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피뢰침' 기린은 벼락을 잘 맞을까

[이슈]by 한겨레

남아공서 2마리 낙뢰 사망…종종 벌어지지만 심각 위협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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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초원에서 다가오는 폭풍을 맞은 기린 가족. 낙뢰 피해가 종종 보고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야생 상태의 기린 2마리가 같은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남아프리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기린은 다른 동물보다 더 자주 벼락을 맞는가?”란 오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다 자라면 키가 5m가 넘는 기린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지대에서는 첨탑처럼 우뚝하다. 당연히 기린은 다른 동물보다 벼락 맞을 확률이 높다고 우리의 직관은 가리킨다. 문제는 확률을 따지기엔 그런 일이 흔치 않고 키 작은, 그리고 개체수가 많은 다른 동물이 벼락으로 인한 피해를 더 자주 많이 본다는 점이다.


먼저 이번 낙뢰사고를 보자. 시스카 샤이엔 남아프리카공화국 록우드 컨서베이션 재단 연구원은 ‘아프리카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사설 보호구역인 록우드에서 2월 29일 벌어진 낙뢰사고를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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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뢰로 사망한 기린 2마리의 두개골. 왼쪽 더 큰 기린의 머리에 골절 상처가 나 있어 벼락에 직접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샤이엔 외 (2020) ‘아프리카 생태학 저널’ 제공

오후 4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폭우와 함께 심한 번개가 쳤는데 그날 아침까지 다른 6마리의 기린과 함께 있던 2마리의 암컷 기린 성체가 폭풍 뒤 죽은 채 발견됐다. 샤이엔은 “사고 장소에서 기린보다 키 큰 물체가 없었고 다른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벼락을 맞아 죽은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두 마리 가운데 더 큰 5살짜리 암컷은 쓰러질 때 충격으로 두개골이 함몰되는 상처를 입었다. 논문은 “큰 암컷은 직접 벼락을 맞아(직격뢰) 죽은 것으로 보이고 5m 떨어진 곳에서 죽은 다른 암컷은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인 측면방전이나 보폭방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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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벼락 피해를 받는 방식. a는 직격뢰 b는 보폭전압을 가리킨다. 찬디마 고메스 (2012) ‘국제 생물기상학 저널’ 제공

측면방전은 직접 벼락을 맞지는 않았지만 인근으로 방전이 이어지는 것을 가리키며, 보폭전압은 낙뢰전압이 땅 위로 흐르다가 네발짐승의 앞발과 뒷발 사이의 전압 차로 인해 낙뢰전류가 심장을 관통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큰 나무 밑에 대피했다가 낙뢰전류로 인해 소와 양이 떼죽음한 사고가 외국에서 종종 보고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낙뢰로 죽은 뒤 하루 반이 지났는데도 기린에 청소동물의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논문은 “동물 사체에 모여든 까마귀가 가장 먼저 먹는 부위가 눈인데 기린 두 마리 모두 발견 당시 눈이 멀쩡했다”고 적었다.


리안 블루멘탈 남아공 프리 토리 아 대 법의학자는 2014년 낙뢰로 죽은 기린을 청소동물이 기피하는 현상에 대해 “5일 동안 독수리 등이 하늘을 돌기만 하고 내려앉지 않았다”며 “사체에서 짙은 암모니아 냄새가 나 낙뢰와 관련한 화학물질 냄새가 그 원인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과학저널 ‘독수리 뉴스’에 보고한 바 있다.


기린이 낙뢰사고로 죽은 사고는 2003년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 월드 동물원, 2019년 남아프리카 사파리 공원서 2마리 등 간혹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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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큰 키는 높은 곳의 잎을 먹을 수 있는 뛰어난 적응이다. 낙뢰 위험은 이런 자연선택에 견주면 사소한 위험이다. 찰스 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벼락이 큰 키로 진화한 기린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다윈은 일찍이 ‘종의 기원’에서 “자연에 완벽하게 적응한 동물에게도 우연적 파괴가 일어나지만 자연선택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기린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분류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문제는 벼락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용 논문: African Journal of Ecology, DOI: 10.1111/aje.1278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2020.09.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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