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 팀장은 읊조리고 말았다 “아…LG답다”

[비즈]by 한겨레

Weconomy | 송경화의 올망졸망2

기업별 홍보 스타일로 살짝 엿본 조직 내부

2분기 월풀 제쳤는데 ‘실은 1분기도’였던 LG

‘LG 가전 대박’ 발표날 ‘미국서 1위’ 자료 낸 삼성

‘적자’ 발표 앞서 ‘3조 투자’ 내놓은 LG디스플레이

사장 일본 출국 ‘어색’ 사진 보낸 SK하이닉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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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홍보 스타일을 보면 조직의 ‘안쪽’이 어느 정도 엿보인다. 최근 엘지(LG)전자와 삼성전자, 엘지디스플레이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보며 많은 걸 느꼈다. 보도자료를 내는 시점과 방식, 문의사항에 대한 대응 등에서 기업마다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참고로, 매우 ‘깨알’같은 얘기들이다.

“실은 1분기부터였어요. 월풀 제친 거…” LG

어제(30일)는 엘지전자가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예상대로 건조기, 스타일러 등 ‘생활가전’은 대박이었다. 티브이(TV)는 부진, 스마트폰은 17분기 연속 적자였다. 엘지전자는 2분기의 분야별 수치를 공개했다. 기자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월풀과의 승부였다. 미국의 월풀은 글로벌 가전업계 1위인데, 엘지전자가 적잖이 쫓아갔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실은 상반기, 우리 생활가전 매출이 월풀보다 많았습니다.” ‘월풀 제쳐’가 사실이면, 기사 헤드라인이 달라진다.


진짜였다. 상반기 엘지전자의 생활가전 매출은 11조5678억원으로 월풀의 11조3892억원(상반기 평균 환율 적용)을 근소하게 앞섰다.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홍보팀에선 계속 ‘상반기’라고만 했다. 나는 상반기 대신 1분기와 2분기를 나눠서 따져보자고 했다. 2분기 기사인 만큼 분기별 수치를 발라내 살펴봐야 했다. 수치를 확인한 뒤 혼란에 빠지고야 말았다. 1분기 때도 이미 월풀 매출액을 넘어섰던 것이다.


물어보니 이랬다. 양사의 매출액은 당시에도 유사했다. 환율이 문제였다. 1분기 실적 공시일을 기준으로 하니 월풀이 앞섰다. 그런데 이번에 2분기 실적을 분석하며 특정 날짜가 아니라 기간의 평균 환율을 한 번 적용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2분기, 월풀을 넘어섰다. 이미 다 지났지만 1분기 매출도 ‘평균 환율’로 계산해봤다고 한다. 어랏, 엘지가 많았다! 그렇다고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마당에 “이 기준이라면 실은 지난 1분기때 넘었다”고 설명하는 건 이상하고 복잡했다. 그래서 ‘상반기 제쳐’라고만 말한다는 것이다. 엘지전자 홍보팀 공시 담당자는 이 복잡한 상황을 매우 우직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혹시 몰라 계산기도 직접 두드려봤다. 담당자의 말이 맞았다. 기사엔 이 사정을 일일이 담을 수 없었다. ‘상반기 처음 제쳐’로만 썼다. 기사에서 왜 이 대목만 ‘2분기’가 아니라 ‘상반기’라고 썼는지 팀장(한겨레 산업팀장)에게 보고를 했다. 그는 이런 반응을 내놨다. “아…. 진짜 엘지답다.” 독자분들께는 이 기사로 부족했던 설명을 갈음한다.


누리꾼 사이에서 엘지의 마케팅은 종종 회자된다. ‘답답해서 남이 대신 해주는 마케팅’ ‘보다못해 고객이 나선 홍보’ 식이다. 투박하고, 무리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깔려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양념’을 잘 치지 않는다. 누리꾼들은 이를 ‘신뢰’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엘지전자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그런 평가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한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런 경험도 있었다. 엊그제 ‘게임 모니터’ 기사를 썼다. 엘지전자가 채택한 특정 기술의 패널이 있는데, 이 패널과 관련해 “눈을 덜 피로하게 한다”는 표현이 여기저기 많았다. 이는 사실 모니터 홍보물에 흔히 붙는 말이다. 패널 특징을 요약해 쓰다가 급히 물었다. “이 기술 패널, 눈 피로 낮춰, 이렇게 써도 되죠?” 홍보팀 모니터 담당자는 답했다. “아닙니다.” 모니터 소프트웨어에 관련 기능이 있지만 패널 자체의 특징이 아니니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단호박이었다. 참고로 이 담당자는 공대 출신이다.

‘LG 가전 대박’ 발표날 ‘미국서 가전 1위’ 자료 낸 삼성

이런 적도 있었다. 지난 16일 엘지전자는 맥주 매니아층을 겨냥한 수제맥주 제조기 ‘홈브루’를 발표했다. 행사장에 갔는데 홍보팀원들 옷차림이 유독 눈에 띄었다. 캐쥬얼한데 그렇다고 마냥 편해보이지만은 않고, 약간은 차려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브리핑을 맡은 송대현 사장도 비슷했다. 평소엔 양복 차림이었는데 이날은 면바지 차림에 웬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옷 색깔은 나름 맥주와 ‘깔맞춤’이었다. 송 사장은 올해 62살이다.


