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최초 트랜스젠더 합격생 “마음 너덜너덜해졌다”

[이슈]by 한겨레

학교 안팎 반발·입학 반대에 “대학 등록 두려워”


“성전환 수술 뒤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 하사 향해


‘조용히 살지 왜 일을 키우냐’는 반응 보고 분노”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 보며 법률가 꿈


“누구나 상황 따라 소수자 될 수 있어…소수자 포용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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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너무 무서웠어요. 온갖 욕을 다 먹더니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 ㄱ(22)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ㄱ씨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ㄱ씨가 숙명여대 법대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이 <뉴시스>에 보도됐다. 그러자 숙대 안팎에서 ㄱ씨의 입학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학내 커뮤니티에선 “여성들을 위한 공간에 들어오지 말라”,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비약적이다”, “애초에 트랜스젠더가 조용히 있었으면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ㄱ씨의 입학을 두고 회의를 통해 입장을 발표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 숙명여대 학생은 총학생회에 “현재 학생들은 트랜스젠더인 ‘남성’의 입학에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분노하는 상황인데 총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부) 학생들을 대변하냐”고 항의 메일을 보냈다.


ㄱ씨는 이 소식들을 다 알고 있다. ㄱ씨는 지난달 31일과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가 사회적 다수자인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내 입학은 불허돼야 한다는 접근이나 성전환 수술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반응들을 보고 답답했다”며 “만약 입학하더라도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에 등록할 수 있을지 무섭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가시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ㄱ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하기에 앞서, 성전환 수술 이후 육군에서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 하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변 하사는 군복무 중이던 지난해 12월 휴가를 내고 태국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군으로 군복무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으나, 지난달 22일 육군은 변 하사의 강제전역을 결정했다. ㄱ씨는 그때 일어난 사회적 반응들도 모조리 살펴봤다. “변 하사에 대한 반응 중에 ‘조용히 살면 되는데 뭐하러 인터뷰를 하며 일을 키우냐’는 시선이 있었어요. 이런 반응을 보고 당황스러웠고, 분노도 일었습니다. 다수자나 혹은 다른 소수자들이 어떤 소수자가 정체성을 드러내면 차별과 멸시가 있으니 숨어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일부 소수자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들 모두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ㄱ씨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사실 ㄱ씨가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대 합격생’이라는 타이틀이 붙기 전부터 존재했다. ㄱ씨는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기 한달 전인 지난해 9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접수를 위해 원피스 차림으로 사는 지역의 교육청을 찾았다. 교육청 직원은 ㄱ씨에게 “수능 당일에는 지금처럼 입고 오면 다른 학생들이 불편하지 않겠냐. 평범하게 입고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치마를 포기하고 편한 복장 차림으로 수능 시험을 치렀다. ㄱ씨는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남성이라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면에서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ㄱ씨가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용기를 얻은 건 2017년 4월 발행된 <한겨레21> 1159호에 실린 박한희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서다. 박 변호사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다. “기사를 보고 깊게 감명을 받았어요. 그리고 남들 시선에 나를 위축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변호사가 된 뒤 법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ㄱ씨는 오는 7일까지 숙대에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고 등록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바람대로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면 ㄱ씨는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기저기 알리는 활동을 해볼 생각이다. ㄱ씨는 “모든 사람을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다수자일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소수자인 상황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고 싶지 않다면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정체성의 소수자를 배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학 연구자인 권김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는 “성별은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숙명여대가 여성대학이라면, 법적으로 여성인 ㄱ씨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가 없다. 그러니 일부 숙명여대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차별이 맞다”며 “그들은 차별로 여대 안에서 공간적인 안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여대 내 다양성 같은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지금 숙명여대에도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여성과 남성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자기다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남성으로 규정을 먼저 시킨 것은 사회다. ㄱ씨의 경우 여성임에도 사회가 주민등록번호 1번을 주면서 남성으로 살게 한 것인데, 본인의 성을 찾아서 본인의 모습으로 살겠다고 나섰음에도 사람들이 ‘당신은 남자야’라고 말하는 건 국가가 지정한 성별로 살라는 말에 불과하다. 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살지 못하느냐”라며 “법적으로 성별정정까지 마친 분에 대해 논란이 일게 되면 이 분은 대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거냐”라고 지적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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