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태도’ 비판한 남희석 때리기가 트집인 이유

[컬처]by 한겨레

토론이 싸움으로 오해받을 때

김구라 토크 방식 문제 제기

남희석을 비판하는 일부 여론

동료 ‘실명 거론’은 무례하다?

김, 거침없는 태도로 유명세

아는 사인데 사적으로 풀라?

방송 무대인 전파는 공공재

한겨레

2017년 3월 <라디오스타> (문화방송)에 출연한 코미디언 남희석. 그는 최근 “2년 이상 고민하고 올린 글”이라며 김구라의 토크 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전체공개로 올렸다.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초대 손님이 말을 할 때 본인 입맛에 안 맞으면 등을 돌린 채 인상 쓰고 앉아 있다. 뭐 자신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참 배려 없는 자세다. 그냥 자기 캐릭터 유지하려는 행위. 그러다 보니 몇몇 짬 어린 게스트들은 나와서 시청자가 아니라 그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지난 7월29일, 코미디언 남희석은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전체 공개 글로 코미디언 김구라의 토크 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남희석은 금방 해당 글을 삭제했지만, 유명인이 온라인에 올린 글들이 대체로 그렇듯 글은 이미 이미지 파일로 캡처되어 온 인터넷을 순회 중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남희석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가 비판이 부당하다며 비판했고, 남희석은 이에 일일이 “죄송하다”고 답변하면서도 “2년 이상 고민하고 올린 글”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누구에게나 남희석의 김구라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김구라의 캐릭터나 그 발화 방식이 예능적인 문법 안에서 허용되는 범주라 생각해 남희석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김구라의 토크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김구라를 공개 비판한 남희석이 그랬듯, 남희석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남희석을 비판할 자유가 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흥미롭다 여긴 것은, 남희석을 비판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비판 내용이 아니라 비판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동료의 실명을 거론하며 할 말은 아니다”라며 실명 비판을 지적하는 이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둘이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면 되지, 그걸 이렇게 공공연히 글을 써서 지적하냐”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을 문제 삼는 이들, 혹은 “13년간 같은 콘셉트였는데 왜 이제 와서야 문제를 제기하냐”며 비판의 시점이 잘못됐노라 말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비판을 사적 공격으로 받기 전에

그런데, 저런 문제 제기가 정말 없었나? 이미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수많은 게스트들이 김구라의 면전에서 그의 방송 태도가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럴 때마다 김구라는 “캐릭터로 받아들여달라”, “내가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예능 캐릭터를 잡아주고 더 재미있는 장면을 끌어내는 것 아니냐” 같은 말들로 넘어갔고, <라디오스타>는 그 상황을 예능적인 코드로 포장해서 보여줬다. 카메라가 도는 앞에서도 그의 방송 태도를 지적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는데, 카메라가 안 돌 때 지적한 사람이 정말 없었을까?


연예계 내부에서 나온 게 처음일 뿐, 글을 통해 김구라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한 사람이 남희석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공개적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그의 방송 태도가 문제적이라고 지적한 글쟁이들은 어디 한둘이었나. 나를 비롯해 동시대에 예능 프로그램에 관한 글을 쓰는 글쟁이치고, 김구라의 방송 태도가 때때로 위험하고 불필요하게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안 한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지난 13년간 연예계 안팎에서, 때로는 글을 통해, 때로는 면전에서 직접 지적을 받으면서도 김구라가 구사하는 코미디의 본질은 큰 변함이 없었다. 직접 이야기해도, 그걸 제대로 된 문제 제기로 진지하게 수용하기를 거절해 왔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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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김구라.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같은 업계 동료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는 게 보기 안 좋다는 지적도 좀 이상하다. 김구라야말로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개인의 욕망이나 사견, 호기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질문하는 태도를 통해 인기를 얻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환호하는 이들이라면, 김구라의 그런 방식이 공개적인 비판을 받는 일 또한 수긍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년 연말 김구라가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 시상식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상의 권위를 부정할 때에는 환호했던 이들이, 남희석이 김구라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공개적으로 비판을 할 때에는 보기 흉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됐지 않았냐”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는 아직 실명 비판을 무례한 것이라 여기고, 토론이 본격화되는 걸 시끄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토론’을 ‘싸움’으로 오해하고 ‘비판’을 ‘공격’의 동의어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토론’이나 ‘건설적인 비판’처럼 단서를 단 표현이 자주 쓰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토론은 싸움이고 비판은 공격이라 생각하니까,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토론을 끝내거나 아니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사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불가피하게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겨서 다른 쪽의 주장을 침묵시키는 완승’을 토론의 목표로 삼거나, 그게 어려우면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 얼른 논의를 끝내는 결말’로 끝맺기 위해 서두르곤 한다. 토론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지켜보는 사람들의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다’는 말들로 토론 참여자들을 위축시킨다.


