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재난키트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라이프]by 한겨레

전주시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구호물품 키트 제작

식량·배변 용품 등…침수 피해 컸던 구례에 첫 전달

한겨레

전북 전주시와 전주시자원봉사센터가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생존키트를 제작했다. 생존키트 안에 포함된 반려견용 집과 밥그릇을 사용하고 있는 반려견. 전주시자원봉사센터 제공

지난달 초 전라남도 구례군을 덮친 수해로 푸들견 ‘콩지’네 가족은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했다. 반려견 3마리와 함께 살던 할머니가 대피상황에서 콩지는 간신히 붙잡았지만, 나머리 두 마리가 물살에 휩쓸려 간 것이다. 임시대피소로 옮긴 뒤에도 콩지는 극도로 예민해져 반려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태웠다.


트라우마 탓인지 콩지는 할아버지 외에는 모든 사람을 경계했다. 이런 콩지네 가족에게 반려견의 안정을 위한 구호물품이 전달됐다. 낯선 사람이 많은 임시대피소에서 생활 중이던 콩지에게 작은 집을 마련해 준 것. 콩지의 회복을 도울 ‘댕댕이 텐트’는 전주시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생존키트’ 구성품 중 한 가지다.


지난달 14일 전북 전주시와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수해지역인 전남 구례, 남원 등을 찾아 반려동물 생존키트를 전달했다. 반려동물 생존키트는 전주시가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반려동물을 위한 맞춤형 안녕 캠페인’ 사업에 선정돼 전국 최초로 제작한 반려동물 전용 생존 배낭이다.


이번 남부 수해지역 지원은 지난 2월 사업선정 뒤 실제로 키트가 제작돼 전달된 첫 사례다. 2일 애피가 반려동물 생존키트 캠페인부터 제작, 지원을 진행한 박정석 전주시자원봉사센터장에게 자세한 사항을 들어봤다.

한겨레

지난해 강원도 고성·속초 일대를 태운 화재는 인명 피해 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불탄 집을 혼자 지키고 있는 반려견. 사진 신소윤 기자

박정석 센터장은 지난해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현장에서 처음 반려동물 지원사업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당시 대부분 이재민들이 대피소로 지정된 콘도, 연수원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이 시설이 더 좋은 대피소가 아닌 체육관, 초등학교 등에서 지내고 계시더라. 임시대피소에 반려동물이 함께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강원 고성·속초 지역 화재는 서울 남산 면적의 9.7배를 불태우며 사람뿐 아니라 많은 반려동물의 목숨을 앗아갔다. 목줄에 묶여 미처 대피하지 못한 동물들은 화마에 희생되고, 대피한 동물들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동물재난대처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 ▷관련기사:“동물도 재난 대피소 갈 수 있게 해주세요”)

한겨레

반려동물 생존키트는 반려견용과 반려묘용 2가지로 제작됐다.

한겨레

생존키트는 공통으로 일주일분의 비상식량, 담요, 간식 등으로 채워졌지만, 각각 다른 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집과 배변 용품 등은 다르게 구성됐다.

국내 넷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동물은 사람과 달리 식량도 지급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동안 지진, 홍수, 화재 등 활동을 해온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이런 점에 착안해 최소한의 구호가 가능한 동물용 구호 키트를 제작하기로 했다. 박 센터장은 “지난해 신설된 전주시 동물보호과와 많은 논의와 협업을 거쳤다. 동물보호과에 수의사 출신 주무관의 조언과 동물보호단체의 자문을 통해서 반려동물들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생존키트는 반려견용과 반려묘용 두 가지로 제작됐다. 구성품은 강아지가 13종, 고양이는 12종이다. 공통적으로 일주일분의 비상 식량, 해충기피제, 물티슈, 담요, 간식 등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물품으로 채웠지만, 각각 다른 동물의 습성에 따라 집과 배변용품은 다르게 구성됐다. 반려견용은 소형 텐트형식으로 집을 제작했지만, 낯선 공간을 두려워하고 탈출 우려가 있는 고양이는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로 집을 제작한 것이다.


불안할 동물의 심리를 고려한 물품도 눈에 띄었다. 강아지 장난감과 고양이 낚싯대, 브러시 등을 포함한 것. 박정석 센터장은 “지난달 고성 방문 때 대피소 앞에 백구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주인을 못 찾아 전깃줄에 매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는데, 재난키트 브러시로 빗질을 해주자 너무 좋아했다.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한겨레

지난달 14일 전남 구례군 임시대피소에서 ‘댕댕이 집’을 받은 반려견 콩지. 콩지는 이번 수해에서 엄마와 어미를 잃었다.

특히 그가 재난키트의 특이 물품으로 꼽은 것은 보호자용 손 세정제와 반려동물 샤워 시트였다. 물 부족을 겪을 수 있는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의 건강뿐 아니라 보호자의 위생까지 챙긴다는 의미였다.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 1,000만원으로 제작된 반려동물 재난키트는 현재 강아지용이 60개, 고양이용이 40개 준비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전주시자원봉사센터에 구비해놓고 필요한 현장에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박 센터장은 “지난해 재난 상황을 겪으며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반려동물 생존 배낭 등을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실제로 재난 상황에서는 배낭조차도 들고나오기 힘든 경우가 많다. 미리 배포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제공하는 방향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2020.09.0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