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괴롭히는 유튜브 영상, 동물학대 아닌가요?

[이슈]by 한겨레

[애니멀피플]


모기 익사시키고, 거미 태워 죽이지만 법 규제 못 해


“곤충도 고통 느껴…잔인한 영상 생명경시 부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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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굴삭기가 모기를 치고 지나간다. 장난감을 손에 쥔 유튜버는 굴삭기 힘을 보여주려는 듯 여러 번 바퀴를 밀어 ‘윙’ 소리를 낸다. “쫓아가서 날려버리겠다”는 멘트와 함께 모기가 차에 치어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다. 얌전한 모기는 굴삭기에 여러 차례 밀리고, 치이다 결국 목숨을 잃는다.


지난 1월 유튜브에 ‘모기 로드킬’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다. 이 동영상은 현재 조회 수 3만 7천회, 좋아요 8백 개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이처럼 곤충을 대상으로 실험하거나 괴롭히는 영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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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익사시키고…말벌 폭발시키고…


13일 애피 취재결과, 과거 곤충학대 논란 이후에도 유튜브는 관련 영상들에 대해 규제를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곤충 싸움’은 2014년 당시 말벌, 전갈 등을 일부러 싸움 붙인 뒤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영상으로 논란을 빚었다. 해당 영상에서는 곤충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거나 체액이 흐르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내 “재미로 생명을 죽인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 사이 유튜브 내 곤충 학대 영상은 더 다양해졌다. 곤충을 싸움 붙이는 영상은 물론, 실험한다는 명목하에 여러 곤충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하는 영상이 다수 게시되어 있다. 여러 주제를 다루는 유튜버가 단발성으로 올린 곤충 영상도 있었으나, 곤충 가학만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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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가학 영상을 주로 올리는 ㄱ 유튜브 채널은 2019년 개설된 뒤 구독자 수가 17만 명에 이른다. 이 채널에는 ‘모기 로드킬’ 영상을 포함해 모기·장구벌레를 대상으로 한 가학 영상 100여 개가 게시되어 있다. 영상 대부분이 시청 연령 제한이 없었으며, 일부는 동영상‧오버레이 광고가 삽입되어 있었다.


이 채널이 주로 괴롭히는 대상은 모기다. ‘실험을 통해 보여주겠다’며 모기를 좁은 병 안에 넣고 익사시키거나, 후추를 가득 뿌린 통 안에 가두고, 술에 절인 포도를 빨게 하는 등의 과정을 찍어 올리는 식이다.


바퀴벌레, 말벌, 거미도 비슷한 콘텐츠의 희생양이 된다. 일상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 ㄴ 유튜버는 곤충 가학만 따로 모아 ‘벌레 고문’이라는 재생목록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바퀴벌레에 강력본드를 칠하고, 거미를 가스레인지에 태우면서 ‘강력본드 고문’ ‘거미 화형 고문’이란 제목을 붙였다.


ㄷ 유튜버 또한 말벌을 잡아 로켓 폭죽에 붙여 터트리거나, 채반에 넣고 가둔 뒤 성냥불로 태워죽이는 등의 영상으로 13만 회의 조회 수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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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은 멸종위기만 법 보호 대상


유튜버들은 그들이 주로 괴롭히는 곤충이 해충임을 강조한다. 바퀴벌레, 말벌, 모기가 자신에게 피해를 줬고, 인간에게도 해롭다고 거듭 주장하며 곤충의 죽음을 정당화시킨다. 영상들의 길이는 1분 내외에서 10분까지 다양했으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예능처럼 편집되어 있었다. 제목과 영상 표지 또한 자극적이고, 경쾌한 배경음악을 사용해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외 시청자를 위한 영문 자막도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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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충이라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괴롭히고 죽이는 영상이 어떻게 필터링 없이 올라갈 수 있었을까. 유튜브 커뮤니티 정책에 따르면, 폭력적이거나 노골적인 콘텐츠 기준에 따라 해당 영상들이 규제를 받을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는 “교육, 다큐멘터리 등 특수 목적을 제외하고 동물을 불필요하게 괴롭히거나 의도적으로 가해하는 콘텐츠는 동물학대로 삭제·경고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더 자세한 확인을 위해 7일 유튜브 관계자에 해당 건에 대해 문의했지만 정확한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이 관계자는 “정책에 어긋나는 콘텐츠의 경우 콘텐츠가 삭제되거나 광고가 제한되고, 채널에 대한 경고 조치가 이뤄진다. 그러나 곤충이 동물에 포함되는지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이 보호하는 동물 범위에 곤충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 곤충들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받지만, 그 외 곤충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동물권연구단체 PNR 안나현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이 규정하는 동물은 포유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만 규정되어 있다. 곤충류는 포함되지 않아 법적인 제재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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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학대, 반사회적 문화에 일조”


전문가들은 곤충 가학 영상이 ‘생명경시 풍조’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물권행동 카라 신주운 팀장은 “곤충들이 척추동물처럼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해당 영상들이 불필요한 잔인성을 보인다면 동물학대와 같은 반사회적 문화에 일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정부희 우리곤충연구소 소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정부희 소장은 “생명철학에 대한 기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가학적인 곤충영상을 볼 경우, 무의식적으로 ‘저렇게 다뤄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곤충을 보는 관점은 손바닥 뒤집기와 비슷하다. 작은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경이롭지만, 우리보다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경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성희 교육연수생 grandprix2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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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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