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끼만두와 군만두가 다른 거라고?

[푸드]by 한겨레
한겨레

식당의 풍경, 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수많은 그림이 생각난다. 나는 그 풍경 중에서 어정쩡한 시간대 한 장면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 오후 서너 시, 손님이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무렵,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다듬는 식당 여인들의 모습이다. 그네들은 막 밥 한 상을 받아먹은 나 같은 뜨내기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즐겁게 떠든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탁자에 놓은 나물거리만큼 풍성하다. 쉴 때도 일하는 식당의 여인들.


중국집에서도 그런 풍경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과거형이다. 이제는 대부분 그 애매한 시간에 만두를 빚지 않는다. 중국집은 만두의 생산지가 아니라 소비지다. 한때는 생산과 소비를 다 이루었던 식당들이, 압축된 소비시장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버렸다. 만두를 빚지 않는 중국집, 국수를 밀지 않는 칼국숫집, 닭을 손질하지 않는 치킨집…. 효율과 그놈의 인건비와 월세와….


모여 앉아 만두를 빚던 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야끼만두와 군만두는 같은 말인데, 우리말인 후자가 득세할 무렵, 공교롭게도 각자 손맛으로 빚던 만두는 얼추 사라져버렸다. 만두는 이제 식당 주인이 업자에게 전화하면 온다. 만두에 돈 받으면 손님이 화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만두는 ‘서비스’가 되었다. 그것은 다분히 핑계일 수도 있다. 군만두 값을 청구하면 좋아할 손님이 이제는 훨씬 많다. 그러나 중국집은 이제 힘이 없다. 어정쩡한 어딘가에 서서, 이 일을 계속할지 고민한다.


야끼만두는 ‘구운 만두’란 뜻이다. 줄여서 군만두다. 야끼만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쪽만 지지든가, 두 면 다 지지든가. 철판이나 프라이팬을 쓴다. 라멘은 원래 중국요리의 일종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도 라멘집 하면 대개는 야끼만두를 판다. 한쪽은 지지고, 물을 살짝 부어서 뚜껑을 덮어 윗부분을 촉촉하게 익히는 방식(셩젠·生煎)을 쓴다. 군만두와 찐만두의 중간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야끼만두를 참 좋아했다. 중국집 메뉴판에서 요리부도 아니고 식사부도 아닌 어정쩡한 야끼만두. 주문하면 주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야끼만두. 비싸게 받을 수도 없지만 일일이 한 개씩 빚어야 탄생하는 괴로운 야끼만두. 끝내 ‘야끼(굽기)’ 하지 않고 튀기기 시작해버린 비운의 야끼만두. 지금 우리가 먹는 군만두는 실은 굽지 않고 튀긴 것이다. 튀겼으되, 아직도 이름은 야끼만두(군만두)인 이상한 중국집의 사정.


원래는 군만두와 튀긴 만두는 서로 다른 종류였다. 기호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군만두는 별도로 철판에서 구워야 했으나, 튀긴 만두는 언제든 끓고 있는 기름 솥에 던져 넣으면 됐다. 섬세한 불 조절을 할 필요도 없이 특유의 그 색깔이 나오면 다 익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튀긴 만두가 군만두의 자리를 빼앗아버렸으리라. 한때 외식 시장에서 일등이었던 중국집의 몰락은 아마도 이 시기와 대략 일치하는 것 같다.


내게는 옛 시절의 군만두를 찾아 먹으러 다닐 의욕까지는 없다. 튀긴 만두도 얼마나 맛있는데. 까슬까슬한 모래를 뿌린 것처럼 바삭한 만두 껍질을 씹으면서 이과두주나 맥주를 마신다. 만두를 씹으면 기름이 얼마쯤은 흐르게 마련인데, 그 기름이 입술을 반짝이게 해줄 정도에 그치느냐, 아니면 입술의 경계를 넘어 턱으로, 다시 목젖까지 흘러버리느냐가 그 집의 성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튀김이란 기름을 빨아들이게 마련이지만, 만두의 껍질 속으로 담뿍 들어가 버리면 곤란하다. 군만두 한 접시에 서비스로 기름 한 컵을 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군만두(실은 튀긴 만두)를 시키면 이런 요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두 가지 소스와 무안 황토 양파, 일본식 단무지를 곁들인 전화로 주문한 공장 만두.”


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타면 제1소스, 물을 쳐서 묽게 만든 춘장이 제2소스가 된다. 어느 것에 찍어도 맛있다. 2를 찍고 1을 더 찍어도 좋다. 제1소스를 찍어서 만두를 입에 넣고, 제2소스에 날파나 날양파, 단무지를 묻혀 추가로 입에 넣어도 맛있다. 물론 손으로 빚는 만두라면 훨씬 맛있을 거다. 오늘도 ‘이걸 계속해야 해?’ 하고 고민하는 수제 군만두 중국집들이여. 부디 버티시길.


글·사진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2020.07.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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