맥주 시음을 하다 마침 옆에 있던 홍보팀 담당자에게 한 번 물어봤다. 아, 위에 ‘단호박’ 그 자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그거요? 오늘 제품 성격에 맞춰서 일부러 편안하게 입은 거예요. 팔은 이렇게 두 번 걷고요. 신발도 딱딱한 구두 대신 이런 것(슬립온) 신고….” 듣자마자 촉이 딱 왔다. ‘이건 따로 기사가 되겠다!’ 홀로 다음 날 이렇게 썼다. ▶LG전자 사장이 ‘흰색 스니커즈’를 신은 사연 (포털 사이트에선 링크가 뜨지 않는데요, 한겨레 사이트에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흰 스니커즈’가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홍보팀에서 사진을 여럿 찍었지만 윗부분만 찍혔다는 것이었다. 기사에 결정적 힌트를 준 담당자는 물론 홍보팀 누구도 이를 기사 소재로 잡아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통신사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장 공간이 좁았던 탓도 있었다. 내가 찍은 게 하나 있었지만 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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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사에 이 사진이 나갔다. 나는 내 ‘똥손’을 탓했지만 결과적으론 괜찮았던 것 같다. 기획하지 않은 듯 기사가 자연스럽게 읽혔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저런 기사는 ‘잘’ 쓰지 않으면 홍보팀 발주 기사로 오해사기 십상이다. 독자들의 ‘매의 눈’은 억지스러움을 금방 포착해낸다. ‘상반기 월풀 제쳐’ 해프닝도 엘지전자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스마트폰 부진이 16분기 연속에서 17분기째로 이어지는 등 1분기 때보다 부정적 이슈가 늘어났는데 ‘월풀 처음 제쳐’로 헤드라인이 도배됐기 때문이다. 설마, 알고 보면 빅피쳐였던 것인가?


엘지전자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날, ‘홍보의 기술’을 톺아보게 한 다른 기업이 있었다.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삼성의 생활가전이 미국에서 2분기 1위 해, 13분기 연속 1위였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의 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시점이 미묘했다. 이날 오후 3시엔 엘지전자의 2분기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었다. ‘엘지 생활가전 대박’은 예상되던 결과였다. 그에 몇 시간 앞서 ‘삼성이 미국에서 1위’라는 자료를 낸 것이다. 지면에선 당연히 엘지전자의 2분기 실적 기사가 훨씬 크게 나갔지만 온라인 기사는 파편화해 독자에게 도달된다. 독자들은 헷갈렸을 것이다. 엘지전자는 가전에서 미국 월풀을 제쳤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미국 1위’를 했다? 삼성전자가 왜 이날 오전 이 자료를 냈는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시장조사업체의 분석이 있을 때마다 고정적으로 내는 건 아닌 것 같다. 2분기(4~6월) 자료는 이날(7월30일) 냈는데, 1분기(1~3월) 자료는 6월23일에 냈다.

‘3조원 투자’ 먼저 발표하고 ‘적자’ 공시한 LG디스플레이

너무 엘지전자 얘기만 많이 했는데, 엘지디스플레이 사례도 있다. 지난 23일 엘지디스플레이는 두 개의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를 자주 내는 회사가 아닌데 이 날은 두 개였다. 둘 다 전날 이사회에서 의결돼 이날 공시 대상이었다. 하나는 2분기 실적 발표였다. ‘3687억원 적자’였다. 다른 하나는 투자 결정이었다. 경기도 파주 올레드(OLED) 생산 시설에 추가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3조원의 대규모 투자였다. 종합하자면 “적자났는데, 이렇게 이겨내겠다”는 것이었다. 대형 올레드 패널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만큼 추가 투자로 대처하겠다는 취지였다. 엘지디스플레이는 ‘투자’ 건을 먼저 발표했다. 아침 일찌감치 자료를 뿌렸고, 보도들이 먼저 이어졌다. 실적은 오후 증시 장 마감 뒤 발표됐다. 종합된 기사엔 ‘적자’와 ‘투자’가 동시에 나갔다.


엘지전자의 투박함을 얘기하다보니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떠오른다. 여기서도 대조군은 삼성전자다. 경영진의 행보를 알리는 방식에 대해서다. 삼성전자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난 6월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회의를 주재했다.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이었다. 기자들이 알지 못하던 일정이었다. 삼성전자 사업장은 언론의 접근도도 떨어진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이 내용은 어떻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을까? 삼성전자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 앱’에 관련 사진이 올라오면서다. 자연스러운 사진들이 여럿 올라왔다. 언론사들은 ‘삼성전자 블라인드 앱’이라고 사진 출처를 적어 보도하게 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블라인드 앱에 누가 올렸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블라인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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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하이닉스 김동섭 사장은 지난 16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같은 내용의 출국으로 이미 한 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대대적으로 받은 뒤였다. 에스케이하이닉스도 자사의 노력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홍보팀이 공항으로 출동했다. 사진을 직접 찍어 언론에 배포했다. ‘참고 사진’이라고 했다. 딱 2장이었다. 투박함에 대한 부연은 사진으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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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2019.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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