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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by한겨레

헤밍웨이 팔아 유명해진 쿠바 술집 ‘라 보데기타’의 ‘대관광객 사기극’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인 코히마르와 헤밍웨이를 소재로 한 쿠바 예술가의 작품

‘엘 플로리디타’의 문이 마주보이는 벤치에 앉는다. ‘엘 플로리디타’는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 헤밍웨이는 근처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묵으며 ‘엘 플로리디타’에서 다이키리(럼을 베이스로 만든 쿠바 칵테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술집을 들락날락하는 손님들을 바라보는데 백인 청년이 벤치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건다.

 

“너도 저기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거야?”

 

“글쎄….”

 

“저 술집 손님 중 몇이나 헤밍웨이의 애독자일 거라고 생각해? 헤밍웨이 책이라곤 한 권도 읽지 않은 미국인이 대부분일 거야.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영화로 본 게 전부 다일 걸. 스타의 흔적을 좇는 것뿐이야. 헤밍웨이가 어떻게 찬란한 별이 되었는지, 왜 반짝이는지 알지도 못한 채. 동상과 사진이나 찍고, 다이키리를 마시느니 헤밍웨이 소설을 한 편 읽는 게 나아.”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코히마르 마을 어부들이 못 쓰는 배들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 헤밍웨이 동상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청년은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노인과 바다> 영문판 표지가 팔락거렸다.

 

마이클 샌델은 <도덕이란 무엇인가>에서 미국 문화의 불쾌한 특성 두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유명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고, 또 하나는 뭐든 거래 대상으로 만드는 경향이라고. 실제 미국인은 유명인이 사용한 물건이라면 양말, 팬티, 브래지어든 뭐든 닥치는 대로 팔고, 사들인다. 가령 1990년 무렵 케네디의 유품이 경매로 나왔는데 흔들의자는 30만달러, 가죽가방은 70만달러. 여기까진 그렇다 치고 속옷이 3천달러에 팔렸을 정도. 유명인에 대한 가공할 정도의 집착이다. 이런 미국인의 특성이 바다 건너 쿠바로 넘어가면 ‘헤밍웨이 순례’가 된다.

 

소설가가 마셨다는 술만 마시고
단골이었단 밥집·술집만 찾아다니니
‘헤밍웨이’는 아바나 어디에도 없다
30분이면 <노인과 바다>에 닿는데…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과 집필을 했던 호텔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이키리를 마셨던 술집, 모히토를 마셨던 술집, 식사를 하던 밥집 등. 만약 쿠바 노인이 “오줌을 누다가 옆에서 볼일 보던 사내를 흘깃 봤는데, 헤밍웨이였어!”라고 말할라치면 공중화장실까지 순례지로 집어넣을 태세다. 아마 ‘헤밍웨이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요!’라며 그날 그 소변기를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날 게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거나 팔 수만 있다면!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아바나엔 헤밍웨이로 유명한 술집이 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엘 플로리디타’와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생전 헤밍웨이는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 헤밍웨이는 살아생전 ‘라 보데기타’의 손님이었던 적이 없는데. 사정은 이렇다.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작은 어촌 코히마르

1942년 올드 아바나. 마르티네스 부부는 한 잡화점을 사들인 다음 ‘카사 마르티네스’란 간판을 달고 술을 팔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칵테일을 개발해 팔던 중 1950년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로 이름을 바꾸고 손님을 더 끌어들일 수가 없을까, 궁리를 한다. 단골손님 중 하나가 끼어든다. “헤밍웨이 때문에 ‘엘 플로리디타’가 장사 잘되는 거 알고 있죠? 그래서 말인데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헤밍웨이’라고 써서 벽에 붙여두면 어떨까요?” “그거 재밌겠는데!” 그들은 우스개 삼아 사인까지 위조해 한쪽 벽에 붙인다. 웃자고 한 짓이 다큐가 되고, 유명인을 소재로 글을 써대는 작자들은 엉터리 문장에 착안해 ‘헤밍웨이가 사랑한 모히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면서도 마셨다’고 써댄다. 당사자가 살아 있었다면 사실무근으로 판명이 났겠지만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돌아간 지 2년 만에 자살. 핵전쟁이 터지네 마네 하는 판에 한낱 술집에 붙은 글씨를 파헤칠 기자가 있을 리는 만무. 장난이었는지 작당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헤밍웨이-모히토-라 보데기타’로 이어지는 스리쿠션이 전세계를 도는 사이 ‘모히토’는 세계적인 칵테일이 되고 ‘라 보데기타’는 각국에 분점까지 연다.

 

진실이 밝혀진 건 2012년. 지금은 ‘라 보데기타’를 떠난 원래 주인 마르티네스가 양심선언을 한 것. 그러나 분서갱유를 하려고 해도 석 달은 족히 탈 정도로 ‘헤밍웨이?모히토?라 보데기타’를 잇는 서적과 기사가 서점과 도서관에 쌓인 후였으니. 오늘도 쿠바 여행자들은 다른 술집의 2배 값을 치르면서까지 ‘라 보데기타’에서 모히토를 마신다. “헤밍웨이처럼!”을 외치며. 여행자를 국제적 호구로 만드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사기다.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코히마르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쿠바 소년들

대학 시절 ‘20세기 미소설’ 시간에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배운 적이 있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 그러나 헤밍웨이로 유명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진 않았다. 대신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어촌, 코히마르에 갔다.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면 30분 후 닿는다. 차비는 20원. 코히마르 인근에서 내리긴 했지만 포구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대답만으로 끝내지 않고 길안내를 해주겠다고. 노인은 유년 시절 헤밍웨이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낡은 건물들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이 건물이 옛날엔 어시장이었어. 물고기를 잡아오면 어부들은 여기서 팔았지.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그 영감도 말이야. 원래 이름은 그레고리오야. 2002년에 돌아가셨는데 104살까지 사셨으니 장수하셨지.”

 

코히마르엔 헤밍웨이를 팔아대는 아바나의 술집보다 관광객이 적었다. 아니, 외국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 단체관광버스가 훑고 지나간 오후라 그럴지도. 마을을 안내하던 노인이 약국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자넨 저기까지 쭉 걸어가. 아바나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이야. 난 여기서 약을 사야 해. 심장이 안 좋거든.” 길안내를 해주고선 돈을 요구하거나 장신구를 사라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고, 노인 또한 그럴지 모른다고 짐작했는데…. 내가 끌어안고 고마움을 표시하자, 노인은 오히려 자신의 집 주소까지 적어주며 말했다. 아들이 이탈리아로 떠난 뒤 방 하나가 비어 있으니 언제든 와서 쉬어 가라고.

 

코히마르에도 헤밍웨이의 단골식당이 하나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술과 음식을 판다. 쿠바인이 드나드는 식당보다 몇배 더 비싸다. 경쟁 대상이 없어선지 종업원은 불친절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헤밍웨이의 단골이었지만 이젠 외국인 관광객만 이용하는 탓에 당시 쿠바의 정취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장소와 헤밍웨이의 흔적은 없지만 당시 그가 느꼈을 쿠바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곳, 어디에서 헤밍웨이를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취향의 문제니까. 아무튼 나라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어린 왕자>를 읽고 생텍쥐페리가 단골로 이용하던 식당보단, 어린 왕자가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사막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노동효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