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없다

[컬처]by 한겨레

[책&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19) 오이디푸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랍니다


‘콤플렉스·저주·불행’으로만 기억되는 비극의 주인공


죽음으로 진실 은폐하지 않고 대면한 용기있는 인물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행을 피할 길이 전혀 없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의 내용도 정확히 알고, 불행의 대가도 정확히 아는데도, 그것을 전혀 피할 방도가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 왕>은 바로 그런 치명적인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처절한 모험을 그린다. 오이디푸스에 대한 세간의 풍문은 너무 많아 오히려 오이디푸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커다란 방해가 된다.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인간, 이 세상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골고루 타고난 인간, 지지리도 운이 없는 인간이라는 풍문이 대표적 오해다. 오이디푸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끔찍한 출생의 비밀을 타고났지만, 저주만이 그의 정체성은 아니었다. 그는 테베 역사상 가장 뛰어난 통치자였고, 누구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첫번째 인간이었으며, 그 유명한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저주받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흔들림 없는 왕권과 행복한 가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지성과 강건한 육체, 게다가 백성들의 사랑까지, 그에게는 없는 것이 없었다. 완벽한 인간이 존재한다면 바로 오이디푸스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 가공할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운명은 정확히 그의 편이었다. 소포클레스는 단순히 저주받은 인간의 비극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에게 닥쳐오는 단 하나의 불행을 피하지 못한 한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치열한 선택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진짜’ 오이디푸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오이디푸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라이오스가 저지른 치명적인 악행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 라이오스의 유년시절은 평탄치 못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아직 소년이었던 라이오스를 대신해 섭정을 맡은 사람은 외할아버지 닉테우스의 형제 리코스였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어진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와 친해지고, 라이오스는 아름다운 청년 크리시포스에게 반해버린다. 제우스가 푹 빠질 만큼 잘생긴 크리시포스를 향한 라이오스의 소유욕이야말로 비극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라이오스는 크리시포스를 강간하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치욕을 견디지 못한 크리시포스는 자결해버리고 만다. 이때부터 ‘오이디푸스의 저주’는 시작된다. 크리시포스의 아버지 펠롭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라이오스의 아들, 오이디푸스에게 저주를 내림으로써 끔찍한 비극의 복수를 기획한 것이다. 크리시포스의 아버지 펠롭스는 라이오스가 아들을 낳는다면 바로 그 아들이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일 것이라고 저주한다. 어떻게든 저주를 피하고 싶었던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자마자 잔인하게 버리고, 저주의 여파가 자신의 삶에 털끝만치도 닿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간다.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이제 날 죽일 사람은 없다’고 위안하며 지내던 라이오스는 여행 중 만난 낯선 남자 오이디푸스의 분노를 자극하여 죽임을 당하고 만다. 라이오스의 수행원이 찌른 칼에 오이디푸스가 타고 있던 말이 죽자 오이디푸스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라이오스 일행을 살해한 것이다. 마치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내면화한 사람처럼,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라이오스는 그 누구에게도 결코 길을 양보하지 않다가 이런 화를 당한 것이 아닐까.


오이디푸스를 가로막는 단 하나의 장애물, 라이오스가 사라지자 그의 삶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그는 아무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고, 테베의 왕이 되었으며, 이오카스테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테베에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돌면서 오이디푸스의 시련이 시작된다. 전염병으로 점점 폐허가 되어가는 테베를 구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저주를 풀기로 한다. 라이오스왕을 죽인 살인자가 테베 안에 있기에 전염병이 물러가지 않는다는 신탁을 해결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왕의 살해자를 찾기 시작했고, 시체조차 없는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또 한번 그 엄청난 지성의 힘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토록 저주했던 라이오스의 살해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되자 비극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편 오이디푸스와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던 이오카스테가 자신이 아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음을 깨닫고 자결을 하고 만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사랑하는 아내이자 이제야 드디어 찾아낸 생모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이오카스테의 옷에서 황금 핀을 빼내 자신의 두 눈을 미친 듯이 찌른다. 오이디푸스가 꿈꾸는 모든 사랑의 유일한 해답이었을 이오카스테. 그 비극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오카스테의 시신을 품어 안고 피를 철철 흘리는 오이디푸스의 형상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너무 많은 피가 흘러넘쳐, 두 사람의 몸이 마침내 한몸이 되어 흘리는 핏줄기인 것만 같았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를 끌어안고 피를 흘리는 오이디푸스는 그렇게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극의 화살을 온몸으로 다 맞으며 고통의 핵심을 맨얼굴로 대면한다. “나라는 사람은 태어나선 안 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결혼해선 안 되는 사람과 결혼했으며,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을 죽였구나.”


죽음이라는 가장 확실한 도피를 ‘회피’하다


그는 비극의 전모를 명명백백하게 파악하고도 그 비극으로부터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았다. 비극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에 사태를 덮어버릴 수도 있었으나, 결코 진실을 은폐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비극의 진흙탕 속에 자신의 온몸을 던져 모든 비극의 화살을 홀로 맞으려 한다. 이 비극의 끔찍한 역설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참사의 주인공이 오이디푸스라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후의 비극은 오이디푸스 스스로의 다짐과 약속 때문이었다. 라이오스왕을 죽인 자는 반드시 테베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것, 그 누구도 그를 집안에 들이지 못하고, 어떤 사람도 그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약속’은 바로 오이디푸스 스스로가 한 것이었다. 테베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시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가자 오이디푸스는 이 모든 것이 ‘라이오스의 저주’ 때문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 저주의 책임자를 처벌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인 고통의 영원한 종말,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 살아남아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비극의 의미를 매순간 곱씹는 길을 택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가장 확실한 도피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살아서 비극의 의미를 견디는 길을, 살아서 비극의 의미를 매일매일 헤아리는 길을 택했다.


그는 혼자 비극의 결말을 온전히 짐 지고자 했지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딸이자 누이이자 마지막 친구였던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눈먼 아비를 끝까지 지켜준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와 함께 유리걸식하고, 함께 치욕을 견디며, 그들을 향해 던져지는 온 세상의 돌팔매를 함께 맞아주었다. 그를 파괴한 것은 아버지 라이오스의 망가진 삶이었지만, 그를 끝내 지켜준 것은 딸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그를 지켜준 것은 끝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고통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한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다. 오이디푸스는 위대한 인간의 추락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추락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 자신의 삶을 지켜낸 자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가 저지른 죄조차 끝내 끌어안은 한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다.


내가 꿈꾸는 새로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그림자와 대면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고결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 억울하다고 절규하지도 않고, 자신을 조금만 봐달라고 그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크레온에게 자식들을 부탁하면서, 나는 기꺼이 추방당하겠으니 우리 아이들을 제발 보살펴달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남긴다. 오이디푸스는 마지막까지도 따스한 아버지의 정을 잊지 않는다.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간의 위대함은 비극을 피하는 영리한 기술을 갖춘 영웅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의 주인공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 운명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용기가 아닐까. 그는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 그 운명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운명일지라도. 오이디푸스는 불행에 굴복한 자도, 지지리도 운이 없는 자도 아니었다. 내 안의 그림자와 싸워 마침내 그 그림자의 어둠이 보여주는 극한까지 걸어간 용기 있는 자, 신의 도움 없이 오직 인간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의 길을 개척한 용감한 존재였다.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운명의 빚까지 모두 스스로 짐 지고 머나먼 길을 떠난, 지독히도 쓸쓸하고 끝내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정여울 작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 ▶2005년 이전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7.29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