가에 명상이나 마음의 문제를 다룬 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 한 모퉁이에 자리한 사찰 진관사는 서울 시민의 얽히고 설친 어두운 마음의 실타래를 풀기에 충분한 곳이다. 명상센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평화롭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찾는 이가 많은 이유다.

 

진관사는 세계적인 명소이기도 하다. 사찰음식 때문이다. 주지인 계호스님의 손맛은 몇 년 전 방한 한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 버락 오바마 재임 당시 백악관 전담 주방장인 샘 카스, 스타 요리사 에릭 리퍼트 등에게 감동을 줬다. 하지만 계호스님은 좀처럼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수줍은 그의 철학이다. 지난달 운 좋게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볼 기회를 잡았다. 그는 외국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요청으로 4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조리법이 간단해야 우리 삶도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계호스님은 단출한 생활에서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곧 자신의 몸이자 인격”이라고 말하는 그는 양념도 되도록 적게 넣는, 몇 단계 거치지 않는 간단한 조리법이

 

일흔을 앞둔 그의 얼굴은 소녀처럼 해맑다.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평범하지만, 울림은 크다. 개두릅(음나무 가지에 돋은 새순), 참죽나물(가죽나물), 민들레 등이 그의 손에 닿아 우아한 요정으로 변신한다. 개두릅무침에 들어간 양념은 고작 3가지. 참기름, 간장, 깨소금. 잘 씻은 개두릅을 살짝 데친 뒤 이 양념들을 섞어 조물조물 무치면 완성이다. 이 정도 실력으로 대가란 칭호를 받는다고? “드세요, 드셔 보세요.” 스님은 불자들에게 무침을 건넨다. 참새 새끼 챙기는 어미 새가 따로 없다. 불자 박희정씨가 눈을 윙크하면서 웃는다. “맛있어요! 어떻게 하신 거죠?” 스님이 말하는 비법은 법문이다. “더 맛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양념을 더 넣는데, 최소화하는 게 좋아요.” 더하기 요리법이 아니라 뺄셈 조리법이다. 스님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조리대에 뿌리면서 한 가지 비법을 알려줬다. “무칠 때 참기름은 제일 먼저 뿌리세요. 조림이나 장아찌 만들 때는 가장 마지막에 넣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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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즙을 양념으로 쓴 민들레겉절이.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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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두릅무침. 박미향 기자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품의 음식이 완성됐다. “이제 민들레겉절이 만들 겁니다.” 민들레는 염증을 제거해주고 기를 모아주는 나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먹는 부위는 잎. 스님의 손놀림이 바쁘다. 하지만 경박하지 않다. 절에서 오랫동안 숙성한 간장 등 갖은양념을 신선한 민들레 잎에 뿌려 무친다. 한 불자가 맛을 보고 경외감 충만한 눈빛으로 말했다. “설탕, 넣으셨나요? 달고 맛있어요.” 불자의 알은체에 스님이 답을 한다. “설탕이라니요, 전 설탕을 안 씁니다. 이 단맛은 배를 갈아서 생긴 즙에서 나오는 겁니다. 신선한 배가 주는 단맛은 참 맛있어요.” 한 번 맛보면 좀처럼 잊기 어려운 계호스님의 민들레 겉절이 맛의 비밀은 배즙이었다.

 

스님들이 즐겨 찾는 식재료엔 참죽나물이 있다. 아무렇게 자라 밟히기 일쑤였던, 천대받던 참죽나물을 예부터 스님들은 자주 먹었다. 초라한 먹거리는 수행자의 삶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채식과 사찰음식이 뜨다 보니 스님들이 즐겼다는 점 때문에 어느 틈에 인기스타가 됐다. 사찰에서는 3~4월 봄철 참죽나물을 한가득 채취해 찹쌀풀 등을 발라 저장했다가 1년 내내 부각을 만들어 먹는다.

 

“자, 볕이 좋네요! 나가 볼까요?” 계호스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독대 앞마당에 소녀 같은 스님 10여명이 모였다. 앳된 얼굴은 천진난만하다. 비구니 사찰인 진관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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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호스님(사진 왼쪽)이 진관사 스님들과 참죽나물에 풀칠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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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한 스님이 찹쌀과 맵쌀을 섞은 반죽에 참죽나물을 넣어 조리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지름이 1.5m 정도 되는 바구니엔 참죽나물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찹쌀과 멥쌀을 섞어 만든 풀이 시커먼 참죽나물 위로 달려간다. 풀을 입은 참죽나물은 금세 밝은 갈색으로 변한다. “햇빛이 강할 때 풀 바른 참죽나물을 밖에서 말리고, 해가 지면 온돌방에 넣어 마저 말립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님들은 1년 내내 먹을 끼니 한 가지를 장만하는 것이다.

