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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항공사 승무원 준비중이었는데…” 취업 암흑기에 갇힌 20대의 좌절

by한겨레

‘코로나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 ⑤취업준비생


한겨레 인터뷰 15명중 11명이


“자격증 시험과 공채 연기로 붕뜬 처지 돼”


유례없는 알바경쟁


“재학생에 외국인 유학생 너도나도 구직”


암담한 미래에 청년들 대다수 ‘코로나 블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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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 한 줄의 뉴스가 신지혜(23·가명)씨의 삶을 덮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서울 강남역 인근에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라는 짧은 뉴스였다. 그날 이후 지혜씨가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카페가 있는 강남역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평일에도 붐비던 거리는 주말에도 거니는 사람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한산해졌다. 카페의 하루 매출액은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지혜씨, 주 1.5일로 단축 근무를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나흘씩 일하던 지혜씨에게 카페 사장은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지혜씨는 “네,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110만원 남짓했던 알바 급여는 절반 이하인 50만원으로 줄었다. 동료 알바생 7명도 같은 처지였다. 새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알아봤는데 자리가 없어요. 카페 알바 자리 하나에 100명이 몰렸다는 뉴스도 봤어요.”


애초 지혜씨가 예상했던 2020년은 이런 해가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사립 전문대학 디자인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지혜씨는 몇 달 전 항공사 승무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남들보다 준비가 늦었다고 생각해 졸업과 동시에 취업 계획을 촘촘히 짰다. “지난해 하반기에 토익 학원에 다니며 준비를 시작했어요. 올해 2월까진 토익 점수를 끌어올리고 3월부터는 알바와 승무원 학원을 병행하면서 하반기까지는 취업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토익 시험이 두 달간 중지되면서 계획은 이 빠진 톱니바퀴처럼 삐걱대기 시작했다.


토익 시험은 4월 하순 재개됐지만, 더 큰 문제는 취업이었다. 국제선 운항이 90% 이상 중단된 상황에서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상반기 공개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공항 주변에서 일하는 이들이 줄줄이 실직하고 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올해 여름이나 가을에도 항공사 공채가 뜰지 모르겠어요. 벌써 5월인데….” 지난 7일 <한겨레>와 만난 지혜씨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코로나19가 장기 불황의 그늘을 드리우면서 안 그래도 불투명했던 청년들의 삶에 불안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언제 복구될지 모를 채용시장의 암울한 전망에다 알바 자리마저 속속 증발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청년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잃고 허덕이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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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도 토익도 연기…시계 제로가 된 미래


<한겨레>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취업준비생 15명을 대면 또는 전화통화로 심층 인터뷰했다. 인터뷰한 15명 가운데 11명이 공채 연기와 자격증 시험 연기 등으로 붕 뜬 처지가 되었다고 답했다. 미래를 위해 척박한 현실을 견뎌내고 있던 20대 취업준비생들은 난데없는 ‘코로나 사태’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서울의 4년제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과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김수진(가명·27)씨는 인터뷰 내내 “답답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수진씨는 지난해 봄 1년 동안 일하던 작은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서 퇴사한 뒤 재취업 준비에 나섰다. 그가 다녔던 회사는 직원에게 ‘허위 광고’를 만들라고 했다. 고민 끝에 사직서를 썼다. 새 직장은 적어도 편법을 강요하는 회사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상반기 공기업 취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틈나는 대로 대기업 취업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수진씨의 1순위는 상대적으로 채용 인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한 공기업이었다. 이 회사 입사에 필요한 한국사능력시험을 준비하고, 경영·경제학을 공부했다.


지난 1월 마침내 기다리던 채용문이 열렸다. 하지만 원서 접수 한 달 만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필기시험 일정이 두 차례 연기됐다. 2~3순위로 마음에 뒀던 공기업·대기업들도 채용을 미루거나 공고를 내지 않았다. 토익 시험도 잇따라 연기됐다. 수진씨는 어떤 공부를 더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잇따른 연기로 경쟁률이 올라 그만큼 문턱이 높아진 공기업 채용에 매진하기 위해 일단 대기업 도전은 접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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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수진씨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있다. 전남의 한 소도시 출신으로 서울에서 자취하는 수진씨는 공과금을 포함한 월세 50만원을 동생과 나눠서 내고 있다. 그가 구직에만 전념할 수 있는 건 5월까지다. “5월이 지나면 전 직장에 다니면서 모아둔 돈이 딱 0원이 되거든요.” 반년 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받아온 청년구직지원금 역시 5월이면 끊긴다. 그나마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정도가 수진씨에게 유일한 희소식이다.