물론 세상엔 공적으로 논의해야 할 일과 사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김구라의 토크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정말 꼭 사적인 일이기만 할까? 김구라가 활동하는 무대인 전파는 공공재이며, 그의 활동 방식은 종종 타인과 업계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다 보니 몇몇 짬 어린 게스트들은 나와서 시청자가 아니라 그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할 때가 종종 있다”는 말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남희석은 그렇게 판단한 듯 보인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이 공적인 장에 끼치는 영향을 논하는 일이 마냥 사적일 수만은 없다. 지금 “너희들끼리 사석에서 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공적인 문제 제기를 단순히 사적인 불화로 축소시키며 토론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치열한 토론에 나서준다면

누구에게나 타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희박한 근거를 기반으로 의견을 개진한다거나, 불필요한 욕설이나 혐오발언을 구사한다거나, 자신의 의견만이 진리라는 독선적인 태도를 견지한다거나 할 때, 그 의견에 이견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남희석의 의견 개진이 과연 그랬던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남희석의 비판 ‘방식’을 비난하는 건 트집을 잡는 행동일 뿐이다. 그리고 토론을 꺼리고 비판을 터부시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퇴보한다. 그 어떤 형태의 토론과 갈등도 모두 비생산적인 일이라 치부하는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물론 남희석이 사적인 성격과 공적인 성격이 섞여 있는 개인 소셜미디어에 사담처럼 쓰는 대신, 차라리 좀 더 정제된 형태의 글로 어딘가에 공개 기고를 했다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이것이 2년간 고민한 끝에 꺼낸 공적인 문제 제기라는 걸 더 분명히 할 수 있었겠지. <라디오스타> 제작진이나 김구라 또한 그 지점에서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오센>(OSEN)의 기사에 따르면 <라디오스타> 관계자는 “남희석씨가 김구라씨와 ‘라디오스타’에서 만난 건 지난 2017년 방송 때다. 당시 녹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었다. (중략) 어떤 이유로 남희석씨가 그런 글을 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당혹스럽다. 김구라씨도 어제(29일) 녹화 뒤 소식을 접하고 매우 당황한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걸 사적인 ‘공격’이라고 받으니, 글로 이미 적어 둔 비판의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떤 이유로” 글을 그렇게 쓴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하지만 시작은 다소 아쉬웠어도, 아직 우리에겐 이 토론을 이어나갈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김구라가 남희석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서 공개적으로 토론에 임한다면 어떨까? 두 사람은 각각 경력 30년차(남희석)와 28년차(김구라)에 접어든 코미디언으로 오늘날 한국 코미디 문법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둘 다 토론 예능의 사회자로서 치열한 토론의 한가운데에 있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방법론을 가지고 무엇이 좋은 코미디인가에 대한 토론을 펼치기에, 두 사람만큼 좋은 사람도 드물다. 두 사람이 용기를 내어 치열한 토론에 나서준다면, 어쩌면 우린 한국 코미디 역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2020.08.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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