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예능·드라마·패션, 거침없는 드랙 문화의 전진

[컬처]by 한겨레

커버스토리/드랙



아직 낯선 문화 드랙


하지만 최근 문화 전반에 부각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강세


구찌·컨버스 등 패션계 더 적극적


밀레니얼 세대 감성에 닿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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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드래그) 문화. 낯선 문화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드랙 문화가 대중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성 소수자 문화로 태동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중반이니, 채 30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랙 문화를 접할 기회가 크게 늘었다. 드랙 문화를 담은 영상 콘텐츠부터 드랙 문화의 일부 요소를 활용하는 패션 브랜드까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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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드랙 문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정의가 있다. 드랙 아티스트 리들은 “드랙은 본인의 생물학적 성별과 상관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젠더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드랙 문화는 ‘정상 사회’에 속하지 못한 성 소수자(퀴어)들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표출하는 수단과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드랙 아티스트 뽀뽀는 “드랙은 젠더 놀이다. 그 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재미와 연대를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드랙 문화”라고 설명한다. 각자의 정의 그리고 그 차이가 보여주는 것은 드랙 문화가 한곳에 머물러있지 않은, 유동적이고 생명력이 강한 문화라는 점이다. 꿈틀대는 드랙 문화는 빠르고 깊게 문화 전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대중화한 드랙 문화 관련 콘텐츠로는 2009년 처음 시작해 올해 11번째 시즌까지 방영하고 있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꼽을 수 있다. 드랙 퀸들의 경쟁을 주제로 한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시즌 8의 3위에 한국계 미국인 드랙 아티스트 ‘김치’가 선정돼 한국 팬들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았다. 다만, 출전자를 ‘생물학적 남성’으로 한정한 점, 여성 혐오에 가까운 경연 주제의 선정 등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팬인 직장인 김소원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드랙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됐고, 시즌 10까지 2번은 넘게 봤을 정도로 팬이 됐다. 그러나 드랙 문화에 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마냥 마음 편하게 즐기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미국 티브이(TV) 채널 에프엑스(FX)는 지난해 198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드랙과 볼룸, 하우스 문화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포즈(Pose)>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 드랙 문화는 성 소수자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더불어 ‘볼룸(Ball room) 문화’, ‘하우스(House) 문화’도 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드랙 아티스트 포샤는 “볼룸은 제시된 카테고리에 맞춰 의상과 춤, 외모 등을 뽐내고 승자를 가리는 경연으로 1970년대 들어서 미국 내 다양한 인종의 성 소수자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하우스’는 본래 속했던 가족으로부터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이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대안 가족을 뜻한다. 포즈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드랙, 하우스, 볼룸 등 성 소수자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꼭 맞춤일 뿐만 아니라, 재미와 감동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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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들은 드랙 문화의 요소를 차용하거나 활용하는 데 더욱 거침이 없다. 그들의 핵심 소비자인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사와 특징을 반영해서일까? 대표적인 브랜드는 ‘구찌’(구치)다. 고급 브랜드 구찌는 지난 2월21일 이탈리아 밀라노 구찌 허브(브랜드 복합공간)에서 2019년 가을·겨울 콜렉션을 선보였는데, 이 콜렉션을 관통하는 주제는 ‘페르소나’(분신)였다. 이 콜렉션 초대장에 남녀의 양성성을 상징하는 그리스신화 속의 신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표현한 가면을 함께 담아 보낸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가면을 쓰고 벗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는 인간의 양면성이 이번 패션쇼의 주제”임을 밝혔다. 런웨이에 선 모델들은 그 몸짓에 과장은 없으나, 그 옷과 장식, 가면들은 기괴하고 과장된, 그래서 낯선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드랙 아티스트의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콜렉션에서는 여성 모델이라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지 않았고, 남성 모델이라고 남성스러운 옷을 입지 않았다. 모델 성별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옷들을 보고 있으면, 지난해 12월 구찌가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가 Z(제트)세대 분석 집단인 ‘이레귤러 랩스’와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 <이레귤러 리포트 2>의 내용이 떠오른다. 이 보고서는 Z세대를 ‘규정되지 않는’, ‘유동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규정의 근거는 ‘젠더(성별)에 관한 태도’를 설문 조사한 결과다. 2013명의 Z세대(15살~24살)를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면, 설문 대상자의 25%가량이 ‘평생 성별 정체성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응답한 사람 가운데 45%는 ‘성별 정체성이 2~3번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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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적극적으로 드랙 문화를 접목하는 패션 브랜드도 있다. 드랙 아티스트와 패션·뷰티 브랜드의 협업은 국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뤄졌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드물다. 신발 브랜드 ‘컨버스’의 캠페인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컨버스는 최근 국내 유명 드랙 아티스트와 협업해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2007년부터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나나 영롱킴’은 인플루언서(소셜 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로 꼽을 만하다. 컨버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를 담은 슬로건 ‘올 더 스토리즈 아 트루(All The Stories Are True·모든 이야기는 진실이야)’를 내세우며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에 나나 영롱킴이 혁오 밴드의 오혁, 레드벨벳의 슬기와 함께 모델로 등장했다.




