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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운명처럼 만난 지 16년
“한 컷 한 컷 신의 선물”

by한겨레

우포늪 사진가 정봉채씨

운명처럼 만난 지 16년 “한 컷 한

“우포에 가면 늪 인근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더라”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은 일부 사실이었다. 사진가 정봉채(58)씨는 2000년부터 경남 창녕에 있는 우포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2005년까지는 1년 중에 150일 이상을 우포에 머물렀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1년 중 300일 이상을 우포에서 보냈다.

 

이때까진 자동차에서 먹고 잤다. 아침은 김밥으로, 점심은 라면으로, 해가 지고 나면 마을로 가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다음날 아침식사로 김밥 한 줄을 싸갖고 늪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10년 하다가 세 가지 병이 났다. 비탈진 제방에서 대여섯 시간 죽치다 보니 관절염이 생겼고 늪지대에서 노숙하다 보니 천식과 습진이 따라왔다. 통원치료하면서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늪 가까운 세진마을에 빈집을 하나 빌려 수리해서 들어갔다. 주변엔 재실밖에 없고 밤엔 “귀신 우는 소리”가 들려 사람 살 형편이 안 되었지만 차에서 자던 것과 비교하면 감지덕지했다. 그곳을 사람들이 움막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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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정봉채씨는 6년 동안 지내던 우포늪 움막에서 드디어 나왔다. 16년 동안 찍었던 우포를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포늪이 가까운 이방면 옥천리에 집을 지어 부산에 있던 식구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하동에서 태어나 부산에 주소지가 있던 정봉채씨는 1년 전에 이곳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물론 우포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씨를 우포 주민으로 생각해왔다.

 

우포는 70만평 규모의 국내 최대 내륙습지다. 1998년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2011년에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524호)으로 지정되었다. 480여종의 식물, 62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55종의 수서곤충, 12종의 포유류, 7종의 파충류, 5종의 양서류, 5종의 패류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지난 22일 그가 새로 마련한 집에서 정봉채씨와 만나 사진과 우포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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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만 끼고 살다 학사경고

정씨는 대학교 1학년 때 부친이 당시 한 학기 등록금만큼 비싼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사준 그날 이후로 “평생 사진을 찍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본업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사진클럽에 들어가 1학년 내내 카메라만 끼고 살다가 학사경고를 받고, 2학년 되는 봄 입대했다. 복학 뒤 “졸업은 해야겠다” 싶어 잠깐 카메라를 멀리했다.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엘지그룹의 시스템엔지니어가 되었다가 8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컴퓨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1984년, 고등학교 교사로 변신했다. 당시 처음 시행된 컴퓨터 교사 채용시험에 합격해 부산 덕명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마케팅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이다. 여유가 생기자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사진학과 대학원도 졸업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고개는 늘 창밖을 향하기 일쑤였다. “지금쯤은 어딜 가면 빛이 좋은데….”

 

교사 생활 13년8개월 만인 1997년, 그는 제 발로 학교를 떠났다. 이유가 기가 막혔다. “내가 내성적이라 말을 잘 안해. 그러다 보니 외국어를 공부하려 했으나 좀처럼 안 되더라구. 가만 생각하니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싶었어. 교직 20년을 채우면 연금이 나오잖아. 사진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 연금을 받게 되면 사진은 취미에 머물 것이고, 편안하게 살게 되면 곤란하다. 그래서….”

 

지금 와 생각하면 참 용감했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라고 정씨는 회상했다. 결혼했고, 돈이 한창 들어갈 애들도 있었으니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과감히 학교를 떠났다. 다행히 아들이 고등학교 중퇴 상태에서 대학을 포기하는 바람에 돈 들어갈 일이 줄었다. 정씨는 “농담이 아니고 당시엔 아들이 효자였다. 지금 아들은 대학 나온 것보다 훨씬 잘되어 있다”고 말했다.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

“평생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

 

연금 타면 취미로 그칠 것 같아

교사 13년만에 전업의 길로

 

어머니가 수놓은 단정학이

우연이 아닌 필연의 씨앗

 

홋카이도로 가 학 찍다가

비에이 풍경 알게 돼 흠뻑 빠져

 

그러다 문득 아름다움이 뭔지 의문

사진 정체성 고민 이어져

 

‘마음의 정화’ 화두로

연, 연꽃, 연못, 우포 늪…

 

10년 찍으니 겨우 하나 깨달아

나를 낮추니 풀잎이 말을 걸어

 

하루, 한 달, 1년, 10년…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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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왜 고향도 아니고, 큰 인연도 없는 우포로 왔을까?