수진씨는 스스로를 집에 가뒀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외출하지 않는다. 다니던 독서실을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하려고 작은 책상도 샀다. 평소에는 한 달에 12만원 정도 썼던 외식비를 지난 2월부터 3만~4만원 정도로 줄일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런데도 결국 돈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퇴사했던 회사와 비슷한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취업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하기 싫었던 일들을 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나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까지 수진씨 같은 취준생들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런 취준생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지원 사업에는 전에 없이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만 19~34살 미취업 청년에게 반년 동안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서울시 청년수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상반기 1차 모집에는 보름 동안 1만4천명이 지원했는데, 올해 상반기 1차 모집 때는 8일 만에 2만7천명이 몰렸다. 지난해의 절반인 모집기간에 지원자는 갑절로 뛰었다. 지원 예산이 지난해보다 5배 늘어나기도 했지만,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진 청년들이 그만큼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영경 서울시 청년청장은 “상반기에 청년수당에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면 하반기(2차) 모집 때는 청년수당을 받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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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알바마저 경쟁 내몰려…“막막하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채용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청년들은 알바를 얻기 위한 경쟁에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한겨레>가 인터뷰한 청년 15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명은 최근 두 달 동안 알바에 지원했다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신호일(25)씨는 ‘알바 구직난’을 절감하고 있다. 2년여 동안 케이블방송 업체에서 파견직으로 일해온 호일씨는 올해 ‘스펙’을 올려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는 꿈을 꿨다.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택배 물류센터 일용직 알바로 일하며 ‘투잡’을 뛰었기 때문에 파견근무가 끝나고 새로운 일을 구하는 동안의 생활비도 알바 급여로 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호일씨의 계획 역시 코로나 사태로 산산이 부서졌다. 물류센터 알바 일이 지난 3월 끊겼기 때문이다.


업체 쪽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사람들이 매일 들고 나는 일터의 환경을 바꿨다. 수십명의 일용직 알바 대신 3~9개월 안정적으로 일할 ‘단기 계약직’ 몇명만을 채용하기로 했다. 새 택배회사에 들어가려고 알바 정보를 꾸준히 알아봤지만, 호일씨가 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있다. 호일씨는 “코로나19 확산 뒤에 일용직 알바 고용 경쟁에 새로운 ‘참여자’들이 등장한 것 같다”고 했다. 22살에 군에서 제대한 뒤 서울의 주점, 편의점, 코인노래방, 푸드트럭 등에서 일하며 알바에는 이미 이골이 난 그다. 그런 호일씨가 느끼기에도 지금의 치열한 경쟁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풍경이다. “예전에는 주변 편의점에서 ‘일손이 부족하니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쪽이었거든요. 요즘은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예요. 외국인 유학생들까지 몰려요. 2월에 물류센터 알바를 하러 갔을 때는 국제학교 계약직 교사와 같이 일했어요.” 개학이 미뤄지며 일자리를 잃었다는 그 계약직 교사는 “하루하루 알바를 하며 구직 중”이라고 호일씨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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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미래…청년들의 ‘코로나 블루’


이달 초 호일씨가 파견직으로 근무하던 직장의 계약기간 2년은 끝났다. 호일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감당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은 힘을 짜내 버텨야 하지만, 안정적인 알바도, 새로운 취업의 문도 열리지 않아 막막한 상태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청년 구직자들이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지는 ‘코로나 블루’ 현상을 겪는다. 지난달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 구인·구직 앱 ‘알바콜’이 공동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 구직자와 대학생의 21.7%는 ‘코로나로 인한 채용 중단, 연기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함’을 그 이유로 꼽았다. <한겨레>가 만난 청년들도 ‘코로나19 이후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끝이 어딜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불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뉴스가 쏟아지지만, 불황이 언제 끝날지, 미래의 전망을 어디까지 낮춰야 할지 등에 대해 누구도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생활력이 강한 편이라고 자신해왔던 호일씨도 코로나19 이후 마음속에 자꾸 불안감이 생긴다고 했다. “알바를 구하면서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어쩌면 취업 시장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기업들도 코로나19 이후에 사람 뽑는 방식을 바꿨을 텐데, 취업 준비한다고 해서 채용될까?’ 그런 마음 있잖아요. 이것저것 다 안 되네요. 막막해요.”


박준용 배지현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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