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크, 힐키, 히딩크, 이순남

[라이프]by 한겨레

히끄의 탐라생활기


제주 사는 ‘고양이 손자’가 바꾼 것

한겨레

여름휴가로 제주 여행을 오는 민박 손님들은 번거롭게 짐을 옮기지 않고, 한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예약할 때 대부분 장박을 원한다.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보다 휴식하면서 천천히 다닌다. 덕분에 요즘 같은 극성수기 때 오히려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청소가 없어서 히끄와 함께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있는데 고향 친구들과 제주로 관광 왔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은 똑같은 멤버와 자주 제주 여행을 오지만 그때마다 단체로 움직여서 정작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 그게 서운하지 않은 이유는 나 역시 육지에 가도 부모님 댁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히끄를 보고 간 후부터는 항상 전화 끝에 “히크(오타 아니다. 히끄의 ‘끄’ 발음을 어려워해서 이렇게 부른다)는 잘 있냐”고 안부를 묻는다. 부모님은 2년 전 우리 집에 처음으로 오셨다. 내가 제주에 온 지 5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히끄와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부모님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과 달라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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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월급이 제때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하 신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자영업을 한다고 해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저 멀리 제주에서 산다고 할 때도 갈등이 있었다. 아빠는 자신이 태어난 동네를 단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더욱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 말했던 “부모는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포기시키는 거”라는 논리를 몸소 실행한 덕분에 자유를 쟁취했다. 가족이지만 한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히끄의 수더분한 성격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히끄는 부모님이 움직일 때마다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털과 함께 매력을 뿜었다. 엄마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장난감으로 히끄와 놀아주기도 하고,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힐키’, ‘히딩크’라고 부르다가 성격이 순하다며 ‘이순남’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줬다.


아빠는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결국 ‘강아지 집에 데려오면 내다 버린다는 아빠들 특징’에 나오는 사람처럼 변했다. 처음에는 히끄의 털이 날릴 때마다 기함했지만,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고 알은체하는 ‘고양이 손자’가 귀여웠는지 히끄를 쓰다듬는 횟수가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아빠는 본인의 주변을 봤을 때,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 결혼을 안 해서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사실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까 봐 안 하는 건데 말이다. 부모님이 오신 날 모든 이야기의 화제가 ‘기-승-전-결혼’이라서 결혼정보업체에서 영업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빠 말대로 반려인이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사례가 있다면 반려동물이 주는 안정감만으로도 충분해서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동물과 사람이 주는 행복은 각자 다르겠지만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은 동물을 싫어하는 아빠도 변하게 하였으니 충분한 증명이 된 셈이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

2019.07.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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