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으로 미리보는 '부부의 세계'

[컬처]by 한겨레

영국드라마 <닥터 포스터>

한겨레

인터넷 영화 누리집 아이엠디비(IMDb)

제마 포스터(서랜 존스)의 삶은 완벽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의사로,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내와 모범적인 엄마로 성실히 살아왔다. 그 단단했던 삶을 뒤흔든 의혹은 단 한올의 머리카락에서 시작됐다. 남편 사이먼(버티 카블)의 목도리에서 긴 금발 머리카락을 발견한 제마는 온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 결혼생활 14년 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급기야 제마는 사이먼의 휴대폰을 검사하고 미행까지 하지만, 외도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한번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영국 <비비시>(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는 결혼생활 최대 시험에 든 여인의 이야기다. ‘또 불륜 드라마냐’라는 물음에 새로운 이야기로 답하지는 않지만, 기만당한 여성의 심리를 처절할 만큼 깊숙이 파고들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개가 놀랍다. 영국에서도 2015년 첫 방영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영국영화티브이예술아카데미(BAFTA)를 비롯한 티브이 관련 시상식을 휩쓴 문제작이다. 현재 <제이티비시>(JTBC)에서 뜨거운 반응 속에 방송 중인 김희애 주연작 <부부의 세계> 원작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새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닥터 포스터>의 출발점은 2012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런스 올리비에상 수상자인 극작가 마이크 바틀릿이 2012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를 무대에 올리면서 구상한 현대적 각색의 결과가 <닥터 포스터>다. 바틀릿은 소위 ‘악녀이자 마녀’ 메데이아의 심리에 주목한 에우리피데스의 해석을 이어받으면서도, 한발 더 나가 여성의 분노를 광기로 몰아가는 여성혐오적 인식을 전복시키려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그토록 똑똑했던 의사 제마 포스터가, ‘그녀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부터 급격하게 무너져가는 모습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제마의 분노는 단순히 남편의 배신을 넘어서 그녀를 둘러싼 온 세상의 기만에서 기인한다. 대도시의 외로운 고아 출신 제마는 결혼과 함께 남편 고향에 안착한다. 모두가 이웃처럼 보이는 동네에서 제마는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병원 수석 의사직까지 오른다. 남편의 배신으로 드러난 것은, 제마가 완벽하다고 여긴 모든 것이 결혼으로 완성된 세계였다는 사실이다. 동네 전체가 아는 남자와의 결혼이야말로 ‘타지 출신 젊은 여의사’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덮어준 결정적 요인이었다. 제마의 가정이 흔들리자 의사 평가 사이트에 올라오기 시작한 혐오 게시물은 그것이 얼마나 허울뿐인 포장에 불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닥터 포스터>는 그처럼 부부라는 이름에 가려진 결혼 제도의 불공정과 여성의 분노에 대한 세상의 혐오를 이야기한다. 시즌1의 호평에 이어 나온 시즌2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여전히 시즌3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제마의 분노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페미니즘 물결이 한창인 시대에 리메이크된 <부부의 세계>는 과연 어떤 해석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2020.04.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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