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라오스의 특별한 경험

[여행]by 한겨레

오지도 정확하게 표기된 게코 지도

그 종이 지도가 안내하는 길 따라 여행

메콩강 환상의 길 그리며 떠났으나

오토바이 바퀴가 빠지는 등 고생

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추억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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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므앙씽의 새벽시장 풍경. 사진 노동효 제공

“여긴 찾아오기도 힘들고, 그러니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잖아요.” 동행한 M이 그렇게 말했을 정도로 외딴 오지에 우리가 들어선 건 순전히 한 장의 지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난밤 나는 라오스 서북단 므앙씽의 숙소에서 1:75만 축적 라오스 지도를 아내와 M 앞에 펼쳐놓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더랬다.


“게코맵스에서 만든 이 종이 지도엔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길까지 다 그려져 있어. 1000m 넘는 산이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오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있더라니까. 거리도 정확하고 포장도로, 비포장도로 등 도로 상태까지 정확해. 아침 먹고 출발, 서쪽으로 75㎞를 달리면 점심쯤엔 미얀마와 맞닿은 씨엥콕에 닿아. 비포장도로지만 지방도니까 힘들진 않을 거야. 점심 먹고 나선 메콩강 따라 환상의 길을 달리는 거지. 골든트라이앵글까진 80㎞만 더 가면 돼. 한강을 보면서 자전거 타듯 메콩강을 보면서 오토바이를 타는 거지. 하하하, 내일은 날씨도 좋다고 하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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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오지 여행을 하는 동안 이용한 게코사 제작 지도. 사진 노동효 제공

얼마나 설레는지 저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웃으며 지도를 내려다보다가 보르헤스의 단편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가 떠올렸다.

‘그 왕국 지도술은 너무나 완벽해서 (행정구역) 한 도의 지도가 한 도시 전체를 덮었고, 왕국의 지도는 한 도를 덮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학자들은 이 광대한 지도도 부족하다고 여겼던지 왕국과 같은 넓이로 왕국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보르헤스가 과학에서의 (과도한) 정확성을 비판하기 위해 가정한 1:1 축적 지도는 디지털 지도의 등장으로 현실이 되었다. 20세기를 살았던 그는 손바닥만 한 화면에 지구를 덮을 정도의 지도가 들어가고, 수억장으로 복제되는 첨단기술을 상상하진 못했으리라. 아무튼 온라인 지도까지 등장하면서 여행의 판도는 바뀌었다. 이제 종이 지도를 품고 다니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게코사 지도만은 꼭 챙겼다. 게코사는 여행자들의 제보를 받아 업데이트하면서 아시아 오지에 관한 한 최고의 정확성을 갖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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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여행을 하는 동안 필자가 타고 다니던 110㏄ 오토바이. 사진 노동효 제공

일찍 일어나 므앙씽 새벽시장에서 사골육수에 든 전분국수, 카오삐약 한 그릇을 먹고 출발했다. 뒷좌석에 배낭 멘 아내를 태우고, M은 뒷좌석에 배낭을 올리고 서쪽으로 달렸다. 마을을 벗어나 15㎞쯤 달렸을까? “엉덩이가 아파서 못 견디겠어.” 등 뒤에서 아내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핸들을 쥐고 있는 나도 바퀴가 쿵쿵거려 팔꿈치가 아플 정도였다. 비포장도로인줄은 알았지만, 굵은 돌멩이가 지천으로 깔린 길을 지나야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게코맵스사 지도라도 길바닥의 재질까지 알려주진 않았으니까.


더 이상 엉덩이가 아파 못 견디겠다는 아내와 교대해서 뒷좌석에 앉았다. 30분쯤 지나자 팔꿈치가 아팠던 건 엉덩이 아픈 데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쿵쿵쿵. 포기하고 그만 돌아갈까? 그러나 60㎞만 더 가면 메콩강 따라 환상의 길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니 가던 길을 접을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나나 농장 샛길을 지나 마침내 씨엥콕에 닿았다. 평화로운 강변 풍경을 보며 카오삐약 한 그릇을 먹은 뒤 선착장에 내려갔다. 근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마을을 오가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한쪽 편을 가리켰다, 한줄기 황톳길이 언덕을 향해 있었다. 지나는 어른에게도 물었지만, 답은 같았다. 아, 언덕을 올라야 메콩강이 내려다뵈는 환상의 길이 펼쳐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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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비포장도로. 대부분이 황톳길로서 비에 젖으면 진창이 된다. 사진 노동효 제공

그러나 언덕에 오르기도 전 사고가 났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 위해 속력을 올렸는데 그만 돌부리에 앞바퀴가 부딪치면서 오토바이가 수직으로 섰고, 뒷좌석의 아내가 굴러떨어졌다. 몸을 틀면서 내가 핸들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오토바이에 깔리는 사고는 면했다.


