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로 내쫓긴 빙하기 꼬마 나무 더는 갈 곳이 없다

[이슈]by 한겨레

[기후변화 멸종의 위기, 빙하기 식물을 찾아서]


①한라산 돌매화나무


1800여종 식물들이 사는 한라산


온난화로 고도 경계 달라지면서


생태계는 이미 빠르게 변화 중


1500m 이상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제주조릿대·소나무가 영역을 넓혀


시로미 등 고산식물 험지로 내몰아


정상 부근 수직 절벽 다다르니


비로소 보이는 하얀 꽃 수백송이


기온이 1도만 더 올라가면


돌매화나무 더 이상 볼 수 없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암매’로 불리는 돌매화나무는 키가 2~3㎝에 불과한,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꼬마나무다.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적 희귀종인 이 나무가 한반도 남쪽 제주도 한라산에 산다.


지난 4일 이른 아침 <한겨레>는 돌매화나무를 보러 ‘영실’(해발고도 1280m)에서부터 한라산을 올랐다. 사람을 피해 탐방로가 아닌 절벽에 사는 돌매화나무 군락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의 취재 허가를 얻어야 했다.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돌매화나무를 직접 보려면 하늘과 가까이 가야 한다. 바다를 머금은 6월초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산행은 산뜻했다. 한라산에만 사는 ‘좀갈매나무’나 제주특산식물인 ‘제주황기’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윗새오름까지 오르는 영실 코스의 경사는 매우 가팔랐다. 무거운 망원렌즈까지 들고 산을 올라야했던 사진기자의 등산은 더욱 순탄치 않았다.


돌매화나무는 5~6월께 하얗게 피는 꽃이 매화를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시베리아 극지방, 알래스카의 알류산 열도, 캐나다 유콘, 일본 홋카이도와 제주도 한라산 등에서만 자라는 ‘극지고산식물’이다. 모두 한라산보다 위도상 더 위쪽에 있다. 돌매화나무의 전 지구적 남방한계선이 바로 한라산의 고도 1700~1900m 고산지대다. 한라산에서도 정상 부근 암벽에서만 자란다.


돌매화나무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한국 적색목록위급·멸종위기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이 때문에 기사에서는 돌매화나무의 군락지 위치를 상세하게 적지 않기로 했다. 군락지 위치가 공개되면 일부 ‘몰지각한’ 사진가들이 몰려와 나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나무가 귀한 이유는 존재 자체가 ‘지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기후 역사를 보면, 인류가 식물 채집과 동물 수렵을 하며 먹고 살았던 약 258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신생대 4기·플라이스토세) 지구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많게는 10℃ 정도 낮았다. 이때 아시아 대륙은 히말라야에서 러시아 동북부까지 산맥을 따라 빙하가 넓게 덮었고, 극지고산식물의 분포지도 남쪽과 산 아래로 이동했다. 그러다 1만2천년 전부터 현재까지(홀로세)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생육환경이 달라지자 다시 극지고산식물의 분포지도 북쪽과 산 위로 후퇴했다. ‘피난민’ 한라산 돌매화나무는 발이 없어 떠나지 못했다. 동행한 공우석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과거 기후가 어떻게 바뀌어서 현재의 자연이 이뤄졌는지 후손에게 알려줘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 한라산에서 이 나무를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라산 생태계는 이미 변하고 있다. 아열대지역에 위치한 한라산은 고도에 따라 난대성 식물부터 아고산·고산지대 식물까지 18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 ‘식물생태학의 교과서’라 불린다. 그러나 그 경계가 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소나무와 제주 조릿대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주요한 변화다. 영실에서 오르는 등산로 옆으로 높게 선 소나무를 두고 공 교수는 “1500m 이상에서는 소나무가 거의 안 자라는데, 점점 소나무 서식지의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공한 항공사진을 이용해 한라산국립공원 내 소나무림 분포 특성을 분석한 결과, 2006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그 분포 면적이 확대됐고, 해발고도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볏과 대나무의 일종인 제주 조릿대는 습하고 더운 곳을 좋아해 과거에는 해발 600~1400m에서 주로 서식했지만, 이제는 해발고도 1740m인 윗새오름을 지나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제주 조릿대는 확장세가 빨라 고산식물들을 더욱 험지로 몰고 있다. 해발 1600m가량 오르자 등산로 옆길로 조릿대를 피해 바위 위에 겨우 자리 잡은 시로미 군락이 눈에 들어왔다. 시로미는 국내에서 백두산과 한라산에만 서식하는 대표적 고산식물로, 과거 진나라의 진시황이 동쪽으로 신하 ‘서복’을 보내 구해왔다는 불로초로 추정되는 전설 속 나무다. 극지의 이누이트족은 시로미 열매로 차와 잼을 만들어 먹는다. 바람이 센 고산지대에서는 키 큰 나무가 살 수 없기 때문에 돌매화나무나 시로미같이 키 작은 나무(관목)가 마치 방석처럼 드문드문 자라는데 시로미가 조릿대에 밀려 바위 위에 겨우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상을 향해 더 올라가자 구상나무·주목 등 또다른 극지고산식물들이 하얗게 말라버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행한 정지영 디엠지(DMZ)자생식물원 박사는 “주목은 산림청이 보호하는 고산지대 침엽수 중 하나다. 생명력이 강하고 목재로도 가치가 높아 ‘살아천년·죽어천년’이라고 불리는 나무”라고 아쉬워했다.