 

참죽나물전도 스님들이 좋아하는 심심한 음식이다. 이날 계호스님은 참죽나물전도 선보였다. 잘 다듬은 참죽나물, 밀가루, 다시마 등으로 우린 채수가 식탁에 준비됐다. 납작한 무쇠 팬에 밀가루와 흥겹게 엉켜 한몸이 된 참죽나물 반죽이 올라갔다. 일반인들이 부치는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찌직! 팬에서 튀어 오르는 전 익는 소리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그것과 같다. 그런데 요상하다. 스님은 이상한 연장을 들고 있었다. 작은 망치 같은 모양새인데,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언뜻 보면 솜뭉치다. 스님은 그것을 기름통에서 푹 담갔다가 팬을 문지르는 데 사용했다. 그것이 닿을수록 팬에 기름이 사르륵 흘렀다. 그 횟수만큼 참죽나물전은 익어갔다. “스님, 도대체 이건 뭔가요?” 불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 기름 손, 몰라요?” 스님은 전을 부칠 때 무부터 깎는다. 무를 손잡이가 짧은 망치 모양으로 만든다. 그것의 이름은 ‘무 기름 손’. 이것에 기름을 묻혀 전을 지지면 더 맛있다는 거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 배운 겁니다.”

 

계호스님은 강원도 묵호가 고향이다. 2남 2녀 중 셋째였던 스님은 부유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는 절이 싫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일 때 우연히 탄허스님 법문을 듣고 감동해 1968년께 진관사로 출가했다. 그의 나이 18살 때다. 당시 주지였던 진관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후 운문사, 보광사 등에서 주지로 활동했던 그는 2006년 제2의 고향, 진관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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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호스님. 박미향 기자

그의 손맛은 집안 내력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메밀전병을 지질 때 보는 것만도 좋았지요. 따라서 만들면 그게 그렇게 즐거웠어요.”

 

무엇을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은 수행자에겐 금지된 일이다.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 같은 이들이 수행자다. 한 그릇의 음식도 집착하면 안 된다. 하지만 짓궂은 생각이 밀려든다. 수행자인 계호스님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까? 솔바람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스님이 한마디 했다. “승소가 맛있긴 하죠!” 승소는 ‘스님을 미소 짓게 한다’는 뜻이 담긴 국수를 말한다. 채수, 면 몇 가락이면 완성되는 간단한 음식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맛있다.

[ESC] 속 편한 건강식…여기랍니다!

 

예전보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먹을 것이 풍족해진 세상이지만, 그만큼 제대로 된 것을 골라내는 일은 힘들어졌다. 언제부터인가 고객들은 음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식당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생산물의 출처가 뚜렷하고 먹은 뒤 속이 편한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런 종류의 음식에 채식이 포함될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은 흔히 채식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맛이 없고 흥겨운 외식 분위기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때론 종교적인 신념에 치우친 스타일로 비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재료 본연의 탐구가 중심이 되면서 한국의 채식에 외국 메뉴가 많이 녹아들었다. 이런 이유로 일반 레스토랑에도 채식 메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마음도 위장도 편한 건강 채식 맛집 몇 곳을 추천한다.

 

  1. 류근모와 열 명의 농부
  2. 충주의 장안농장은 여러 가지 놀라운 얘깃거리를 만든 채소농장으로 유명하다. 1996년에 귀농한 류근모 대표는 상추라는 평범한 식재료 아이템으로 인터넷판매를 시도했고, 유기농 채소농장들을 연계한 대규모 쌈 채소 유통의 혁신을 일으켰다. 2014년에는 농사지은 쌈 채소가 주메뉴인 뷔페식당을 오픈했다. 식당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쌈 채소 종류만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고기 없는 식단이네’라며 실망하는 사람들도 먹다 보면 다양한 채소의 아삭거리는 식감과 오분도미의 씹는 맛, 그리고 수제 두부의 고소함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객들이 원하면 농장을 견학할 수 있다. 넓은 우리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흑돼지와 천연 퇴비를 이용한 유기생태순환농법을 구경할 수 있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 장고개2길 62-46/ 043-848-6262/1인분 기준 평일 런치&디너 1만4900원, 주말&공휴일 1만5900원)

     

  3. 일상
  4. 엄마가 해주신 밥보다 더 집밥 같은 ‘일상 밥’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일상’에서 밥상을 받아보면 어설픈 집밥에서는 접할 수 없는 정성과 균형을 느끼게 된다. 날마다 바뀌는 별미밥과 국, 여섯 개의 반찬 종지들과 부침개와 후식, 숭늉까지 세팅된 트레이가 1인 상이다. 달걀 조림이나 어묵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리 얘기하면 바꿔준다. 매일 정해진 양만 판매하기에 늦은 시간에 이용하려면 미리 전화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외식보다 집밥이 반드시 건강하다’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식사한다면 본인의 지론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서울 서초구 마방로6길 7-27 1층/070-4130-1313/평일 점심 8000원, 1인분 코스 차림 2만5000원. 사전 예약)

     

  5. 채근담
  6. 한식코스를 고기 음식 없이 차리기가 쉽지 않은데, 채식 한정식으로 묵묵히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킨 곳이다. 생선, 젓갈 등을 사용하지 않고 무, 양파, 과일로 맛을 낸 보쌈김치, 연근, 버섯으로 정갈하게 나오는 전류, 우엉 잡채, 토마토 청국장, 버섯 들깨탕 등 인기 메뉴가 돋보인다. 쾌적한 공간이라 귀한 손님을 모시고 가기에 손색이 없다. 채식 메뉴 이외에 고기요리가 들어간 일반 한정식도 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152 강남파이낸스센터 B1/02-569-7165/ 1인분 채식런치 4만2500원, 채식디너 6만7500원)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2019.07.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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