[ESC] 수염 단 여왕이 있다고? 드랙 문화 Q&A


Q. 드랙(Drag·드래그)은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가?


A. 19세기 후반부터 쓰였다는 ‘드랙’이라는 말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먼저 여자아이처럼 입기(dressed as girl)의 약자라는 설. 여성이 배우로 등장하지 못하던 시절 남성이 여장하고 그 배역을 하는데, 이 배역을 드랙이라고 표기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는 남성 배우가 여장을 위해 긴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을 때 그 옷자락이 끌리는(drag) 것을 표현한 데서 나왔다는 설이다.


Q. 드랙 아티스트 중에는 드랙 퀸만 있나?


A. 드랙 문화가 ‘드랙 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그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으로 여겨지는 외모와 몸짓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드랙 킹’도 있다. 또, 특정 성별로 구분할 수 없는 넌바이너리 드랙 아티스트도 있다.


Q. 드랙 문화는 ‘여성 혐오’에 가깝나?


A. 드랙 문화 중 일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여성스럽다 여겨지는 요소들의 표현 또는 그 꾸밈 행위 자체가 ‘여성 혐오적이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드랙의 표현은 ‘여성’이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흉내 냄’이고, 이를 통해 사회 규범 속 ‘여성성’이라는 것이 허구적인 사실을 보여준다는 반박도 있다. 나아가, 일부 페미니스트 드랙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드랙의 표현이 ‘성별 이분법과 고정관념’을 부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철학자이자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그의 책 <젠더 트러블>에서 “드랙은 젠더를 모방하면서 은연중에 젠더 자체의 우연성뿐 아니라 모방적인 구조도 드러낸다”고 밝힌 바 있다. 드랙 퀸의 연기 속 ‘여성스러움’은 젠더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보기라는 점을 그는 같은 책 개정판 서문에 밝히고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드랙 아티스트인 썬더 럭키참은 “기원이나 표현 방식에서 여성 혐오가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고, 드랙 퀸 중심의 문화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에 여성 혐오에 가까운 맥락이 있다고 그것이 가진 가능성까지 전부 배제하고 금기시할 수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만들어가고 즐기는 드랙 문화가 기존의 것과 구분되는 지점은 드랙을 ‘성별 이분법의 경계를 흐리고 교란하는 정치적 도구로 삼는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Q. 드랙에 정해진 규칙은 있나?


A. ‘드랙은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성 소수자 문화로 발달해 왔으나, 성 소수자만 드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명문화된 규칙은 없을뿐더러, 규범처럼 느껴지는 표현 양식에 제한이 없고, 자유롭다. 예를 들면, 드랙 퀸은 완벽하게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턱수염을 기르고, 그 수염까지 드랙 메이크업의 일부로 활용하는 ‘비어드(턱수염) 퀸’도 있다. 꼭 사람의 외양을 갖출 필요도 없으며, 상상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초현실적 존재 역시 표현할 수 있다.


이정연 기자






드랙(Drag) 드래그.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드랙 문화는 공연 문화, 성 소수자 문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남성 동성애자가 의상과 화장을 통해 표현한 여성을 ‘드랙 퀸’이라 한다. ‘드랙 퀸’이 등장하는 영화와 뮤지컬이 인기를 얻으며 ‘드랙 문화 = 드랙 퀸 문화’로 여겨지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다. 드랙 킹, 성별 또는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드랙도 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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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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