나무들이 죽어가는 원인으로 기후변화 가능성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공 교수는 “바람이 세지면 증산활동(식물의 물이 잎의 기공을 통해 수증기 형태로 나가는 것)이 많아지면서 나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눈이 적게 오는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빨리 시작하는 고온·건조한 봄을 자주 겪으면서 나무가 수분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 고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토양에 수분이 많으면 고사할 확률이 높다’는 반대의 주장이 실린 논문도 공개됐다. 공 교수는 “실제로 증산활동이 활발한 활엽수와 비교해 증산활동이 적은 침엽수의 고사가 전반적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다”며 기후변화와 이들 식물의 고사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윗새오름 휴게소를 통과하고도 좀 더 오르자 정상 부근 수직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서 있을 수직 절벽 아래서 위를 바라보니, 방석처럼 깔린 잎 위로 돌매화나무 하얀 꽃 수백송이가 태양을 등진 북향 사면에 피어 있었다.


돌매화나무는 영양분이 거의 없는 토양에서도 살 수 있는 식물이지만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야 하고 여름철에도 낮은 온도가 유지돼야 한다. 2018년 김태호 제주대 지리교육과 교수 등이 쓴 ‘돌매화나무 서식지로서 한라산 정상 암벽 표면의 온도특성’ 논문을 보면 6~10월 일 최고기온이 20℃를 넘는 남향 절벽은 적합한 자생지가 아니었다. 북향 절벽이라도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사라지거나 무너질 경우에도 돌매화나무 역시 사라질 수 있다.


결국 기온이 더 오른다면 돌매화나무는 더 이상 한국에서는 사라진다. 공 교수는 2014년 ‘한반도 주요 산정의 식물종 분포와 기후변화 취약종’ 논문을 통해 “한라산의 돌매화나무 분포지는 8월 일최고기온의 온도 범위가 19.5℃~20.2℃도로 좁아 한라산 고산식물 가운데 온난화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수목원이 지난해 5월 발간한 도서 <꼬마나무의 자연사와 기후변화>를 보면 기온이 0.3℃만 올라도 돌매화나무 군락지는 축소되고, 온도가 1.2℃ 이상 높아지면 한라산에서 아예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로미도 0.3℃의 기온이 오르면 분포지가 이동하는데 0.6℃ 이상 오르면 분포지가 축소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0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지금 이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30년 1.5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그럴 경우 돌매화나무는 절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귀하다는 돌매화나무의 꽃을 눈에 담았다는 기쁨에 취해 산을 내려오는 길,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돌매화나무는 무엇인가.’


제주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빙하기 식물이란? <한겨레>는 ‘극지고산식물’ ‘고산식물’을 일컫는 열쇳말로 ‘빙하기 식물’이라는 용어를 썼다. 빙하기 때 한반도에 자리 잡았으나 다시 기온이 오르는 간빙기 때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남았다. 육지에 떠 있는 섬처럼 우리나라 고산대와 아고산대의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격리되어 분포한다. 한반도 숲의 역사와 자연사를 이해하는 열쇠이며,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멸종할 수 있는 생태계의 약자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1.1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