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구경하듯 가난을 ‘관람’하네

[컬처]by 한겨레

스코틀랜드 빈민지역 출신 래퍼 겸 칼럼니스트 대런 맥가비 자전적 에세이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삶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좌우파 모두에 신랄한 비판

한겨레

가난 사파리: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대런 맥가비 지음, 김영선 옮김/돌베개·1만6500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파리 동물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관성적인 개인기를 선보인 다음 운전수가 건넨 먹이를 입에 물고 심드렁하게 사라진다. 철창으로 뒤덮인 안전한 차량 안에서 관람자들은 제각기 감상평을 내놓는다.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다’, ‘평생을 여기서 살아야 하는 쟤들도 참 불쌍하다’. 짧은 사파리가 끝나고 차의 시동이 꺼지면 관람자들의 감상도 멈춘다. 잠시나마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동물들의 흐릿한 눈동자를 뒤로하고 관람자들은 서둘러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 떠난다.


<가난 사파리>는 빈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 사파리 구경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저자 대런 맥가비는 미디어가 아동학대를 그리는 방식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고개를 떨구고 집 밖 계단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다섯 살에서 열 살 안팎의 아이들. “우리를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아동학대와 방치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살균처리된 이미지가 문제의 실체를 왜곡한다. 이런 사진은 희생자가 시간 속에 얼어붙은 채 우리가 그 안으로 손을 뻗어 위험으로부터 빼내 주기를 기다리는 영원한 아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낳는다. (…) 하지만 이 아이들이 법적 과실을 저지르는 순간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전반적인 태도가 달라진다.” 인간을 위협하지 않을 때에만 수용되는 사파리 동물처럼, 타인을 위협하지 않는 ‘무해한’ 아동 학대 피해자만 사회는 수용하고, 잠시 동정하며, 잊는다. 저자는 “학대 받은 아이, 난폭한 청소년, 노숙인,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끔찍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부모가 실은 삶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동일 인물”이라고 일갈한다. 잠시 연민하고 잊는 구경꾼의 태도로는 가난이라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면서.


저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가난의 ‘내부자’였기 때문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남쪽에 있는 빈곤지역 폴록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 지독한 아동학대를 당했다. 알코올·약물 중독이던 엄마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다섯 살이던 아들의 목에 빵칼을 들이대며 위협했고, 집안 살림을 돌연 태워버렸으며, 그가 열 살 때 집을 나가 열일곱 살에 부고를 전해왔다.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던 날, 까만 재가 되어 무덤처럼 쌓여 있던 살림들을 앞에 두고도 딱히 어떻게 된 건지 친구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이유를 저자는 훗날 이렇게 설명한다. “문제 가정 아이들의 삶은 거리로 퍼져나간다. 사생활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사치재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바깥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저자는 글쓰기에 몰두한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달려와 글을 쓰고, 랩을 지어 작은 공연도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마이크를 얻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채용 차별을 취재하던 영국 비비시(BBC) 기자가 그에게 마이크를 건넨 것이다. 인터뷰는 또 다른 기회를 불러왔다. 비비시 뉴스 프로그램 객원 진행자로 방송을 탔고, 몇몇 지역단체와 자선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자기 삶에 긍정적인 일을 하는 청년’이라고 소개되며 단상에 올랐다. 그렇게 ‘전시되는 삶’에서 벗어난 듯했다.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가 학대 경험을 증언할 땐 귀담아 들었지만 여기서 벗어나 가난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말할 때는 멀쩡한 서류를 뒤적이며 딴청을 부렸다. “그 사람들의 안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건을 위해 우리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버려진다. (…) 내가 대본에서 벗어나면 수수께끼 같이 조명이 희미해지며 마이크가 멎었다.” 저자는 트로이의 목마를 심는다. 죽은 알코올 중독 엄마에 대한 증언으로 말을 시작해 까다로운 ‘관람자’의 귀를 연다. 사파리 안 동물들이 재주를 부려 관람객의 시선을 끌듯이.


“가난과 관련해 확실하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은 없다.” 트로이의 목마까지 심으며 저자가 사회에 전하려 했던 말이다. 가난 담론은 결국 둘 중 하나다. 가난 당사자의 ‘노오오오력’ 없음을 질타하거나(우파), 부자나 보수주의자, 엘리트 집단을 비난하거나(좌파). 저자는 “우리는 (가난)문제에 대해 우리 책임을 면제해주는 어느 한쪽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며 ‘가난의 관람자’가 내놓은 이 거친 이분법으로는 빈곤 문제를 영원히 풀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비판은 애정을 갖고 있는 좌파에 쏠려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나 구조, 체제 또는 모호하게 규정된 엘리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좌파의 가난 담론은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의 역할을 간과하게 만든다. (…) 개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을, 이를 독점하면서 사회를 걷잡을 수 없이 그릇된 길로 이끄는 우파로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을 주목하는 게 좌파의 급진적인 새 노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좌파는 근본적 변화를 지지할 뿐더러 가능한 우리가 가진 많은 문제에 대한 소유권을 가져와 가난한 지역에서 고갈된 인간의 능력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의 솔루션이 힘을 갖는 건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의 후유증으로 알코올과 약물, 패스트푸드 중독과 심각한 무기력을 앓았던 그는 말한다. “우리 삶의 체제를 감당하고 유지하며 운영하지 못하면 가족, 공동체, 대의 또는 운동은 쓸데없다.”


저자가 래퍼 로키(Loki)로 알려진 뮤지션이자 칼럼니스트여서 펀치라인(한방이 있는 인상적 가사)이 책 곳곳에 포진해있다. “가난은 학대 문화에 거름을 준다” “실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게 가난의 문제” 등이다. 저자의 첫 저서인 이 책은 2018년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적 글쓰기에 수여하는 ‘오웰상’을 받았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 ▶2005년 이전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6.08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