“그만 돌아갈까?” 아내가 물었다. 진정하며 생각해보았다. 돌아서면 다시 돌멩이가 깔린 비포장도로를 지나가야 한다. 대신 언덕만 오르면 메콩강이 내다뵈는 환상의 길일 것이다. “내가 배낭 메고 걸어갈 테니 자기 혼자 오토바이 타고 저기까지 올라가면 괜찮을 거야.” 먼저 언덕 위에 도착한 M이 메콩강이 당장 보이진 않지만, 평탄한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한참을 지나도 메콩강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지척을 지나지만 비탈의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황톳길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더욱 질퍽거렸다. 바퀴가 빠지고, 아내가 내리고, 오토바이를 함께 밀고 끌길 수차례. 지도를 보며 상상한 풍경과 딴판인 길이 연속되자 오늘 중 목적지에 닿을 수나 있을지 염려되었다. 그때 우지끈 벌목한 나무들을 실은 트럭이 잔가지를 부러뜨리며 다가오더니 지나갔다. 큰 바퀴가 지나간 자리는 물웅덩이로 변해 있었고, 이젠 5㎞를 가는데 한시간이 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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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몰고 나타나 필자 일행을 구원해준 고산족 아저씨. 사진 노동효 제공

돌아갈까? 그러나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씨엥콕에서 온 시간만 해도 4시간, 돌아가더라도 도중에 해가 질 테고 야영 장비 없이 밀림에서 밤을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한숨을 쉬는데, 등 뒤에서 털털 경운기 소리가 들렸다. 고산족 원주민이었다.


“저기요, 저기요, 얼마나 더 가야 마을이 나오죠?”


“어디로 가는 길이래요?”


“골든트라이앵글까지요.”


“이쪽 길은 험해서 오토바이론 못 가요. 조금 더 가면 마을이 나오니까 자고 다시 돌아가더래요.”


북라오스 특유의 억양 탓에 띄엄띄엄 들렸지만, 대충 이해했다. 사내에게 부탁해 경운기에 배낭을 싣고 아내를 태웠다. 툴툴. 경운기 따라 숲 샛길을 지났다. 한시간가량 좁은 길을 지나자 갑자기 앞이 훤하게 터지며 마을이 나타났다. 서른여채의 집, 흙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선량한 사람들의 눈동자.


“이건 뭐, 완전히 <웰컴 투 동막골>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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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판 동막골에서 만난 갓난 아기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 사진 노동효 제공

십승지지(十勝之地) 같은 마을이었다. 전쟁, 흉년, 전염병 같은 환란이 세상을 뒤덮어도 안심할 수 있는 땅. <정감록> 등 예언서에서 십승지지의 기준은 첫째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둘째 물이 풍부하고, 셋째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터여야 한다. 결국 십승지지는 도시가 아니라 오지다. 실제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뒤덮은 와중에 아르헨티나 오지의 농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차 방문한 경찰에게 물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대체 뭐래요?”


원주민 사내가 마을 초입의 한 집에 경운기를 밀어 넣었다. “이쪽은 내 고모 집이래요. 날이 곧 어두워질 거니까 이쪽에서 하룻밤 묵어가더래요.” 사내가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등 뒤에 선 이방인들을 가리키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를 데리고 온 연유에 관해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곧 안주인이 웃으며 우리가 묵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밖에 나왔다. 어떤 마을인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이방인을 보자 몰려들었고, 우리가 한 걸음 다가서면 “으악!” 달아나며 깔깔거렸다. 오지 마을에 갈 땐 노인들을 위해 파스 같은 의약품을, 아이들을 위해 칫솔과 치약을 선물로 가져갔지만 이번처럼 느닷없이 마을을 만날 줄은 몰랐기에 따로 준비한 선물이 없었다. 마침 동네 구멍가게가 있어서 과자를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금세 친해진 아이들을 따라 이집 저집 구경을 하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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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묵은 아카족 집의 주인. 사진 노동효 제공

잠자리가 마련된 집에 갔다. 푸짐한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만 채워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불청객을 먹이기 위해 온 가족이 닭까지 잡아 밥상을 차려놓았다. 가족들은 우리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며 “헤” 하고 입을 벌리며 웃었다. 이방인이 왔다는 소식에 일가 친척도 찾아왔다. 한 사내가 술을 마시느냐고 내게 묻더니 술을 내왔다. 도수 40도가 넘는 라오스식 소주였다. 술을 들이켠 뒤 내가 “크으” 하고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식탁을 둘러싼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달이 떴다. 은하수가 수천년에 걸쳐 늘 보던 풍경이라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원주민의 만류대로 왔던 길을 돌아 나오기로 했다. 환상은커녕 고난으로 가득 찬 길이 되리란 걸 이젠 짐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메콩강 따라 환상의 길을 달리겠다던 나의 호언장담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리는 씨엥콕까지 숲 사이 진창길을 빠져나오고도 바나나 농장 샛길을 지나 자갈투성이 길을 하염없이 달려야 했다. 그래서 후회했냐고? 천만에. 아내와 M과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석양이, 황금빛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우리를 위로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강연호의 <비단길2>의 마지막 시구를 읊어주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글·사진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2020.06.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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