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정체성은 트랜스젠더 어머니입니다”

[이슈]by 한겨레

성전환한 아들 둔 정은애씨

“배제 지켜본 아들 고통의 시간

겉모습으로 남녀 구분해야 하나…

살면서 지금처럼 좌절한 것은 처음”

성전환한 딸 둔 홍경옥씨

“숙대 사태, 온몸이 찢기는 것 같았다

제발 우리 딸이 안 보면 좋겠다고 생각”

타자 정체성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것 배워

“내 옆 누군가 성소수자일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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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정체성은 트랜스젠더 부모입니다. 저는 제 아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정은애(51)씨는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한다. 딸로 태어난 한결(26)씨가 에프티엠(FTM: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함)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지난해 마침내 성별정정으로 남성이 되기까지 정씨는 아들의 선택을 줄곧 지지해왔다. 공공화장실부터 수영장 이용까지 일상 속에서 숨쉬듯 차별과 불편을 경험해야 했던 아들을 늘 지켜봐온 그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정씨는 말했다. 성전환수술 뒤 군에서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법학부에 합격했으나 일부 학생들의 거센 반발 때문에 결국 입학을 포기한 ㄱ씨 등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배제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해서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죽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어요. 아주 힘들 때 몇달에 한번 먹던 약을 요사이 일주일에 네번이나 먹고 있어요.” 한결씨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들에게 변 하사와 ㄱ씨의 도전과 좌절은 그 자체로 절망이다.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응원해온 가족들의 마음도 무너진다. 정씨는 “살면서 지금처럼 좌절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10일 <한겨레>는 한결씨의 어머니 정은애씨를 비롯해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 4명을 인터뷰했다.


정씨는 변 하사를 강제전역시킨 군에는 실망했지만 “보수적인 집단이니 이해는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ㄱ씨를 둘러싼 숙대생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내부에서 공격받은 느낌”을 받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건 잘 이해가 안 돼요.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거니까, 어렵고 힘들어도 잘해보자고 얘기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니 너무 절망스러워요.”


엠티에프(MTF: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함) 트랜스젠더인 조아무개(23)씨의 어머니 홍경옥(49)씨도 ㄱ씨를 향한 흉기같은 말들에 딸이 상처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트랜스젠더들의 정체성을 비하하는 모든 발언이 다 상처였죠. 온몸이 찢기는 것 같았어요. 제발 우리 딸이 안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금 딸은 삶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달관했죠. 너무 집착하면 못 사니까 최소한 숨이라도 쉬기 위해 달관하게 되는 거예요. 부모 입장에서는 ‘당신들이 트랜스젠더를 직접 보기는 했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실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니까 어떻게 말하기가 조심스럽더라고요.”


홍씨는 숙대 합격자 ㄱ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커밍아웃을 하고 사회에 알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결심을 필요로 한다는 일을 알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을 보통 ‘벽장에서 나온다’고 표현하는데, 정말 숨을 쉬기 위해서 나오는 거예요. 입학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감사해요. 이렇게라도 트랜스젠더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됐으니까요.”


부모들도 처음부터 트랜스젠더라는 자녀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말 새롭게 ‘아들’ 우빈(22)씨를 얻게 된 변홍철(51)씨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닌데 우리 아이가 그런 점은 당혹스러웠어요. 하지만 그 이전에 아이가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를 힘들어해 원인을 모르다가, 성정체성 때문이라는 걸 듣고 ‘그렇다면 해결 방법이 있지 않겠나’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았어요. 부모 모임도 나가고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도움을 받았지요.” 우빈씨가 걷는 길이, 되레 부모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줬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 덕에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성적 정체성 외에 우리 인간이 다면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데 타자의 정체성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세계나 인간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에프티엠(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경우) 트랜스젠더인 황아무개(24)씨의 어머니 황아무개(51)씨는 딸이 트랜스젠더라고 말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사람이 태어난 성별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년 넘게 갈등을 겪은 뒤에야 딸을 ‘아들’로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상담을 10개월 정도 했는데 전혀 변하지를 않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을 보니까 너무 절망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바뀌었어요.” 서로 의지해 걸어온 두 사람이지만 이번 사건들을 지켜보며, 어려운 길을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황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가장 가슴아픈 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당사자들이 뭔가 포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정말 가슴 아팠어요. 단지 트랜스젠더란 이유로 하고 싶은 걸 막는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황씨는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알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아들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외로 잘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되면 바뀌지 않을까요.” 홍경옥씨도 “트랜스젠더를 한 명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누구나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지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비율이 3%라고 해요.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전광준 강재구 기자 light@hani.co.kr

2020.03.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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