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4곳 4색 고궁 산책 안내서

서울의 가을, 무르익는 궁

by한겨레

도심의 가을은 궁에서 빛난다. 궁궐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서울 안에서도 기운이 가장 조화로운 곳에 터를 잡았다. 600년 동안 도시가 흥망성쇠를 거듭할 때, 오롯이 제자리를 지킨 궁궐에는 깊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거듭되는 야근 때문에 씩씩거리며 광화문을 지나가다, 문득 이지러진 달을 보면 세상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듯도 하다. 새벽이슬에 뽀얀 안개를 피운 종묘를 걷던 날,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의 숨은 아름다움을 만났다며 진정 뿌듯해했다. 그제야 나도 아! 하고 돌아본 여기, 서울. 왜 그토록 먼 곳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던 건지. 머뭇거리는 동안 올가을도 빨갛게 물들었다. 그 절정을 놓치지 말고, 오는 주말에는 가벼운 몸으로 답사객이 되어 서울 궁궐에 가보자.

자녀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전하는 법, 경복궁

서울의 가을, 무르익는 궁

경복궁

가족 단위 답사객들은 먼저 경복궁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 아이들은 최근 끝난 청춘 사극드라마의 배경이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어른들은 밥벌이에 눌려 까맣게 잊었던 계절감을 되찾을 수 있다. 조선의 ‘법궁’이자 600년 도시의 시작점인 경복궁은 전각마다 이야기가 가득하다. 왕과 왕실의 집이자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던 궁궐 안뜰에서 만나는 위엄도 느껴진다. 왕도를 따라 시간과 공간을 사색하다 보면 무너진 마음도 재건되는 기분인데, 이게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니겠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조선총독부의 비대한 덩치에 끊겼다가 상처를 딛고 비례미를 되찾은 아름다운 궁궐은, 창살 하나 기둥 하나마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오늘날 경복궁은 다홍치마와 짙은 남색 도포를 휘날리며 한복의 맵시를 뽐내는 젊은이들 덕에 손주 본 할아버지마냥 싱글벙글 웃는 모양새다. 이 싱그러운 행렬에 발맞춰 ‘경복궁 다례 체험’이 가족 단위 방문객을 맞고 있다. 덖은 찻잎을 우려내는 동안 침묵 속의 소통법을 배울 수 있으니, 고요하고 따스한 응원을 자녀에게 선물할 수 있다.

경복궁 다례 체험: 소주방 내 샘물방, 11월26일까지 토요일마다. 예약 필수 02-3210-1645

왕의 비밀 정원에서 책을 들고 노닐다, 창덕궁

서울의 가을, 무르익는 궁

창덕궁 후원

필요한 만큼의 아름다움,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정경.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자연스러움에 한 걸음 다가갔다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은 그 겸손한 한국의 미학을 도심 한복판에서 깨우쳐준다.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이끼 낀 바위, 화석이 된 나무, 물길을 살린 폭포수 옆에 소박한 방 한 칸은 정조와 같은 선군들이 홀로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짓던 공간인데, 조촐한 환경이어야만 글의 참뜻을 깨우치게 된다는 지난 왕들의 고집과 숨결이 묻어난다. 그 뜻을 이어 창덕궁 내 서향 가득했던 4개 공간에서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프로그램이 열린다. 옛 과거 시험장이던 영화당, 서책을 보관하고 말리던 규장각, 단풍 절경이 유명한 부용정 주변은 문화재 해설사들도 강력히 추천하는 공간이다.

 

또한 왕의 보좌기관을 둘러보는 ‘궐내각사 특별관람’ 프로그램도 11월 한시적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해 평이 좋아 관람객이 제법 있다. 창덕궁 누리집에서 회당 30명씩 선착순으로 받으니, 관심이 있으면 서둘러야 한다.

  1.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후원에 있는 정자-영화당, 존덕정, 취규정, 농산정. 15일까지
  2. 궐내각사 특별관람: 금~일요일 낮 2시. 30일까지
  3. 창덕궁 후원과 궐내각사 특별관람은 정해진 시간마다 예약 입장 www.cdg.go.kr

해시태그로 쌓는 여자들의 우정 여행, 창경궁

서울의 가을, 무르익는 궁

창경궁

창덕궁 후원은 자연스레 창경궁까지 닿으니, 발길을 이어간다. 창경궁은 그 담담한 앉음새가 매력인데다가 다른 궁궐에 비해 붐비지 않는 편이다. 자유로운 공간은 오로지 가족사를 위해 조성되어 왕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했다. 왕비의 침전이었던 통명전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해하려고 저주의 물건을 묻었다는 바로 그 비화의 무대다. 한복을 갖춰 입고 친구끼리 사진 찍으러 나온 이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단풍 내려앉은 춘당지 주변도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한복 입은 사람은 무료 / 문의 02-762-4868

숨 가쁜 직장인들을 위한 1000원의 행복, 덕수궁

서울의 가을, 무르익는 궁

덕수궁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려면 1만 원 한 장이 빠듯한 것이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학생들처럼 한복 곱게 차려입고 고궁을 거닐고 싶지만,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몰아 자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던가. 시청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금요일 점심을 이용하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5분 일찍 나와 덕수궁 ‘정오 음악회’로 달려가면 입장료 1000원으로 스타벅스 드립커피와 격조 있는 야외 공연, 덕수궁 단풍을 누릴 수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하다면 고종이 연회를 즐기고 가배차를 마셨다는 정관헌을 한 바퀴 돌거나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회 하나 챙겨 볼 수 있으니, 짧은 휴가를 즐기는 심정으로 마음껏 탐색해 보기 바란다.

덕수궁 ‘정오 음악회’: 석조전 분수대 앞, 11월11일까지, 매주 금요일

서울 궁궐 여행 팁

  1. 모바일 통합서비스 ‘내 손안의 궁’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서울 4대 궁과 종묘의 관광정보, 행사 안내, 주요 유적지와 궁궐 이야기, 궁궐 내 무료 와이파이존 등을 편하게 볼 수 있다.
  2. 매표소에서 ‘궁궐통합관람권’(1인 만 원)을 사면 한 달 동안 서울 4대 궁궐과 종묘를 무제한 방문할 수 있으니, 걸음 느린 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글·사진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