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양꼬치구이, 이국의 맛

[푸드]by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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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시장 인근 중국집 ‘동북화과왕’의 양고기꼬치.

역병 때문에 감상을 빼앗긴 시기에도 봄은 오고 졌다. 얼굴에 땀이 가득 차올라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다. 먹고 마실 때만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가릴 수 있다. 이런 마음을 핑계 삼아 낮술 자리를 찾았다.


동대문시장이나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에는 상인들과 행락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음식점이 많다. 곱창과 떡볶이, 어묵을 파는 작디작은 포장마차부터 상인들의 맛집으로 소문난 국숫집, 장 보고 나와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닭 한 마리 집’까지 종류도, 종목도 다양하다. 그 유명한 ‘닭 한 마리 집’에 들러 고기와 국물, 국수에 소주까지 거나하게 먹고 나오자 오후 4시였다. 어렵게 나선 길인데 그냥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때 생각난 곳이 중국집 ‘동북화과왕’이었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네팔 등 다국적 민족들이 모여 있는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중식을 취급하는 식당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양고기꼬치를 파는 중식당은 강남과 강북, 지방 소도시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세상이니 더욱 기대할 건 없었다. 허름한 외관과 낡은 간판, 들어서기 꺼려지는 입구였지만 술기운에서 호기를 부렸다.


이미 배는 부른 터.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이 양고기꼬치를 굽고 있는 장면을 보니 승부욕이 생겼다. 양고기꼬치 2인분, 청요리에 어울리는 ‘배갈’ 한 병, ‘토마토 달걀탕’을 주문하고 나서야 메뉴판이 보였다. ‘수이 주 러우 팬’, ‘썽 초우 뉴 러우’ 같이 생소한 중국어 메뉴에는 친절하게 음식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건 쇠고기 요리고, 저건 돼지고기 요리겠구나, 채소가 들어갔구나’라는 생각은 취중의 어림짐작일 뿐이었다. 여느 중국집보다 낯설었다. 식당에서 한국어로 대화 나누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숯불에 구워 지글지글하는 양고기꼬치는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베어 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육즙은 스테이크를 먹는 듯 입안을 풍성하게 채웠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썬 호방한 크기의 고기는 무척 맘에 들었다. 쯔란을 묻혀 양고기 두 점을 먹고 독한 백주를 들이켜고 슴슴하고 개운한 ‘토마토 달걀탕’도 마셨다. “이 맛에 술 마시지.”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친구와 웃고 떠든 시간은 소중했다. 역병이 잦아지기를 기대하면서, 밖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더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기원하며 고기를 뜯고 또 술을 마셨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2020.05.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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