 

“취미로 사진 찍을 때 우포를 몇 번 오가긴 했지만 작정하고 온 것은 2000년이다. 왜 왔느냐고? 우연이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눈을 뜨고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께서 정갈하신 분이어서 수를 놓은 횃댓보(벽에 걸어놓은 옷걸이를 덮는 보자기)를 걸어두었는데, 거기에 단정학이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맹세했다. 내가 사진가가 되면 학을 찍으리라. 교사 시절 방학 때 단정학을 찾아 일본 홋카이도로 갔다. 450마리 정도가 있었다. 영하 30도에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아 눈으로만 보고 와 다음해에 다시 가서 찍었다. 그러다 마에다 신조가 찍은 비에이를 알게 되었다. 하루에 100만원을 내고 사진가이드를 모셔서 비에이를 훑기를 세 차례나 했다. 비에이가 내 손바닥처럼 여겨질 무렵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너무 아름다운 사진만 찍고 있더라.”

 

정씨는 그때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이 깊어졌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경계가 없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사건이 될 수 없다. 사진은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마에다 신조가 다 찍어둔 아름다운 비에이를 또 찍는다고 새로운 사건이 될 수가 있겠는가’ 싶었다. 고민이 사진의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정씨는 “내가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을 하는 것으로는 명분이 불충분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마음의 정화’라는 지점에 도달했다.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 동시에 그 정화의 기운이 세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면 본인의 구도를 달성하고 동시에 사회적 소통으로 연결된다는 결론에 이르러, 정화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화하는 식물을 찾으니 연, 연꽃이 나왔다. 그래서 연못을 찾기 시작했다. 경산, 청도, 부산 철마에도 연못이 많다. 그 무렵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2000년 된 연씨를 개화시킨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가시연이 많다고 해서 우포에 왔다. 가시연, 물옥잠 등이 정화작용을 엄청나게 한다. 큰물이 지면 늪이 벌겋게 되는데 우포는 곧 맑아지더라. 마침내 본인의 사진 테마를 발견한 정씨는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10년을 찍어보리라” 마음먹고 우포에서 그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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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홍보대사 되고 세계시장으로

하지만 2010년, 10년이 지났지만 우포를 떠나지 못했다. “10년을 넘길 무렵에 겨우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바라보기의 문제였다. 자기중심으로, 투시형으로 바라보면 항상 내가 크고 상대방이 작아진다. 이걸 바꿔야 한다. 내가 작으면 상대가 커진다. 내가 겸손해져야 상대가 보인다. 우포의 나무 한 그루, 곤충 하나를 보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 보인다. 10년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최소 8시간씩 우포를 바라보니 여기 있는 풀잎 하나가 반짝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더라. 내가 그 애들과 친구신청을 했더니 풀잎이 ‘좋아요’를 눌러준 격이다.”

 

말이 그럴듯할 뿐, 그게 사진으로 어떻게 연결된다는 걸까?

 

“곽 기자는 오늘 여기 처음이라고 했다. 내일 한 번 더 오면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지내면 더 많은 것을 볼 것이다. 그게 1년, 10년이 되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 10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냥, 나는 우포에서 산다. 다른 데 간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그냥 여기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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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에 쏟은 정성과 시간만큼 그의 활동도 확장됐다. 2008년 람사르총회가 열렸을 때, 이 동네 주민들의 추천으로 그는 우포늪 홍보대사가 되었다. 우포에서 자리 잡은 이후 우포 사진만 발표하고 있다. 2009년부터 아트파리, 비엔나(빈)페어 등 세계 사진 시장에 나갔다. 올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예술시장인 스위스 바젤까지 갔다. 100호짜리 작품 석 점을 한 점당 1500만원씩에 팔았다. 당연히 우포 사진이다. 그는 “해외로 나가는 것은 판매도 되지만 공부도 되기 때문이다. 또 전세계 미술관의 디렉터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들의 안목에 들어야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으니, 우포를 알리려는 노력인 셈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정씨는 말했다. “밤에 귀신 우는 소리는 알고 보니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였다. 나는 달빛이 있는 밤에도 사진을 찍는다. 동물들이 다니는 소리도 들리지만 땅 밑에서 물줄기 소리도 들린다. 어떤 날은 나무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만약 내가 좋은 사진을 찍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불쌍하게 열심히 찍고 있는 나를 어여쁘게 생각한 신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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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경남 창녕군 우포늪 소벌 ‘비밀의 정원’ 앞에서 우포사진가 정봉채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정봉채 사진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